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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풀사이로 May 09. 2023

끝까지 믿어주는 일

며칠 전 책을 읽다 '믿음의 도약(leap of faith)'이라는 표현을 건져 올렸습니다. 믿기 힘든 무엇인가를 믿는 행위, 답을 모르고 성공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믿고 감행하는 일*을 말하는 표현이래요. 좋아하는 일과 안정적인 회사를 두고,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는 프리 에이전트의 삶을 선택한 제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표현이었어요.


이 책의 저자, 황정원 작가는 카이스트에 진학한 과학도였는데요. 음악에 매료되어 졸업 후 다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면서 진로를 수정한 케이스입니다. 현재는 음악학자이자 공연 칼럼니스트이고요. 


카이스트에서 한예종으로 진로를 틀었을 때, 작가는 자신이 믿음의 도약을 했다고 생각했대요. 걷고 있던 과학도의 길이 아니라 음악도의 길을 과감히 선택했으니까요. 믿음의 도약은 절벽 끝에서 다른 쪽으로 몸을 힘껏 몸을 날리는 행위라고 생각했기에, 그 결말은 당연히 안착 아니면 추락이라 생각했고요. 그런데 어렵게 진학한 한예종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고, 자신은 추락했고 끔찍한 실패를 했다고 여겼대요.


그러나 지금. 음악과 함께 20여 년을 보낸 그는, 이제 이렇게 말합니다. 책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믿음의 도약'이라는 말에서 절벽이 아닌 물가를 떠올린다. 비장하게 뛰어내리는 사람이 아니라 물에 첫발을 담그는 사람을 눈앞에 본다. 절벽이 아니라 넓게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두었다면 물속으로 뛰어들 때 큰 결단이 필요하긴 해도 의외로 할 만하다. 순간적으로 마음을 굳게 다지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믿음은 도약 이후로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물이 깊어지고 뜻밖의 해류를 만나 휘청이게 되더라도 언젠가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믿음을 간직할 때라야만 우리는 헤엄치기를 멈추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의 도약'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도약'이 아니라 '믿음'이다.


ㄴ황정원, '아무튼, 무대' 중에서



회사를 떠나 홀로서기로 결심한 뒤, 저 역시 힘차게 맞은편으로 몸을 날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것으로 '도전의 챕터'는 지났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믿음의 도약에서, 믿음이 아니라 도약에 방점을 찍었던 것이죠. 그래서 그 후 기대와 다른 상황을 맞닥뜨릴 때, 성과가 저조할 때마다 '이게 실패의 첫 신호라면 어쩌지?'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 생각은 쉽게 불안으로 이어졌고요.


책 속 문장들을 더듬으며 배웁니다. 믿음의 도약은 절벽 위에서 '으잇!' 하고 뛰어내리는 단 한 번의 순간이 아니라, 물가에 서서 첫발을 떼고 한 걸음 한 걸음 이어가는 것이란 걸. 믿음은 첫발을 뗄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물이 깊어지고 뜻밖의 해류를 만나 휩쓸릴 때도 꼭 품고 있어야 한다는 걸요.


우연히 제게 온 문장을 어루만지며 소중히 읽고, 이 문장이 필요한 구독자님에게로 소중히 담아 보냅니다.


*인용한 책 : 황정원, '아무튼, 무대', 코난북스

*믿음의 도약은 주로 종교적인 표현으로 쓰이지만, 인용한 책과 본문에서는 일반(철학)적 표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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