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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14. 2024

이별에 눈물짓는 날들이 지나면

“추억에 눈시울 붉히는 날들이 지나가면 그 추억에 미소가 번지는 날 들이 올 겁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치매 할아버지’로 추락한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이 장남을 잃고 한 말이다.  바이든은 최연소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기쁨도 다 누리기전에 한 살 된 딸과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부통령 시절, 그 사고에서 살아남은 두 아들 중 장남 보를 뇌종양으로 또다시 떠나보내야 했다. 아들의 장례식 2주 후, 자신의 감정도 추스르기 전에 사우스 캐럴라이나 총격사건의 희생자 가족과 생존자를 위로하기 위해 연단에 서야 했던 그의 마음을 가늠하기에도 버겁다. 어떻게 그가 모든 걸  집어삼키는 용광로 같은 상실의 아픔을 감당하고 이겨냈는지 인간 바이든이 궁금해 그가 한 PBS 인터뷰를 찾아봤다.  


“상실로 비통함에 빠진 이들에게 어떤 위로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진행자의 질문에 부통령 바이든이 아닌 자식을 떠나보낸 초로의 아버지가 대답한다.

  

“반드시 추억하며 미소 짓는 날이 올 거예요, 반드시. 그건 틀림없어요. 다만 목표를 갖고 싸워나가야 됩니다. 저는 아들이 저를 자랑스러워하기를 바라며 살아냈습니다.”       


혹자는 너무 애쓰지 말고 시간에 맡기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딸이 이해되고 덜 괴로운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이 들지 않았다. 자살유가족 자조모임에 나가  2년, 5년, 아니 10년이 지나도 마지막 사고 당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들의 울부짖음을 목격했다. 딸을 잃은 슬픔은 내가 생을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할 감정이다. 그러나 폭풍처럼 몰아치는 고통은 언제쯤 잦아들까. 고통에도 태풍의 눈 같은 무풍지대가 있다면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자살유가족이란 낯설지만 익숙해져야 할 단어를 검색해 봤다. 자살유가족의 자살률이 일반인보다 22.5% 높단다. 가족 구성원이 자살한 뒤, 남은 유족이 자살하기까지 기간은 평균 25.4개월이라고 한다. 안 보는 게 나았다. 얼마나 녹녹지 않은 생존이 될지 알게 된 것이다.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진정되지 않는 생각들이 날뛴다.


“더 이상 슬픈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어.”     

남편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딸의 죽음이 우리의 일상에 사정없이 던져진 경험을 통해 삶이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란 것을 알아버렸다. 비극만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에 압도된다. 불행 앞에서 '왜 나야?'는 오만한 물음이다. 

   

“ 슬픈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슬픔과 괴로움은 다른 거 같아."

슬픔과 괴로움을 분리할 수 있을까? 상실로 느끼는 고통은 불가피한 반응이라 해도 내 마음에서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불안이 생산해 내는 괴로움은 막고 싶었다. 그런데 그 괴로움의 공장은 바로 내 마음이었다. 두려움은 또다시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내 상상이었다. 내 마음과 생각이 만들어내는 공포감을 잠재우고 어떻게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겨내야 하는지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딸 본인도 모르겠다는 그 우울의 본질을 알아내야 했다.


죽음, 슬픔, 애도, 그리고 자살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가족 모두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치유글쓰기 상담도 더했다. 마음공부도 이어갔다. 긍정확언, 감사일기도 써 내려갔다. 아무것도 안 하고 추억에 미소 지을 날이 오기만 앉아서 기다리진 않겠다는 마음으로. 두려움은 아무것도 모를 때 가장 큰 법, 물러섬 없이 나는 딸의 죽음의 의미에 다가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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