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리무리에서 자랐으면 어떠니

너는 백조알에서 태어난 존재인데

by 구름파도

인종, 나이, 외모 등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요건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서로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외면하죠. 그것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암에도 말이에요.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다른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죠.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오리무리에 태어난 백조처럼 다른 겉모습 사이에 속 깊은 마음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데 말이죠.


오늘의 주인공은 오리무리에 태어난 백조의 이야기입니다.

자. 그럼 오늘의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의 동화는 '미운 오리 새끼'입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동화입니다. 안데르센이 쓴 동화 중 가장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한 동화죠.


줄거리를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한 오리부부가 만든 둥지에 다른 알들과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모난 알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리부부는 이 알도 자신들의 알이라 생각하고 품어주었죠. 어느 날 알이 부화할 때가 되자, 다른 오리들과는 다른 못난 아기 오리가 태어났습니다. 못난 아기 오리는 다른 가족들의 멸시를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유일하게 아기 오리를 감싸주던 엄마 오리마저 등을 돌리자, 아기 오리은 결국 오리 무리를 떠나버립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난 아기 오리는 여러 존재들과 만나고, 그 존재들의 멸시를 받으며 겨울까지 살아갑니다. 무사히 겨울을 난 아기오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지경까지 가지만, 우연히 본 물가의 비친 자신의 모습이 백조로 변해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백조무리에게로 향합니다.

줄거리를 보니 어떠셨나요? 오리 무리에서 태어나 멸시를 받던 아기 오리가 사실은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이야기. 아무도 몰라주던 자신의 진가를 결국은 시련을 이겨내고 찾아낸 백조가 정말 기특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기 오리, 아니 아기 백조라고 정정하죠. 아기 백조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아기 오리가 사실 아름다운 백조였다는 사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니 다른 이야기를 해보죠. 도대체 무엇이 아기 백조를 그 지경까지 몰아간 것일까요?


아기 백조는 다른 오리들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똑같이 물장구치고, 똑같이 먹고, 똑같이 뒤뚱거렸죠. 그 백조가 차별받았던 것은 단 한 가지. 외모 때문이었습니다. 단지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죽음을 생각할 정도의 심한 차별을 받았다는 것이죠. 이 모든 것은 아기 백조의 잘못이 아닌 주변 인물들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기 백조는 어째서 심한 차별을 받고 백조로 거듭나는 존재로 이야기 속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답은 저자 안데르센의 삶 속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모난 오리 새끼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린 시절 차별로 인해 학교를 일찍 나왔고, 꿈을 이루기 위해 늦은 나이에 다시 초등학교를 다녀야 했죠.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배우면서 어른이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같은 학생들에게 수많은 멸시와 차별을 받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늦깎이 배움을 멸시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소리죠. 하지만 당시에는 그랬습니다.


또 동화를 쓰는 일을 하면서 면식하나 없는 이들의 조롱을 받죠. 단지 안데르센의 삶이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요. 하지만 안데르센의 동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안데르센은 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납니다. 자신의 진가를 결국 증명한 것이지요.


안데르센은 '미운 오리 새끼'의 '아기 백조' 그 자체였습니다. 그가 자라온 환경은 오로지 그의 탓이 아닌 주변 환경의 탓이었죠. 눈에 보이는 것만 보다가 진짜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리 무리도 안데르센을 멸시한 사람들도요.


결국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안데르센은 오리 새끼가 아닌 백조알에서 태어난 존재였다는 것입니다.


'미운 오리 새끼'를 통해 알아본 오늘의 가치는 '포용'입니다. 안데르센도, 아기 백조도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았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의 다름을 포용해 줬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죠. '미운 오리 새끼'도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요.


다름을 포용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포용하는 정신에 있으니까요. 오리무리에서 태어났음에도 결국 백조알인 존재가 곁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은 이 동화에 나온 대사로 마치죠.

'오리 무리에서 태어났으면 어떠니. 너는 백조알에서 태어난 존재인데.'


오늘의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keyword
이전 14화자만심은 남에게 피해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