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님이 하얀 북극곰만 보지 말고 까만 펭귄도 봐야 한대요.”
가족들의 저녁식사 시간에 아들이 오늘 한 상담을 전했다.
“응? 무슨 뜻이야?”
“사람들은 극지대하면 다 북극곰만 떠올리잖아요. 지금 우리 가족은 펭귄을 봐야 한대요.”
“그런데 북극곰은 북극권에 살고 펭귄은 남극에 살아서 논리적으로 안 맞는데... 사는 지역이 어차피 달라”
이과 남편의 뜬금포 논리타령에 문과 모자는 실소와 눈치를 던지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죽음이라는 큰 충격에 모두 매몰돼 있는데 우리에겐 눈을 돌릴 다른 곳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를테면 일이나 운동, 취미 같은 다른 관심사가 있어야 감정도 쉬어간다고 이해했어요”
딸의 소멸은 우리 가족에게 천체충돌보다 더 큰 충격파를 안겼다. 밥을 주어도 가지 않는 고장 난 시계처럼 나의 시간은 멈춰있다. 아들이 전한 펭귄론은 죽음에 매몰되지 말고 남아있는 삶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알아 아들? 나에게 펭귄은 너야.
이제 스무 살이 된 아들은 가족 단톡방에 올라온 동생의 마지막 메시지를 받고 서울에서 밤 12시에 택시를 탔다. 대답 없는 동생에게 죽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수십 통의 카톡을 날리며 택시 안에서 두려움에 떨었을 아들을 결국 딸의 장례식장에서 조우했다. 놀란 가슴에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혼비백산해서 달려온 아들에게 동생의 죽음이 준 충격만큼 고통에 몸부림치는 부모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 보였다. 장례식 내내 아들은 나를 부축하고 내 등을 두드리고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이제 고작 스무 살, 죽음의 의미를 몰라도 될 나이에 상주란에 아들의 이름이 올려졌다. 모름지기 부모란 죽을 때까지 자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내 아들에게 상주복을 입힌 몹쓸 어미가 되었다.
"네가 있어 든든하다. 이제 네가 부모님 잘 챙겨야 한다."
조문객들은 너도나도 아들을 붙들고 부모님한테 잘하라는 인사를 전했다. 그 말이 그저 전하는 위로라는 걸 안다. 그래도 아들에게 부모를 챙기고 우리에게 두 몫의 기쁨을 줘야 하는 부담을 안기는 게 불편했다.
“ 아들, 다들 엄마 아빠 위로 한다고 하는 말이야. 맘에 담아 두지 마. 엄마는 네가 행복하면 돼.”
“ 네. 저도 알아요. 걱정 마세요.”
눈치 없는 누군가가 또다시 아들에게 '장남인 네가 이제 더 잘해야 한다'고 하자 나의 오빠, 아들의 외삼촌이 보다 못해 조카에게 한마디 한다.
“지금 쌍팔년도도 아니고 장남이 뭘 더 해야 한다고 그래. 그냥 하던 대로 자기 삶 살면 돼. ”
한솥밥 먹고 커서 그런지 생각하는 게 같다. 역시 우리 가족이다. 속이 시원했다.
‘우리 아들은 그냥 내버려 둬요. 깃털처럼 가볍게 살게 두라고요.’
딸을 떠나보내며 딸에게 약속한 게 있다. 자꾸만 떠오르는 자책과 미안함의 굴레를 벗어날 길은 없다. 그렇지만 너에게 못다 한 사랑을 남은 가족에게 다 하겠노라고, 너의 오빠에게 그 사랑 전하겠노라고 다짐을 했다. 음악을 하는 아들은 딸의 장례식 후 작업실을 정리하고 집으로 왔다. 딱히 말은 안 했지만 그 선택에 왜 부모 걱정이 없었겠나. 아들이 곁에 있어 좋았다. 집에 훈기가 돌았다. 남편은 철이 드는 아들을 보고 흐뭇하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드는 듯했다.
"부모 마음 반대로만 가던 녀석이 자꾸 우릴 생각해서 결정하니 맘이 짠하네. "
아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분명한 아이였다. '조금만 가면 고지가 다 왔는데'하는 건 부모 마음이었고 아이는 '그 고지는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분명히 말했다. 결국 아들은 맞았다. 자신의 고지를 찾아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자기가 원하는 시기에 만들었다. 다들 하나의 길로만 갈 때 혼자만 다른 길을 선택할 때의 두려움과 외로움이란 그 길을 가지 않은 자는 모를 것이다. 우리는 같이 아팠고 울었다. 공부를 썩 잘했던 녀석이 '공부도 하고 음악도 같이 하면 좋으련만'은 나의 욕심이었다. 아들은 '공부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걸 정작 생각할 시간도, 할 시간도 없다'라고 항변했다. 아들은 대학대신 2개의 앨범을 혼자 힘으로, 자신의 용돈을 모아 만들었다. 그렇게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내는 아이를 나는 앞서서 걱정했다. 내 불안이 아이를 괴롭게 했을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아들은 스스로 증명했다. 아들은 동생을 잃고도 부모 앞에서 울음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안아주는 듬직한 청년이 되었다.
딸의 49재 때 친구가 열일곱 아들을 데리고 왔다. 우리 딸과의 추억이 많은 터라 충격을 받을까 봐 딸이 떠난걸 내심 몰랐으면 했다. 세월이 지나고 자연스럽게 아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괜찮아. 그것도 살면서 닥치면 감당해야 할 성숙의 값이라고 본다."
친구는 그것을 '성숙의 값'이라고 불렀는데 나의 아들도 그렇게 성숙의 값을 치르는 걸까. 나의 카톡 프로필 뮤직은 아들의 음악이다. 음악을 들으며 아들에게 마음을 전한다.
"북극곰은 갔어도 엄마가 사랑하는 펭귄은 함께 있어. 너에게 두려움이 가득 찬 인생이 아니라,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지만 그 어떤 것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아들, 우리의 마지막은 결국 해피엔딩이야. 사랑한다 나의 펭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