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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16. 2024

헤어짐을 준비하던 날들

위병소 앞의 삶

 마침내 이 부대의 마지막 달을 지나고 있다.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대위가 되었고, 부대 앞 숙소로 이사를 했으며, 잠시 중대장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진급 날은 이례적으로 부대의 중소위들과 식사를 했다. 평소 나였다면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마지막으로 장교 후배들을 챙겨주고 싶었다. 이미 이곳을 떠난 그들의 선배 소대장들과 중대장들이 종종 나를 챙겨주기도 했고, 부대 이동을 하면 더는 이들을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자리를 마련했다. 개인적 의미가 깊었던 자리였음에도 선배들께 알려지고 칭찬을 들어 민망했다. 점점 개인주의적 성향도 강해지고, 모임도 줄어들며 유대관계가 약해지는 추세라 더 좋게 봐주신 것 같다. 이유야 어떻든 후배들과 시간을 가졌던 건 좋은 선택이었다. 평소 잘 마주할 일이 없던 타 중대 후배들과의 대화는 새로운 시각이 담겨 신선하고 즐거웠고, 친목 도모 볼링 시합도 좋았다. 후배들은 진급을 축하해 주며 '대위가 되셨으니 조금 부담스러운 분이 되시겠습니다.'라며 웃었는데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선배들을 그런 마음으로 대했으니깐. 실상은 계급이 바뀔 뿐, 내적인 성장은 크게 없겠지만. 하지만 경우에 따라 그런 ‘척’을 좀 더 하게 되거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월급도 약간 늘겠다.)

 중대장의 일 또한 아직까지 할 만하다. 오래도록 근무해 나로서도 익숙해진 중대이고, 정식 발령이 아닌 데다 갓 대위가 된 나의 상황을 감안한 도움의 손길이 많다. 평시이기에 가능하겠지만 공동의 업무에서 제해 주시는 배려도 있다. 덕분에 평소보다 중대 업무가 적을 정도이다. 

 배려를 원치 않는다든지 우리 중대도 동등하게 임무를 받겠다 등의 (여자 초임 장교 시절 종종 날을 세웠던) 패기 내지 객기는 마음속으로라도 부리지 않는다. 피할 수 있는 것들을 피해 멀쩡한 중대를 후임자분께 인계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 이 부대의 말년이기에. 

 일련의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아마 위병소 앞으로 숙소를 옮긴 일이리라. 전출을 한 달 앞둔 이 시점 숙소를 옮기는 일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지만, 오래도록 건축 중이던 독신 간부 숙소가 완공되어 어쩔 수 없었다.

 얼마간 지내본 위병소 앞의 삶은.. 금방 답이 나왔다. 불편하다. 많이. 

 한때는 다른 남자 간부들처럼 영내 숙소에서 지내길 바랐다. 모두와 동등하고 싶었다. 의욕도 있고 원하던 때에는 주어지지 않던 기회가,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린 이 시점에 주어진다. 최근 위병소 앞 삶을 조금 겪고.. 감사했다. 대부분의 군 생활을 영외 숙소에서 지낼 수 있던 일에 관해. 위병소 앞의 삶은 철저하게 부대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덕분에 중대장 임무 수행에 최적의 입지라 평일에는 나은 부분도 있다. 외부 숙소 보다 더 잘 수 있고, 며칠씩 이어지는 훈련 중 잠시 씻고 올 수도 있고, 늦은 퇴근에도 귀가 부담이 적으니. 

 하지만 퇴근 후 혹은 주말에는 다소.. 최악이다. 외출 시 복장,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방 안에서의 소음 통제 및 창문 개방 제한까지 신경 쓸 것이 많다. 손님 초대도 조심스럽고, 동료들과 앞마당을 공유하니 잠시 방을 나갈 때도 복장 점검은 필수다. 살짝 본가에 다녀오던 날은 위장까지 했다. 방 안에 스탠드를 켜 놓고 차는 주차장에 세워둬 바깥에서 보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도록.

 진급 전 잠시 휴가도 있었다. 휴가 때는 뜻밖에 지상군 페스티벌 때 알게 된 그 친구를 만났다. 서로 부대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데 마침 시간이 맞았다. 나이를 안 뒤 놀랐지만 친분은 이어가고 있다. 그 친분이 편한 이유는 같은 조직이라는 공통점 외에 업무든 인간관계든 다른 공통분모가 없음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당장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하는 건 아니기에.

그러고 보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끝으로 다음 부대가 결정되었다. 사단 정비대대의 운영 장교. 이제 참모직이다. (장교의 일은 지휘관과 참모 업무로 나뉜다.) 나는 전역 자원이라 원한다면 이곳에 남는 방안도 있겠지만 전역 전에 다른 부대도 경험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았고, 이곳은 본가에서도 멀고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타지라는 생각이 여전해 이동을 결정했다. 

 구체적 부대가 결정된 뒤 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 지휘관이 되실 대대장님을 확인했다. 파견 간 멀리서 뵈었을 뿐이지만, 안면이 있던 분이다. 반가움에 인사 겸 전화를 드렸다. "너구나." 그분도 나를 기억하고 계신다. 막연하고 낯선 곳이 이제 조금 덜 불안해진다. 

 이 부대에서 남은 시간은 한 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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