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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18. 2024

저에게는 과분한 딸이었어요

해리포터의 볼드모트처럼 나에게도 '입 밖으로 이름을 부르는 것이 금기된 단어'가 있는데 바로 자살이다. 글에서 간혹 써야 할 때가 있지여전히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이 단어를 듣거나 말하는 상황이 오면 배가 아프거나 심장이 심하게 뛰는 신체화 반응이 일어난다. 그래서 아무리 읽고 싶은 책이라도 볼드모트 같은 그 제목이 박힌 책은 우리 집 책장에 꽂히는 불편함을 참을 수 없어 사지 않는다. 그런 내가 가족을 이끌고 이름 때문에라도 가고 싶지 않은 '자살예방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아버님, 많이 힘드실 텐데 가족들하고 상담 한번 받아 보시죠. 저도 이혼문제로 정신적으로 어려울 때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받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딸의 사건을 처리했던 형사가 자신의 개인사까지 밝히며 남편에게 센터의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곳을 내 발로 찾아갔을까. 그렇게 엄마를 포함한 모든 식구가 상담을 시작했다. '정신건강상담요원'이라는 상담사들이 각자 다르게 배정되었다. 가족들에게 고마운 점은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모두 흔쾌히 따라줬다는 것이다.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이 시련을 이겨내려고 한다는 점에 큰 위안이 됐다. 상담을 갔다 오면, 도움이 되었던 상담사의 말을 전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의 상담사님이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울증 말기는 암 말기처럼 치료가 어려워요. 동생의 질병을 이해해야 동생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지금부터 100일간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아요. 갑자기 길 가다가 주저앉아 울 수도 있고, 못 보던 나를 마주 할 수도 있어요.”     


상담사님 말씀대로 갑자기 길 가다 주저앉아 우는 일은 심심찮게 일어났다. 센터의 상담사님들은 유가족 애도상담을 하시는 분들이라 앞으로 겪어나가야 할 감정들이나 떠오르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답변을 바로 해주셔서 도움을 받았다. 나는 애도상담을 넘어 트라우마 치료, 심리분석을 포함하는 좀 더 포괄적인 상담을 받고 싶어 외부 상담기관을 찾았다. 딸의 죽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과거, 현재를 점검해보고도 싶었다. 상담이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상담사님이 물으셨다.      


“딸은 지영 님에게 어떤 아이였을까요?”   

“저에게는 완벽한 딸이었어요.”


왜 '완벽한'이라고 말했는지 모르겠다. 질문을 듣자마다 감정이 격해져서 ‘과분한’이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더할 나위 없이 행복감을 주었던 아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딸이 나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는지 기억나자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완벽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야무졌어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어요. 워낙 밝아서 친구들도 잘 사귀고... 저하고는 달라서 좋았어요."     


"지영 님이랑 다르다는 건 어떤 점일까요? "    

"저는 낯가림도 심하고 막 활발하고 금방 친해지는 성격은 아니에요. 까칠하고 차분하달까. 딸의 명랑함이 좋았어요. 아이의 엄마인 게 자랑스러웠어요."    


항상 춤추고 노래하고 누군가를 웃기는 재밌는 아이, "뭐가 그렇게 좋아 맨날 웃냐?" 하면 "내가 웃상이잖아요"하며 너스레를 떨던 아이, 죽음과는 어디 하나 어울릴 데가 없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아프면서 내 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날이 어두워져 갔다. 그렇다고 딸이 나한테 주었던 의미나 기쁨이 변하지는 않았다. 아프기 전이나 후나 딸은 나의 자랑이었다. 그 아이의 엄마인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조도가 조절된 주황색 불빛의 상담실에서는 유난히 눈물이 잘 터진다. 울러 가는 건지 상담하러 가는지 모를 정도로 주일치 눈물을 게워낸다. 이제는 파블로프의 개 마냥 주황색 불빛을 보면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그렇게 감정을 폭포수처럼 뿜어내 집에 오면 몸져눕는다. 저녁을 차리려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영 기운이 없다. 손을 뻗어 <상실 수업>을 꺼낸다. 살려고 약이 아니라 책을 펼쳤다. 답이 되어줄까?


"상실이 벌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재는 사랑한 이의 죽음을 가지고 벌을 내리는 그런 신의 작품이 아니다."


"가장 비극적인 일은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남게 되는 이유를 누구도 알지 못한다."  


눈물 한 줌, 책 한 줄, 또 눈물 한 줌, 책 한 줄 읽으며 생각한다.  이 시련 속에서 나는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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