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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Aug 24. 2024

여전히 내 삶에 존재하는 씩씩이

능력자 씩씩이

씩씩이가 투병하는 동안 다가올 이별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스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해 블로그에 시간 날 때마다 투병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내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블로그 글쓰기가 씩씩이가 떠난 후 브런치 글쓰기로 확장되어 내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켰다.


씩씩이와 함께한 9년이라는 시간과 방광암으로 투병한 8개월의 시간, 그리고 마지막 이별의 순간까지 함께한 모든 경험은 결과적으로 내 삶을 변화시킨 셈이다. 사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누군가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 변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죽하면 작심삼일이란 말이 나왔겠나. 내 삶을 변화시키고 싶어도 굳어진 습관이나 관습의 힘을 이기지 못해 저항만 하다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어려운 걸 씩씩이는 냈다,

누군가에게는 한낫 '개'일뿐이지만 어떤 위대한 위인도 하지 못한 '나'라는 사람을 변화시켰고 떠난 이후에도 내 삶에 영향을 주며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내 마음을 구원하기 위해 썼던 블로그 투병기가 지금은 나와 비슷한 처치에 있는 견주들에게 작지만 의미 있는 도움을 주고 있는 듯하다. 키우던 반려견이 갑자기 방광암을 진단받고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 내 블로그까지 유입되어 댓글란에 질문을 남겨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견주분의 다급한 요청에 전화통화까지 하게 된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 내 경험에 기반해 성심성의껏 답변을 드린다. 방광암으로 떠나기까지 씩씩이가 겪었던 경과의 변화, 또 반려견을 간호하며 느꼈을 견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댓글을 남긴 분들의 질문들을 가벼이 넘길 수 없다.


그중 인연이 되었던 시츄 강아지가 최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견주분은 강아지가 떠나기 일주일 전부터 내게 문자로 연락을 해오셨고, 상태가 급격히 안 좋아졌고 곡기를 완전히 끊어 음식을 먹지 못한다며 영양주사를 놔주어도 좋은지와 강아지 영상을 보내 상태가 어떤 것 같은지 등을 물어오셨다.


씩씩이도 곡기를 끊고 딱 20여 일이 지난 후 무지개다리를 건넜기에 곡기를 끊었다는 견주분의 말에 마지막이 임박했음을 직감했었지만 이렇게 일찍 떠날 줄은 몰랐다. 곡기를 완전히 끊기 두어 달 전부터 간식으로만 연명했던 씩씩이와 달리 곡기를 끊기 전까지 밥도 그런대로 잘 먹고 컨디션도 좋았다고 했기 때문이다.

견주분과는 실제 얼굴 한번 뵌 적 없는 사이였지만 전화기 너머 울먹거리는 음성만으로도 이별의 슬픔과 고통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는 누구보다 반려견을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있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었기에 그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말을 건넨 후 어렵게 전화를 끊었고, 그날 이후  한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씩씩이와 이별했던 마지막 순간이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그날의 고통이 다시 가슴을 도려내듯 아팠다.


잊고 지낸 듯했지만 상실의 아픔은 잊히기보다 참고 살아간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친구의 비보를 전해 듣고 나서 나 역시 며칠 동안 씩씩이가 보고 싶어 몸삻을 알았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매일같이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마치 자식 키우듯 돌봐야 하는 것이 반려견이란 존재이다. 그런 반려견을 하루아침에 떠나보내는 슬픔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며 마치 자식을 잃은 슬픔과 같다.


개는 '개'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겨우 동물 죽었다고 인간이 우울증 운운하며 슬퍼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애착이 없던 남의 강아지라면 그렇게 생각하며 훌훌 털고 일어설 수 있겠지만 오랜 시간 자식 같이 돌봐온 내 강아지라면 저 말은 위로가 되기보단 내 슬픔을 공감받지 못함에 두 번 상처를 입게 된다,

반려견을 떠나보내고도 타인의 평가나 시선이 두려워 온전히 슬픔을 드러내지 못하고 충분한 애도 기간을 갖지 못해 속으로만 슬픔을 삭히다 병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을 같다.


어떤 이별이건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오랜 시간 손목에 차고 있던 익숙했던 물건인 시계만 잃어버려도 손목의 허전함을 느낄 텐데 하물며 10년 이상 인생의 서사를 함께 쓰며 마음을 교감해 온 강아지를 떠나보낸 심정은 오죽하랴.


반려견을 떠나보낸 견주분은 긴 통화 끝에 내게 이런 질문을 하셨다.

"어떻게 이 고통을 겪어내셨어요?"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지만 시간이 갈수록 고통은 무뎌지고 그리움으로 바뀌어요.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없어요. 슬프면 그냥 우세요. 충분히 슬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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