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몽은 없나?
나는 어린 시절부터 꿈을 참 많이도 꿨다.
꿈과 무의식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기에 그 당시의 나는 참으로 어렸다. 그저 이야기도, 주제도, 주인공도 다른 꿈을 매일 여러 개 꾸지만 대부분의 꿈이 다음날 아침, 눈을 뜨는 순간 휘발되어 사라진다.
가위에 눌리는 일도 꽤 많았다. 불자의 자녀인 나는 부처님의, 관세음보살님의 법력이 필요한 야매 신도였으므로 가위에 눌려 옴짝달싹 못할 때마다 생각나는 불경을 아무거나 읊조리듯 주절거렸다. 신기하게도 잠시 지나면 움직이지 않던 몸에 조금씩 미세한 힘이 들어간다.
다행히도 가위는 어느 순간부터 눌리지 않게 되었다. 가위를 눌리며 느끼는 공포보다 더 무서운 건 내 회사생활이었으므로.
밤마다 꾸는 수많은 꿈들의 원인을 찾아가던 중 다양한 심리학 도서를 읽었다. 가끔 생생하게 기억이 남거나 어떤 꿈을 꿨을 때의 감정이 꿈에서 깨어날 때도 쭈욱 이어지면 다이어리에 끄적거리기도 했다.
검색 사이트를 통해 꿈해몽을 검색하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어느새 내 무의식과 불안까지 감안해 적절한 꿈 해몽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마저도 이제는 AI가 전담으로 내 무의식과 꿈을 연관 지어 해석해 주는 똑똑한 시대가 되었다.
간혹 정말 재밌어서 꼭 기억에 남겨두고 싶은 꿈은 잠결에 음성 녹음으로 주절주절 녹음을 하곤 하는데, 잠에서 깬 후 다시 그 녹음을 들어보면 문장의 반 이상이 "어, 그래서, 으음. 뭐더라. 뭐였지."로 시작하고 끝맺더라.
마음이 너무 고통스러울 땐 항상 비슷한 꿈을 꾼다.
나는 학교에 있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내가 들어간 칸의 문을 잠그면 갑자기 내가 있는 칸의 높이가 점점 낮아지고, 동급생들이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관찰하듯 쳐다보는 꿈.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도망을 치다가 겨우 숨을 곳을 찾아 숨었는데, 한숨 돌리고 위를 쳐다보니 나를 쫓던 존재가 저 멀리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꿈.
그래서 나는 종종 선명하게 남는 꿈을 기록하거나 꿈으로 내 심리 상태를 체크하는 습관을 꽤 오래 유지하고 있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지금도 썩 잘 자는 편은 아니다. 밤새 수십, 수백 번을 뒤척이며 오만가지 꿈을 꾸면서 잠을 자도 지난밤에 꿨던 꿈에 대해 기억이 잘 안 나면 그냥 '잘 잤다.' 생각한다.
간혹 꿈에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오면 어떻게든 다시 잠들어서 꿈을 이어나가고 싶은데, 아 그건 또 안 되더라. 꿈마저도 불공평한 세상이 아닐 수 없다.
요즘 자주 꾸는 꿈은 이중 주차가 만연한 이 동네에서 주차 자리 좀 바꿔달라던지, 차 좀 빼달라는 갑작스러운 연락이 오는 악몽이 주를 이룬다.
내가 차를 필요로 할 때 차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꽤나 큰 불안으로 다가오나 보다. 불안장애는 별 거 없는 것 같다. 이런 것에 미친 듯이 심장이 나대면 그게 불안이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도 내 운전을 걱정하셨는데, 다음 집은 주차를 우선으로 집을 알아보겠다 했더니 그제야 선생님도 안심하셨다. 의사 선생님도 이중 주차는 굉장한 스트레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꿈이라는 것은 오늘의 나, 내일의 나, 미래의 나, 과거의 나. 이 모든 '나'를 무의식이라는 마음속 작은 아이가 찰흙을 조물 거리듯 조합해서 내보내는 한 편의 이야기인 듯한데.
무의식이라는 아이는 가끔가다가 출연 배우 선정에서 조금 오류를 범하곤 한다.
AI와 꿈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기 시작하며 알게 된 건, 꿈에 나오는 인물들은 무의식이 내 행동패턴을 시뮬레이션하기 위해 기억을 헤집어 적절한 인물들을 캐스팅해 단지 이용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왜 하필 아주 오래전 사귀었던 남자친구인지,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인지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무의식의 랜덤 뽑기까지 내가 관여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왕이면 로또 1등 꿈이면 좋겠지만 생각해 보니 나는 복권을 사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