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십 대 자녀 둘을 키우려면 출렁이는 내 마음이 먼저 안정돼야 한다는 걸 깨닫고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하는 마음수련 프로그램의 첫날 과제는 주변인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들어보는 것이었다. 카톡으로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숙제하는 중. 답 알려주세요. 1. 내가 자주 하는 말 2. 당신이 듣고 싶은 말."
아이들의 대답은 궁금함을 넘어 걱정이 되었다. 혹시 애들 앞에서 부정적인 말을 했을까 봐 겁이 났다.
"1. 아, 힘들어 2. 사랑해."
남편이다. 남편은 유일하게 내 모습을 다 보여주는 사람이라 나의 하소연을 많이 들었다. 남편이 듣고 싶은 '사랑합니다'로 힘들다고 푸념한 기억은 지워주길 바라며 답장을 보냈다.
"1. 산책하자 2. 니 음악이 최고야."
방에서 내내 앨범작업을 하는 아들이 산책하는 동안만이라도 머릴 식히길 바라 우리는 틈만 나면 걸었다. '아들, 네 가사는 사람 맘을 울려. 최고야."라고 마음을 담았다. 아직 답이 없는 딸의 답변을 기다리느라 애간장이 탔다. 아이는 기숙사에서 점호를 끝내고서야 늦은 답장을 보냈다.
"1. 사랑해 2. 잘하고 있어."
'사랑해'가 이렇게 뭉클한 말이었나. 엄마가 자주한 걸 알아줘서 고맙다. 딸이 '잘하고 있다'는 격려가 듣고 싶었다니 괜스레 미안해졌다. 충분히 격려를 못 해 준 걸까? "딸,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몰라.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라고 늦은 칭찬을 보냈다. 이후 딸의 영양제 봉투에는 늘 '잘하고 있어'를 박아 넣어 응원했다.
그렇게 칭찬과 격려를 받고 싶었던 딸은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다. 한국에서의 학교경험은 초등학교 4년뿐인데 그 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딸은 잠을 포기했다. 아이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싶었기에 국제학교가 아닌 한국학교에서 정면승부를 하겠다고 했다. 입학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의 고등학교 일과는 아침 8시 등교, 10시 하교였다. 하루 14시간의 학교생활을 버텨야 했다. 평일에는 기숙사에서 지내니 딸의 생활을 알 수가 없었다. 기숙사 생활에 많은 아이들이 힘들어하고 퇴사도 제법 한다고 하는데 아이는 샤워실 줄이 긴 것 말고는 딱히 불평을 하지 않았다. 학교 밥이 부실하다고 민원이 들끓을 때도 딸은 '괜찮은데'라고만 했다.
"기숙사에서는 보통 몇 시에 자?"
"한, 두시에 자요."
"너무 늦다. 잠이 그렇게 부족해서 어쩌니. 12시에는 꼭 자"
"그럼 아무것도 못해요. 일과가 9시에 끝나고 기숙사에서 씻고 점호하면 11시인데 언제 숙제하고 공부해요. 두시에 자도 할 거 다 못해요."
새벽 한 두 시에 잔다는 것도 거짓말인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딸의 학교는 학생부종합으로 진학을 주력해서 극악의 수행평가 난이도로 악명 높았다. 학기 내내 수행평가를 하느라 내신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2주밖에 없어 새벽 4시에 자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방친구들이 불빛 때문에 못 잘 까봐 이불을 뒤집어쓰고 휴대폰 불빛으로 공부를 했다. 공부 안 하는 아이를 하라고 하는 것도 힘이 쓰이는 일이지만 공부를 한다는 애를 재우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수면시간이 걱정이 돼도 잔소리로 들을까 봐 첫 학기는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응원이라고는 딸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를 사놓고 잠시동안이라도 스트레스가 풀리길 바라는 거였다.
더 이상 잠을 안 자면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 때는 딸이 1학기 기말고사를 준비할 때였다. 아이가 집에 올 때까지 잠이 안 드는데 그날은 깜빡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날이 훤해 혼비백산하여 딸의 방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없었다. 스터디카페로 찾아가려고 문을 나서는데 딸이 들어왔다. 그때 시간이 아침 6시였다. 새벽 2시를 넘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신신당부도 해보아도 소용없었다. 딸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셔가며 밤을 새웠다. 그때서야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강박증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었다. 딸은 우울, 불안, 강박 3인조를 어깨에 짊어지고 자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아이는 그때 이미 신체화 증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답안을 밀려 쓰는 실수가 잦았는지 병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신체적으로 나타났다. 시험을 칠 때면 긴장과 불안으로 심장이 뛰어 숨을 잘 못 쉬고 손도 심하게 떨었다. 왜 자신이 이 답을 선택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괴로워했다. 그러다 보니 시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고 딸은 자신의 성적에 실망했다. 1등급을 받기 위해 계속 자신을 갈아 넣었다. 잠이 부족하다거나 몸이 안 좋으면 내가 기숙사를 나오게 할 것을 알아 나에게 자신의 상태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방학 동안 잘 재우고 쉬게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지 치료가 필요한 정도인지는 몰랐다. 고1 2학기가 시작될 즈음 아이는 극도로 예민해졌다. 학원에서 데리고 오는 차 안에서 딸이 오랜만에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 저 무기력증이 심한 거 같아요. 아무래도 병원에서 심리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무기력증이라고? 새 학기라 긴장이 돼서 불안한가 했어. 언제 그렇게 느꼈어?."
“진로를 정해야 하는데 하고 싶은 게 없어요. 친구들은 다 바쁜데 전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들어요.”
“그런 상태인데 공부를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했어? 엄마는 네가 무기력증이라고는 생각 못했어. 미안해.”
“공부는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한 거예요. 그냥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
“그랬구나. 심리검사 해보자. 걱정 마. 괜찮아질 거야. 엄마한테 말해줘서 고마워”
돌이켜보면 아이는 이때 이미 자살사고를 하고 있었다. 자해도 했다. 그래서 자기가 죽을까 두려워 병원에 가자는 말을 에둘러 심리검사를 해보자고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바로 심리검사를 하고 우울증 소견을 받았다. 약을 먹기 시작했지만 약은 듣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행사에서 댄스무대를 설 정도로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공연하기 직전에도 머리 위 조명이 자신을 내리쳐 죽기를 바랐다는 것을 딸의 휴대폰을 보고 알았다. 아이가 춤추는 모습이 예뻐 무대 영상을 수십 번 돌려보기를 했는데 매 순간 죽고 싶었다니 눈에 보이는 걸 믿어야 하는 건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내 친구들은 딸들이 미주알고주알 힘든 점을 다 털어놓아 들어주기 벅차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괜찮다고만 하는 딸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답답하면서도 아이가 의지할 수 없는 부모이고 어른인 게 슬펐다.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수 클리볼드가 쓴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서 심리학자 피터 랭먼 박사가 한 말을 보면 아이가 말하지 않는 비밀스러움에 대해 조금 이해하게 된다.
"딜런이 어떤 상태인지 부모님이 '보지 못한'것이 아닙니다. 딜런은 원래 비밀이 많은 아이고 자기 내면을 부모님뿐만 아니라 자기 주위 모든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감추었습니다."
물론 딸은 총기사건을 일으킨 범죄자가 아니지만 딜런이 우울증이 심하게 앓았던 것을 생각하면 유사한 점이 많다. '상실수업'에서도 고인이 비밀을 간직한 데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대개 당신 탓이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오직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일부를 알리지 않은 것이다. 또는 좋지 않다고 느껴지는 인생의 어느 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서 한 일이다."
딸은 전교생이 다 아는 춤 잘 추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 속은 곪을 때로 곪았다는 걸 부모도, 선생님도, 친구들도 알지 못했다. 아이가 우울하다고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대신 무기력하다는 표현을 썼다. 우울증의 증상들을 보였지만 대한민국 입시지옥에서 고등학생이라면 겪는 입시 스트레스인 줄 알았다. 기질적으로 불안감이 높은 아이에게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초강력 트리거가 되었다. 대학은 미래의 일인데 그 미래를 준비하느라 오늘의 딸은 죽어가고 있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잘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나의 아이는 그렇게 점점 멍들어가고 있었다.
*저는 수요일부터 4박 5일 명상수련에 들어와 있습니다. 답댓이 늦더라도 양해부탁드려요. 더 여여해져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