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애자일 할 게 아니라, 결과물이 애자일 해야...
Agile은 민첩하는 뜻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빠르다는 뜻의 fast, rapid, quick 이런 단어나 알던 사람들이 태반이던 상황에서 '애자일'하게 일합시다는 조직들이 유행처럼 많이 생겼었다. 한때 그랬던 그런 조직들이 예전의 업무 스타일로 돌아갔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행이 꺼지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들의 화두 중 하나인 것 같다.
최초에 구글이 일하는 방식으로 소개되면서, 각기 업계에서 구글이 되고자 하는 기업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환경이 워낙 급박하게 변하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는 조직은 도태될 수밖에 없는 삭막한 환경은 기업들이 'agile way of working'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내몰았다.
기업이 agile transformation(AT)에 성공하는지 아닌지 영향을 주는 요소에 조직의 크기가 있지는 않겠지만, 상대적으로 조직의 규모가 작으면 민첩할 수 있다. 게임 캐릭터들의 능력치 중 '힘'과 '민첩성'이 그 캐릭터의 덩치와 관계있는 것과 비슷하게 볼 수 있겠다.
실제로는 조직의 구성원 숫자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얼마나 원활한가, 그래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가가 AT 정착 여부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닐까? 소통이 원활하면, 환경의 변화에 다 같이 대응할 수 있고, 조직의 위기, 전략, 방향, CEO의 메시지 등을 직접 체감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까.
큰 배는 어지간한 파도를 부닥치면서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작은 보트는 파도에 대응하지 못하면 전복된다. 작은 조직이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그 회사는 바로 존폐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모든 기업이 속한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때문에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상관없이 그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큰 조직도 애자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직원들의 생각과 마인드를 바꿔야 하고, 조직 구성도 변화가 필요하다. 기존에 커뮤니케이션하던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런 변화가 필요한 것을 조직원 모두가 똑같이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애자일 하게 되려는 그 자체에 너무 큰 노력을 기울여 노력에 매몰되어 버리면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조직의 동력이 타격을 받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 어떻게 될까? 휘몰아치는 파도에 재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아무리 큰 배라도 침몰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선장과 갑판장이 위기라고 소리치면서, '민첩하게 대응하자!'라고 외치는데, 선원들은 '우리는 애자일 조직으로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 일은 이 조직에서 내가 할 일들이 아닙니다!'라고 하면서 복지부동한다면 정말 곧 위기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워낙 큰 조직이라 어지간한 파도에도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위기의식을 갖지 못한다면 그렇게 대응할 수 있다.
작은 조직은 파도에 흔들리는 배를 선원 모두가 몸으로 느끼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갖지 않을래야, 애자일 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 없다. 당장이라도 배가 침몰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모두가 똑같이 느끼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애자일 콘셉트를 소개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르게 혹은 민첩하게 '일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일한다. 메일의 답장도 빨리 쓰고, 보고도 빨리 한다. 상사들은 급작스러운 요청을 하면서 '빠르게' 답할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애자일 하지 못하다'라고 한다.
상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모두가 '함께' 갑판에서 파도를 뒤집어쓰면서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사는 지시만 한다. 밧줄 매듭을 만드는 법을 잊어버렸거나, 노를 함께 저을 힘도 없는 경우도 있다. 지시를 받는 선원들은 몸을 점점 더 빨리 움직이면서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이는 조직의 번아웃으로 연결될 수 있다.
아래 그림은 여기서 (The Skateboard Mindset in Product Development, 링크)
예측할 수 없는 시장에서 그나마 실패를 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더라도, 애자일 문화를 적용시켜보려고 애쓴 조직은 이런 시도조차 하지 않은 조직에 비해 위기가 닥쳤을 때는 무엇이 달라도 다를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AT를 접목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그중 조직문화에 맞는 방법론은 문화로 스며들게 되고, 아닌 것들은 그렇게 흘러간다. 이런 과정이 시간 동안 쌓이게 되면 그 조직 특유의 강점이 되고, 더 오랫동안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애자일 하게 일해야 한다. 사람이 애자일할 게 아니라, 제품을 애자일 하게 만들어 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