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알겠죠? 왜 '훈자 마을'을 잊지 못하는지

파키스탄 훈자에서의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날. 인도로 돌아가는 길.

by 기록하는 슬기


여행 중 예민한 성격이 장점으로 발휘되는 순간은 다음날 이동 때문에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할 때이다. 만약 다음날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깊은 잠을 못 자서 알람 소리가 울리기 전에 미리 일어나 있는다. 혹 잠이 들었다 해도 바로 깬다. 역시나 훈자 떠나는 날 이른 아침에도 알람보다 빨리 눈이 떠졌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차갑고 뿌연 훈자 워터에 간단히 씻고 마지막 짐 정리까지 모두 마쳤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숙소라 최대한 조용히 준비를 했지만 우리가 움직이는 소리에 바로 옆방에 지내고 계시는 히데코 아줌마와 마사 아저씨도 잠에서 깨신 것 같았다. 빼놓은 건 없는지 다시 확인을 하고 방 문을 닫기 직전 이제는 정말 우리 방이 되어버린 이 작은 공간을 한눈에 담아본다. 그때 우리가 나가는 소리를 들으신 히데코 아줌마와 마사 아저씨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잠옷 차림으로 나오셨다.


"어? 아줌마 아저씨! 저희 때문에 일어나신 거예요? 저희 이제 가요.. 밖은 쌀쌀해요! 나오지 마세요! "

"에이, 그래도 가는 건 봐야지! 남은 여행 몸 건강히 조심히 하고, 우리는 언제든 어디서든 꼭 다시 보자."


SNS를 하지 않으시는 아줌마와 아저씨는 급하게 수첩을 꺼내 한 장을 찢으시고는 메일 주소를 적어주셨다. 여행 일정이 모두 끝나면 꼭 다시 만나자면서 메일로 소식을 전하자고 하셨다. 그리고 아저씨는 따뜻한 손으로 우리에게 이별의 악수를 청하셨다. 곧이어 아줌마는 H언니와 나를 차례대로 꼭 안아주셨다. 조금은 세게, 그리고 길게 포옹을 하는 순간 처음 인도 암리차르에서 우연히 만나고, 다음 날 또 파키스탄 이미그레이션에서 우연히 만나 헤어졌다가, 어느 날 갑자기 훈자 같은 숙소에서 다시 만나게 된 신기하고도 특별한 아줌마, 아저씨와의 만남이 스쳐 지나갔다. 아줌마의 눈을 쳐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 목 끝으로 차오르는 먹먹함을 일부러 꾹꾹 누르고 있었다. 이미 H언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아줌마는 그런 언니를 다시 꼭 안아주며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해주셨다. 그 '괜찮다'는 아줌마의 한마디가 꼭 그동안 괜찮지 않았던 일들도, 그동안 괜찮지 않았던 나도, 이제는 다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우리의 다리는 꼭 그 자리에 굳어버린 시멘트 같았지만 힘겹게 한 발자국 띄어내 아저씨, 아줌마께 정말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드렸다. 아줌마는 기어코 잠옷 바람으로 우리를 배웅하시겠다며 도로가 나오는 언덕 끝까지 나오셨다. 고개는 아줌마를 향했지만 걸음은 뒷걸음을 치며 서서히 우리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약속한 장소에 나가니 아직 지프차는 오지 않았고, H언니와 나는 마지막이라며 부지런히 이 순간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자고 했다. 막상 어제까지만 해도 이 거리를 거닐며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는데.. 여행 중 매번 느끼는 '마지막'의 순간은 우리가 애써 잊고 있던, 외면하고 있던 모든 감성과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곧 '소중함'을 그제야 머리로,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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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방'처럼 살았던 흔적들




DSC05387.JPG 날씨 좋은 어느 날 외출 전에 찍어본 우리 방 복도.





DSC05386.JPG 그 복도에서 보이던, 매일 눈 뜨고 감기 전까지 볼 수 있던 말도 안 되는 집 앞 풍경.






P20170921_093437777_84929FFF-5676-4CBD-BFD9-95E157F5D517.JPG 처음에는 이 물로 어떻게 씻나 걱정했지만 나중에 씻다 보니 그냥 똑같은 물이었다. 마지막 날 찍어 본 레알 '훈자 워터'







P20200109_144424148_93D418B4-E826-4384-A005-8FBD7647B00D.JPG 떠나기 직전에 우리가 지냈던 올드 훈자 인 간판 앞에서.




SE-5d64702c-ce9c-43d9-a10e-0714c43d9977.jpg 내가 앉은자리만 안전벨트가 없자 히데코 아줌마는 팔짱을 껴주면서 '인간 안전벨트'라며 자신을 꼬옥 잡으라고 하셨다. 사진은 아줌마랑 아저씨랑 언니랑 다 같이 빙하 투어 갔던 날.




약속한 시간에서 10분이 지나도 지프차가 오지 않아 슬슬 불안해져 갈 때 멀리서 익숙한 지프차 한대가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원래 오기로 했던 직원분이 못 나오게 되어서 여행사 사장님께서 직접 지프차를 몰고 오시느라 늦었다고 한다. 높은 지프차에 올라타니 H오빠와 J언니가 미리 타계셨고 우리 넷은 만나자마자 "훈자 정말 떠나기 싫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행사 사장님께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버스 기사님을 찾아가 우리 넷을 이슬라마바드 대우 버스 터미널 주변에서 내려달라고 직접 부탁까지 해주셨다. 우리는 따로 사장님께 부탁하지 않았는데 일부러 신경 쓰셔서 끝까지 우리를 배려해주셨다. 마지막까지 훈자에서 만난 분들께 받기만 하다 떠나간다.




P20170921_100649847_00DB0011-59F7-4E14-9230-FCFF2FEAE73E.JPG 떠나는 날, 내 눈에 비치는 모든 장면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P20170921_100645777_B5224C21-24E2-4C23-B9BE-6865DD201771.JPG 훈자의 로컬스러운 버스 터미널.







P20170921_100824763_14C2B7F3-85B3-4D21-9BC1-219EBBD181C8.JPG 우리가 출발하기 전가지 여행사 사장님께서는 이렇게 기다려주셨다.




조금은 불안해 보이는 낡은 버스에 올라탔고 창문 너머 보이는 여행사 사장님께 양쪽 손을 힘차게 흔들며 웃으며 인사했다. 버스는 출발했고, 훈자로 올라올 때처럼 다시 월미도 디스코 팡팡급 바운스를 타며 빠르게 도로 위를 미끄러졌다. 그렇게 버스에서 10시간쯤 지났을까. 멀미약 기운 때문에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밖은 가로등 불빛마저 잘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두움이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 물 쏟는 소리와 동시에 내 발끝에 차가운 액체가 살짝 느껴졌다. 뒷자리에 앉은 분이 물을 쏟았나 보다 생각하고 뒤를 슬쩍 돌아봤는데 아뿔싸.. 내 발끝에 닿은 액체는 차가운 물이 아닌.... 그분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나오고 있던 분비물이었다. 워낙 훈자를 통하는 도로의 상태가 좋지 않고, 장시간 버스에 타고 있어야 하니 구토가 나오기 쉬운 상황이긴 하다. 그래서 현지인 분들도 필수로 봉지를 하나씩 챙겨 온다고 들었는데 내 뒷자리에 앉은 분은 아예 대놓고 버스 바닥에 모든 분비물을 쏟아내고 계셨다.


H언니와 나는 자다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 직원분께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모두 잠든 시간이었고, 당시에 빠른 속도로 비포장 도로를 내려가고 있어서 버스에서 움직이기에는 무척 위험한 상황이었다. 상상 가능하시겠지만 내리막을 달리는 상황이라 그 분비물은 버스 바닥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더 놀란 것은 그 상황을 본 현지인들은 너무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분비물의 시작점을 쓱 한번 쳐다보고 다시 평온하게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 사건을 저지른 분은 모든 볼일을 끝내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맨 뒷자리 빈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H언니와 나는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저 제발 이 버스가 빨리 휴게소든 이슬라마바드든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상한 비위를 꾹꾹 눌러가며 견뎠다. 3시간 정도 뒤 버스는 휴게소에 들렀고 그 사이 버스 직원분께서 그 흔적을 대걸레로 슬쩍, 정말 슬쩍 닦은 듯 보였다. 이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남아있는 냄새는 여전히 우리를 힘들게 했다. 다행히 도심에 가까워지자 도로 상태는 한결 나아졌고 속도를 더욱 내기 시작했다. 훈자에서 출발한 지 꼬박 20시간이 지나서 드디어 이슬라마바드에 진입했다. 다행히 버스기사님은 우리가 대우 버스 터미널에 내리는 걸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그 주변 어딘가에 우리를 내려주셨다. 내리자마자 깨끗한 공기에 일단 살 것 같았다.



땅에 발을 디딘 시간은 새벽 4시. 주변을 둘러보니 허허벌판에 4차선 도로만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각자 몸뚱이보다 큰 배낭을 멘 4명. 그게 전부였다. 미리 저장해 온 맵스 미 어플 지도로 대우버스 터미널의 위치를 확인하니 걸어서 30분 정도 가야 한다고 뜬다. 무섭기도, 불안하기도 했지만 일단 우리는 일단 걷기 시작했다. 사람 한 명이면 꽉 차는 좁은 도로 귀퉁이를 따라 일렬로 걷다 보니 멀리서 여러 대의 버스가 정차되어있는 곳이 보였다. 그곳은 대우 버스 터미널이 맞았고 매표를 위해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한대의 버스가 막 출발을 하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는 버스 왠지 '라호르 가는 버스 아냐?"라고 우리끼리 농담으로 얘기했는데 정말 그 버스는 라호르를 가는 버스였다. 그다음 차는 2시간을 넘게 기다렸다가 타야 했다.




P20170921_102756864_5D695E49-FCBF-45E0-830A-1D54DE731ACA.JPG 우리가 탔던 버스. 이 버스의 매력은 겉보다 속이 더욱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거..







P20170921_160236054_580C7C8E-6A9C-48D4-B9AA-68C5E7B17D11.JPG 장시간 이동 중에는 거의 빈속으로 다니는데 중간에 내린 식당에서 난 굽는 냄새에 홀려버렸다. 냄새보다 맛이 더욱 일품이었다.






P20170922_083031341_7522B046-8160-45E8-82F1-B4F2CC459A66.JPG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탑승한 라호르행 버스.




우리나라 우등 버스만큼, 아니 그보다 더욱 좋은 라호르행 대우버스를 타고 정말 꿀 같은 잠을 잤다. 분명 5시간이 걸리는데 이때 체감시간은 1시간보다 짧았다. 특히 20시간 넘게 디스코 팡팡을 타며 내려온 이슬라마바드행 버스, 게다가 그중 10시간은 예상하지 못한 습격을 받아 한숨도 못 자고 뜬 눈으로 버스에서 내리기만 기다렸기에 그 어떤 장거리 이동보다 피곤했다.


두 번째 오는 라호르 대우버스 터미널에 내려 와가 보더 (인도-파키스탄 국경)로 가기 위해 대우버스 터미널 안에서 함께 운영하는 대우 캡스 택시를 이용했다. 흥정이 가능할까 해서 몇 번 노력을 했는데 대우 캡스인 만큼 정찰제라며 웃으면서 끝까지 거절을 해주셨다. 그래도 나는 여행 중에 이런 이동 중에 운은 늘 따르는 것 같다. 택시 기사님께서는 끝까지 젠틀하신 매너로 안전하게 와가보더에 내려주셨다.



이제는 익숙한 와가보더 길을 따라 걷는데 그 순간 지난 훈자에서의 2주가 아주 긴 꿈을 꾼 것처럼 아득해져 왔다. 긴 여행 속 정말 사랑하던 곳을 떠나고 난 후, 이 기분은 늘 묘했고 그리 달갑지 않았다. 지난 그곳에서의 기억들이 모두 거짓말 같아지는 이 느낌. 그래서 떠나기 전부터 나는 그렇게도 혼자 이별 연습을 해왔는지 모르겠다. 2주 전 이 길에서 무섭기만 했던 파키스탄 군인들과 이제는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차례차례 이어지는 ID 검사, 그리고 마지막 이미그레이션까지 모든 절차를 마치고 이제는 마지막 이 선만 지나면 인도 암리차르가 된다. 이 선을 넘으며 막연하게 두렵기도 설레기도 했던 마음과는 정반대로 이제는 머릿속에 지난 파키스탄에서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 하염없이 아쉽기만 하다.






P20200109_144926864_F5A7505B-C98F-48D3-8D78-0CBCD219975E.JPG 파키스탄 입국할 때도 탔던 반가운 꼬마열차. 이제는 같은 열차를 타고 파키스탄을 떠난다.






P20170922_144258813_1501AB0A-81F5-4CC1-96C2-4C44649EEA21.JPG 벌써 세 번째 오는 와가보더. 눈 앞에 국경이 보인다.





SE-64e55df3-b027-4b47-8df2-9973796c1904.png 얼마 남지 않은 파키스탄에서 친절한 군인 분들과 셀피. 우리들의 표정은 정말 저기 이모티콘과 같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건지 국경에 서있던 파키스탄 군인이 먼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셀피를 찍자고 한다. 이미 27시간 동안의 장거리 이동에 땀과 피곤에 폭삭 절여져 있던 우리 넷은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 활짝 웃었다. 즐겁게 사진을 함께 찍고, 정말 이제는 내가 들어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지막 선을 넘어 인도로 한 발자국 디디자마자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군인들이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GOOD BYE! AND SEE YOU LATER!"



나는 "GOOD BYE"라는 말보다 "SEE YOU LATER"라는 말을 좋아한다. 특히나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는 길 위에서의 이별의 순간,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을 듣고, 하고 나면 괜스레 우리가 다시 만날 그날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멀어져 가는 지나간 순간만을 껴안고 슬퍼하기보다 다시 만나 새로운 기억을 만들 그날을 기다리고 또 고대하게 된다.



왜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는지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하게 된 곳,

매일 밤 손 발은 시려도 마음만은 어느 열대 나라보다 따뜻했던 곳,

세계에 그 어떤 마을을 여행한다 해도 여기서 받은 마음은 다시는 못 받을 것 같은 곳,

여행자가 아닌 친구로서 한 약속을 지키고 싶게 만드는 곳,

다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너무 많은 곳,

왜 수많은 여행자들이 절대 잊지 못하는 마을이라고 하는지 수천번, 수만 번 고개가 끄덕여지는 곳,


파키스탄 깊은 산속에 작은 마을, 훈자라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동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난 모든 소중한 나의 인연들이여.



정말 정말 꼭.

SEE YOU LA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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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어. 내가 정말 좋아했던 훈자의 가을. 또 보자!









'훈자가 뭐길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그동안 훈자 여행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 정성스러운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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