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왔다. 여름은 바야흐로 노출의 계절. 교복처럼 입던 요가복들이 지겨워졌다.
"그래, 내 살들도 공기를 쐬며 마실 나갈 자격이 있어."
곧바로 스마트폰을 들어 쇼핑을 시작한다.
'이건 노출이 너무 과해'
'이건 색이 너무 튀지 않아?'
'이건 너~무 안 튀어. 이거 살 거면 새로 옷을 왜 사? 집에 있는 거 입지.‘
고민 끝에 홀터넥 브라탑을 하나 골랐다. 차분한 브라운 톤이 시꺼먼 운동복들 사이에서 감성을 더해줄 수 있기를 기대하며 구매버튼을 눌렀다. 주문 후 택배가 도착하는 이틀간 이미 정독한 리뷰들을 재탕, 삼탕하며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도착한 브라탑! 배꼽까지 오는 적당한 길이, 피부톤과 어우러지는 따뜻한 갈색,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까지 완벽하다. 호다닥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입어보니 과연. 여성스럽고 홀터넥 끈이 은근 섹시한 느낌도 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어라? 기대하지 않은 녀석이 따라왔다. 홀터넥으로 파인 가슴께 옆에 볼록하니 살짝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겨드랑이 살, 부유방들. 아니 너네까지 나오라고 한 건 아닌데?
이걸 어쩌나. 내가 생각한 건, 무심한 듯 한 스푼의 감성을 얹은 그런 느낌인데. 여기에 겨드랑이살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볼록하니 튀어나온 겨드랑이 살이 꼭 두 눈처럼 거울에서 나를 쏘아보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나를 데리고 가실 건가요?"
'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사놓고 안 입는 건 너무 아깝잖아?'
'사실 요가원에서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어.'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건 요가원엔 거울도 없지. 겨드랑이 살이랑 눈 마주칠 일이 없는데 뭔 상관이람!'
이대로 소심한 마음에 져버리면 평생 요가원에서 예쁜 나시를 입고 운동하는 일은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았기에 움츠러드는 소심한 마음을 부러 일으켜 세웠다.
며칠 뒤 새로 산 홀터넥 나시를 입고 요가원으로 향했다. 요가원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 다 펑퍼짐한 반팔 운동복을 입고 있는 회원들 뿐이었다. 요가원마다 분위기가 다른데, 이곳은 단출한 옷차림을 한 회원들이 많았다. 다른 회원들이 나를 흘긋 보는 것 같았다. 청소년기에 졸업하지 못한 자의식 과잉을 가지고 수련을 준비했다. 강사님의 호흡에 맞춰 수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이 까꿍 나온 내 부유방과 눈이 마주칠까 신경 쓰여 동작 하나를 하고 나면 겨드랑이 부분을 추켜올렸다. 점점 집중을 요하는 동작이 많아지면서 부유방에 대한 생각은 안드로메다로 멀어졌다.
기분 좋게 수련이 끝나고 나니 모든 것이 다 좋아 보였다. 심지어 입고 있는 홀터넥 브라탑마저도 전혀 흠 없는 백 점짜리 요가복처럼 느껴졌다. 내가 왜 부유방으로 고민했는지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어찌나 날아갈 것 같던지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이 홀터넥 탑 꽤 괜찮은 걸? 다른 색깔로 하나 더 살까?'
이 생각은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는 순간 와장창 깨졌다. 볼록 나에게 다시 말을 거는 부유방.
"어떻게 나를 잊을 수가 있니!"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 이 친구와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