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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도리는 숙명인 걸로

아빠의 요로결석과 맥주

by 김작가입니다

생일 전날 지인들이 미리 생일 파티를 해준다고 모여있었다. 친한 동생이 손수 만들어준 미역국에 뜨신 밥을 먹고, 해피벌스데이가 적힌 머리띠에 핑크색안경 쓰고선 할 건 다 하고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빠에겐 지인들이 생일파티 해준다고 하니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다. 밖에 나와있으면 굳이 연락을 잘하지 않는데 무슨 일인지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급한 일이 아니겠거니 하고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곤 5분이 지났을까, 다시 전화가 왔다. 이건 무슨 일이 있는 거다.(아팠던 엄마에게서 오랜 경험치가 있는터라 집에서 뜬금없는 시간에 전화가 오면 걱정부터 앞선다.)


아빠는 저녁을 챙겨 먹고는 컨디션이 안 좋다고 왼쪽 옆구리가 너무 아프다고 했다. 웬만해서는 아프다는 말을 잘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얘기할 때는 정말 크게 아픈 거다. 지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먼저 모임을 나왔다. 주인공 없는 생일 파티를 할 뻔했는데 그래도 밥도 다 먹고, 생일 파티까지 다 끝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왼쪽 옆구리라고 했으니 일단 맹장은 아닌데, 급체했나, 대상포진인가?'


온갖 생각이 지나갔다. 집에 오니 아빠는 소파에 기진맥진 누워있었다. 단순히 진통제만 먹어서 될 일인지 병원을 가야 하는지, 아빠는 움직일 수 있는지 살폈다. 이렇게 더 아프면 정신을 잃겠다 싶어 결국 119를 불렀다. 구급대원이 아빠의 증상을 듣더니 이전에 요로결석을 겪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그러니깐 40년도 더 전에 요로결석이 있었다고 했다. 여전히 통증이 심한 아빠는 휠체어에 앉아 응급실로 향했다. 엄마가 마지막에 갔던 그 병원, 그 응급실이다. 여기를 또 왔다. 기분이 참 몰랑몰랑해지는 상태로 응급차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는데 기분이 묘하다. 병원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데 아빠의 안색이 살아나고 있다. 병원에 도착하니 통증은 가시고 눈은 다시 또렷해지고 나갈뻔한 정신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 사이 괜찮아졌다.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나니 방광 입구에 결석이 하나 있다고 한다. 그 녀석이 요리조리 움직이느라 몸 안에서 그렇게 아팠던 것이다. 다른 문제가 아니라 요로결석이라고 하니 놀란 중에 다행이었다.


토요일 저녁이었고 병원에서는 혹시 모르니 일요일 하루 동안 입원을 했다가 월요일 외래 진료를 받고는 돌을 깰지 어떻게 할지 결정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미 진통제를 맞기도 전에 통증이 없어졌고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아빠가 무의미하게 입원을 할리가 없다. 더군다나 엄마를 보냈던 병원에서 말이다. 진통제를 처방받고서는 밤 11시 다돼서 다시 집으로 왔다.


월요일에 꼭 외래 진료를 보라고 했지만 역시나 우리 아빠는 가지 않았다. '40년 전에 요로결석 왔을 때도 병원 갔더니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더라, 맥주를 마시라고 하더라' 아빠만의 지론을 펼치며 결국 병원을 가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건 40년 전이다. 지금은 수술 안 하고도 몸 밖에서 돌도 깨고 그럴 수 있다. 괜찮겠냐. 검사는 해보는 게 낫지 않겠냐' 얘기를 해도 들을 아빠가 아니다. 결국 병원은 가지 않았고 집에는 캔맥주만 한가득 생겼다. 원래도 반주로 소맥을 즐기고 카스프레시 러버인 아빠이지만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요로결석 때문에 생긴 통증에 아빠가 많이 놀랜 듯했다. '요로결석이 왜 생겼을까?' 질문이 시작됐다. 수분 섭취감소가 요로결석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데, 아빠는 하루에 물을 1리터는 먹는데 웬 수분 부족.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름내 손자랑 놀면서 내내 땀을 많이 흘렸다. 당뇨 경계선 때문에 살을 빼느라 삼시세번 운동을 하고, 또 운동하는 동안에는 물을 많이 먹지도 않았다. 그리곤 저녁에는 갈증이 난다며 시원한 맥주를 들이켜는 날이 많았다. 덥고 목마르니 시원한 맥주를 먹어야겠다는 아빠에게, '맥주는 결코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가 아니다. 오히려 수분을 더 뺐는다. 시원한 게 진짜 시원한 게 아니다. 그건 속는 거다.'라는 말을 수십 번은 아니지만 부지런히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아빠는 들을 리 만무하다. 냉장고에 맥주는 마르지 않았고 결석을 핑계 삼아 부지런히 먹었다. 그러던 아빠가 오늘 낮 카톡을 보내왔다. 내용인즉,


'운동 후에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생각날 수도 있지만, 알코올은 근육 회복을 방해난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술을 마시면 단백질 합성이 억제되고, 몸의 수분이 빠르게 배출되어 근육이 회복되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자다가 한 번씩 생기는 종아리 근육통이 불편했던 아빠가 인터넷 어디에서 찾은 걸 캡처해서 보냈다. 그런 후 내려진 아빠의 결론은, '시원함에 맥주를 먹었는데 맥주는 오히려 수분을 뺏는 음식이었고 그래서 요로결석이 생기고 근육통이 있는 거 같다. 금주를 해야겠다.'이다. 여름동안 내가 얘기하지 않았냐고 딸이 하는 말은 왜 안 듣냐고 약간의 잡도리를 해버렸다. 아빠는 내가 했던 말은 생각도 안 난단다. 역시 우리 아빠다. 몸으로 경험해 보고 나서야 '힘들구나, 아프구나, 하면 안 되는구나' 결론이 내려진다. 아빠가 은근히 주눅 드는 거 같아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 했는데 안 되겠다. 적당하게 꾸준한 잡도리는 서로에게 숙명인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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