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하고 싶은 딸의 이야기' 연재를 이번 28화를 끝으로 마치려 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처음으로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엄마는 힘들 때마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책으로 쓴다면 열 권도 족히 넘을 거라며 넋두리하곤 했다. 당시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막연하게나마 엄마에 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되었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 엄마의 소원을 드디어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 글은 내 삶에 대한 기록이고 딸에게는 내가 떠난 후 유산이자, 엄마에게는 선물인 셈이다.
엄마에 관한 글을 쓰며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 내 상처와 마주할 때마다 당시의 아픔이 되살아나 불편한 감정을 며칠씩 안은채 끙끙대기도 했다. 또 부모의 치부를 들추는 일이 자식으로서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기에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을 일기 쓰듯 모조리 털어놓을 수도 없어 때로는 답답했다.
사실 지나간 과거는 현재의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미 흘러가버린 과거를 자꾸 떠올리며 글로 쓴다는 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문득문득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연재를 지속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천천히 되짚다 보니 대체로 불행했다 정의 내린 시간들 속에도 기억 곳곳에 행복, 희망, 평화, 사랑의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다.
유년시절 불행으로 점철된 기억의 흔적도 어쩌면 과거 해결되지 못한 감정의 여운이 남아서였는지 모르겠다.
내 본심은 엄마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엄마에게 감히 용기 내어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 속마음을 숨긴 채 어린 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삶을 방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엄마를 원망했고 동시에 나이 들어서까지 엄마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 철없는 마음을 자책했다.
사실 문제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다.
살아 있는 한 크고 작은 문제들은 늘 발생하고 그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누구나 해결하지 못한 채 덮어놓은 마음속 상처는 있다. 과거의 기억 중 내게 상처가 되었던 기억만 골라 선택해서 삭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당시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고, 그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내 마음을 애써 위로할수록 마음속 상처는 덧이 났다.
감정의 매듭이 한 번의 사과로 완전히 풀어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단단하게 조였던 매듭이 조금은 헐거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상처로 인한 감정의 매듭이 헐거워만 져도 지나간 상처에 걸려 넘어지진 않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머리 숙이면 안 되다는 아집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 상처받은 자녀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왜 사과해야 하냐며 나 역시 모진 운명의 피해자였다고 자신을 방어하기보다 자식의 아픔을 먼저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에게 사과를 받았다면 이제 지나간 과거와 그로 인해 겪었던 모든 감정들을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고 원망하고 미워하는 어리석은 짓을 왜 아직도 하고 있느냐고 자신을 다그치지 말자. 누구라도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아프다고 비명을 질렀을 테다.
우리는 성인이 아니다.
다만 죽기 직전까지 성장해 나가야 하는 존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치유될 것 같지 않은 아픈 상처가 있더라도 상처와 더불어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해결하겠다고 일부러 들추어내거나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 상처가 존재하면 존재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지금의 삶에 충실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상처도 살아 숨 쉬는 내 안의 생명이기 때문에 때가 되면 자신을 봐달라고 말을 걸어온다.
상처가 말을 걸어오면 자연스럽게 지나온 삶을 거슬러 회고하고 해석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내 경우, 모든 것이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느끼는 순간 깊은 우울감이 찾아왔고 그 우울감의 정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대면할 수 있었다.
엄마를 사랑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용서하는 과정은 순환하듯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확실히 예전보다는 감정의 깊이도, 감정에 머무르는 시간도 짧아졌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사과했지만 언니와 동생에게는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사과를 요구했지만, 언니와 동생은 엄마에게 기대조차 없는 듯하다.
언젠가는 엄마가 언니와 동생에게도 사과하고, 언니와 동생도 엄마를 용서하고 감정의 매듭을 조금이라도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