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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oy Oct 22. 2023

그래서 하는 일이 뭐라고요?

직장맘과 전업맘의 중간즈음에서

오후 12시, 큰 빌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멀쑥한 정장차림에 반듯한 넥타이를 매고 삼삼오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비교적 차림새가 자유로운 IT 회사가 상주하는 옆 건물에는 운동화를 신은 직장인들이 점심을 위해 각자의 취향대로 식당으로 향한다. 나는 이 틈을 비집고 나와 얼마 전 새롭게 문을 연 식당으로 향한다. 회사 건물에 아무리 좋은 구내식당이 있다고 해도 가끔씩 밖에 있는 식당에 들르는 것으로 사치를 부려본다. 물론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잘 로스팅된 고급 원두를 사용해 고급 사양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내린 근사한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은 내가 누리는 최고의 사치였다. 대중적인 브랜드에서 질 좋은 소재의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옷을 선택하고, 가방은 15년 전 구입한 제품을 계속 들고 다니지만 커피만은 놓칠 수 없는 일상의 큰 기쁨이자 내가 돈 버는 이유 중 백만 스물다섯 번째쯤 되는 구실이기도 했다. 


 막상 회사를 나와 일을 하다 보니 그때 누렸던 가장 큰 사치이자 하루의 큰 쉼표인 점심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계속 급한일을 쳐내다 보면 아이 하교시간인 1시 30분이 금세 다가왔다. 얼마 전 돌봄 교실을 보이콧한 아들의 하교시간에 맞추려면 점심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급하게 무릎이 튀어나온 운동복 차림으로 학교 앞으로 내려갈 때가 많았다. 그러다 다른 엄마들의 차림새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든 적이 있다. 


 하교 후 아들의 다음 코스는 놀이터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은 한 번도 바로 집으로 들어온 적이 없다. 하굣길에 만난 친구들과 놀이터로 직행하는데 이때 친구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이동한다. 이 말인 즉 배웅을 나온 다른 학부모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 되는데 후줄근한 운동복 차림으로 한두 번 마주치다 보니 민망한 생각이 들었다. 상대 학부모가 마음으로 내 차림새를 '스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들의 보호자로 만난 사이니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차림새, 말투, 표정 등등이다. 자녀 친구의 보호자로 필요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게을러 보이는 것'은 많은 암시를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부모가 챙겨야 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몇 가지를 빼먹을 수 있을 수도 있다는 암시. 물론 나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는 사람도 아니지만 아들을 위해  깔끔한 라운지웨어를 옷장 속에서 잘 찾아 입고 나가는 것이 여러모로 좋겠다고 판단했다. 


 늘 마주치는 엄마들을 놀이터에서 만나다 보니 서로 인사도 주고받고 담소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이 가운데 열혈 엄마들은 하교 후 한 번 학원과 숙제 후 저녁에 또 한 번 아이의 놀이터 시간에 맞춰 하루에 두 번 놀이터에 따라 나온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상대방의 직업을 묻지는 않지만 대부분 전업일 것이라 추측해 본다. 나 역시 다른 엄마들이 추측하는 전업엄마일 것이다. 하교 시간에 맞춰 꼬박꼬박 나와있고 복장도 대부분 후줄근에 가까운 홈웨어를 입고 있으니.. 


 그러나 창업 초창기 한 땀 한 땀 해야 할 일들이 많아 하루에 두 번 놀이터에 나갈 때면 모두 따라나가지 못하는 적이 많았다. 그러다 한번은 아들이 친구들과 공을 차다 아이가 넘어져 얼굴을 다친 적이 있었다. 다친 곳은 많지 않았는데 입 쪽이 까져서 피가 많이 났다. 당시 나는 줌으로 잡힌 미팅이 있어 집에 있었는데 다른 엄마의 전화를 받고 놀이터로 뛰쳐 나갔다. 마침 놀이터에 나와 있던 아들 친구 엄마들의 도움으로 문을 연 병원에 아이를 데려갔는데 다행히 별일 아니라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나왔다. 아이가 심하게 다치지 않아 안심이 들자 함께 아이를 지켜봐 주었던 엄마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집에 있는 것 같은데 아이를 혼자 두다 다치게 하는 엄마"로 비칠까 걱정도 되었다.


이때 양육은 물리적으로 나의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깊게 깨달았다. 그리고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내일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여전히 수입이 별로 없다는 것에 대한 자존심이 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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