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하나만 낳았더니 강아지 자식이 무려 셋이나 왔다.
새롬이의 야속한 세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니 새롬이가 또 맥을 못 춘다.
사람도 정신 못 차리게 하는 맹더위의 위엄에 온몸이 털로 덮여있는 강아지는 오죽할까 싶어 며칠 전에 다시 이발을 단행했다. 폭염이 시작되면 아무래도 에어컨을 틀어놓고 출근해야지 싶다. 오늘은 선풍기를 3시간 타이머로 맞추어 놓고 나왔다.
딸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집에 에어컨을 처음 장만하게 된 결정적 계기도 사실 강아지들 때문이었다.
한여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강아지들이 잠 못 이루고 집안에서 조차 무더위에 헥헥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구입했었다.(딸아! 미안해)
무더위나 강추위에 산책을 나가면 새롬이는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그대로 얼음이 된다.
날씨의 위세에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된 새롬이를 보면 정말이지 세월이 야속하다.
새롬이와 14년을 함께하며 30대였던 내 나이도 어느새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나와 견줄 수도 없이 새롬이의 시간은 가히 빛의 속도로 타임머신에라도 탑승한 듯 세월의 강을 폴짝 건너뛴 것 같다.
정말 말마따나 눈 깜짝할 사이에, 아니 눈 몇 번 깜박였더니 새롬이도 나도 함께 늙어버렸다.
새롬이의 젊을 적은 정말 '날쌘돌이' 자체였다.
내 퇴근 후의 루틴은 예나 지금이나 새롬이와의 산책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때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산책이었다. 지금은 더위를 힘들어하는 녀석을 위해 산책 시간도 해가 떨어지고 지열이 충분히 식은 밤 8시~9시 사이 밤산책을 하지만 예전에는 더운 여름이건 추운 겨울이건 날씨 따윈 중요치 않았다.
한번 산책을 나갔다 하면 기본 2시간 이상 산책을 했는데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신나게 놀다가 잠이 들었다.
새롬이는 산책할 때면 무조건 직진만 했는데 유턴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경로임을 아는지 새롬이 사전에 유턴과 후진이란 있을 수 없었다. 새롬이가 망가뜨린 리드줄만 해도 두세 개는 족히 될 거다. 성질 급한 녀석이다 보니 엄마의 보폭과 걸음 속도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어찌나 리드줄을 당겨대던지 새로 구입한 자동 리드줄이 연신 고장 나는 바람에 결국 자동이 아닌 수동 리드줄로 교체하고야 말았다. 수동 리드줄의 손잡이 부분도 몇 년 썼더니 해지고 닳아져 결국 끊어져 버렸다.
우리 새롬이는 그런 녀석이었다.
그랬던 새롬이가 나이 들어 저리 변해있으니 견생 무상이 따로 없다.
강아지 두 녀석을 키운 덕분에 산책이 두배로 힘들기도 했지만 매일 같이 강제 운동을 시켜준 사랑둥이들 덕택에 지금껏 중년기 성인병 없이 그런대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평소 왕성한 식탐을 자랑하고, 한번 게으름을 피우면 귀차니즘이 발동해 한없이 펴져있을 성격이어서 아마 강아지들이 없었다면 고도비만까지는 아니어도 중등도 비만은 너끈히 찍고 있었을게다.
또 집에서 군것질이라도 할라치면 음식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녀석들로 인해 세 번 먹을 걸 한번 먹게 되니 자연스레 음식 섭취량도 줄일 수 있었다.
가끔씩 정말로 전생이 있다면 자식과도 같은 강아지들과는 어떤 인연이었을까 떠올리며 혼자 상상의 시나리오를 쓸 때가 있다. 시나리오의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예전 결혼 전 아가씨 때 심심풀이로 본 사주에 의하면 내게 딸 하나와, 아들 둘이 더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딸 하나만 낳고 키웠으니 그 역술가의 예언은 틀린 셈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시절 인연에 의해 새롬이와 씩씩이를 입양하게 되어 사람 자식 양육이 아닌 강아지 자식 양육을 떠맡게 된 걸로 보아 역술가가 말한 아들 둘이 바로 새롬이와 씩씩이가 아닐까 혼자 몽상한 적이 있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보람되지만 한편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고,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옛 어른들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딸을 키우며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강아지 자식을 키우는 것도 인간 자식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구나 부모보다 앞서 몸이 아프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니 불효자식이 따로 없다. 앞서 두 녀석을 떠나보내고 생전 처음 느껴보는 슬픔과 고통에 몸부림치다 압도되는 것 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넋을 잃고 말았다.
자식이 먼저 떠나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왜 나왔는지,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심정을 강아지 자식을 키우고 마지막까지 함께하며 무지개다리로 배웅하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삶에서 지니고 가야 할 십자가가 있다고 한다.
내 경우 강아지를 키우지 않고 인간 자식 하나만 키웠다면 상대적으로 십자가가 가벼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강아지 자식을 셋이나 맡아 두 녀석은 이미 양쪽 가슴에 묻었고 마지막 새롬이 까지 배웅하게 된다면 정중앙 자리는 이제 새롬이 차지가 될 것이다.
호랑이가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죽어서 사랑의 흔적과 덕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인연으로 내게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생명은 귀하다는 전제 하에 녀석들에게라도 사랑을 베풀고 덕을 쌓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새롬아.
너희들이 아니었다면 엄마가 과연 이 세상에서 참된 사랑을 배울 수 있었을까?
이기적인 엄마에게 사랑을 배울 수 있는 또 한 번의 소중한 기회를 주어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