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작은 씨앗이지만 끝은 장대한 나무 이리라.
나는 딱히 식물을 잘 기를 그린핑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육이나 선인장을 삼 개월도 못가 죽인 이력이 있기 때문에, 내 손을 거쳐가는 식물은 다 죽어 나가는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텃밭을 가꿔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게를 하면서 선물 받은 나무들에게 물만 꼬박꼬박 줬는데 잘 자라는 것을 보며 조금의 자신감을 얻었고, 매주 나오는 스티로폼 버섯 상자들을 어떻게 재활용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상추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추진력이 아주 약한 나는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고 나서 다이소에서 파는 꽃상추 씨앗을 샀고,(처음부터 씨앗으로 심으면 상추가 엄청 작게 자란다는 말이 있던데 나는 그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작으면 얼마나 작으랴.) 씨앗을 사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흙을 주문했다. 또 흙이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화분 작업하지 않고 방치했다.
그런데 일단 시작하니까 재미가 좀 들면서 화분도 척척 만들고 흙도 좀 더 시켰다. 상추 씨앗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있어서 내가 그전에 죽였던 식물들의 화분을 모아 그곳에도 조금씩 심어 주었다.
씨앗을 심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흙을 화분에 충분히 넣고 구멍을 15센티 간격으로, 손가락 한마디 반에서 두마디 정도의 깊이로 내준다. 물을 살짝 뿌려 구멍 안쪽을 적셔주고 씨앗을 조금 뿌린 후 흙으로 덮어준다. 그리고 흙을 토닥토닥 해주고, 물을 조금 주면 끝.
주의할 것은 흙이 보송보송해서 처음에는 많이 넣는 것 같지만 물을 주다 보면 가라앉기 때문에 좀 넉넉히 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과 한 구멍에 너무 많은 씨앗을 넣으면 나중에 성장이 더디다는 것 정도이다.
나는 처음에 그것을 몰라 흙은 적고 상추는 많은 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태의 결말은 나중에 알게 된다...)
어쨌든 씨앗을 심고 물을 듬뿍 주며 삼일 정도가 지난날 무심히 화분을 들여다봤는데 싹이 조심스레 피어있었다. 아주 귀엽게, 아주 정직하게 자기들 멋대로 땅위에 솟아 있었다.
나는 참 좋으면서도 신기했다. 싹이 틀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서 그런지 마음이 벅차오르며 잠시 잠깐 나의 손이 초록색이 된 것 같았다.(그린핑거....)
그리고 나는 '그렇게 나는 무럭무럭 자라난 상추들을 따먹었다'라는 해피앤딩일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