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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Oct 21. 2024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않아

도대체 언제 꺾일지 모르겠는 이 여름의 기세, 이글거리는 도로, 점심으로 먹은 돼지비계 가득한 김치찌개, 떠들썩한 김신영의 정오의 데이트, 그 어느 것 하나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데 제기랄. 제일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아들 앞에서 하필이면 터졌다.


오래간만에 아들과 만족할 만한 점심을 먹고 귀가하던 차 안에서 라디오를 튼 게 화근이다. 그것도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 김신영과 전화 연결된 중년여성이 곧 결혼하는 딸에 대해 여러 감정이 든다는 평범한 사연이 나왔다.


"그게 참. 딸 시집가면 기쁠 줄만 알았는데 준비하면서 예비사위랑 투닥거리고 맘 앓이 하는 거 보니 걱정되네요."


그 여성이 스무 살에 딸을 낳은 걸 제외하고는 딸을 시집보내는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나는 그 평범한 사람 사는 얘기에 눈물이 솟구치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든 옆에 앉은 아들에게 들키지 않을 요량으로 눈도 깜빡이지 않고 머릴 흔들어 눈물을 털어냈다. 그러나 빛보다 빠른 아들의 눈치에서 도망치는 데는 실패했다.     


“엄마, 울어요?”     

'정녕 모른 척해줄 순 없겠니, 아들아'. 나의 바람과 상관없이 아들은 이미 휴지를 꺼내 건넨다.     


“ 그게... 딸이 결혼한다는 말에... ”


"부러워서"는 뱉지도 못하고 목소리가 울음에 꺾인다. 신호대기가 고문의 시간이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한번 터진 눈물은 이 기회에 참았던 걸 다 쏟겠다는 기세로 쏟아져 나온다. 딸이 스스로 이 생과 작별한 후, 오래간만에 식욕도 돌고, 내 처지를 곱씹지 않은 꽤 괜찮은 날이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이의 딸 결혼 소식에 한순간에 무너졌다. 내 곁을 떠난 아이는 영원히 열일곱임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딸들의 결혼 소식 앞에서 불가항력적으로 무너질지를 알게 되었다.


“결혼은 하고 싶어요.”

“진짜? 요즘 애들 결혼 안 하고 싶어 한다던데 울 딸 의왼데? 아기는?”

“아기도 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딸이 떠나기 얼마 전 결혼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의외의 대답에 기분이 혼자 들떠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죽고만 싶어 하는 딸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만으로 설렜다. 그저 아이의 바람을 듣는 것만으로, 딸이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다는 것만으로 안심이 되고 기뻤다. 그렇게 딸에게 올 모든 순간을 함께 기뻐하고 축하할 엄마인데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이 가혹한 현실이 미치도록 서럽다.


아이가 떠나고 그래도 이만하면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 보는데서 울지 않고 가족들 챙기며 슬픔을 추스르는 줄 알았는데, 라디오 사연 하나에 그 노력은 온데간데없이 와르르 무너진다. 집으로 돌아와 그동안 보고 싶어도 마음의 준비가 안돼 미루던 자살유가족 다큐멘터리 '이블린(Evelyn)'을 틀었다. 울고 싶은 놈에게  뺨 때린다고 이런 날 제격이다 싶었다.



13년 동안 회피했던 '이블린'의 죽음을 가족과 친구들이 생전에 그와 함께 갔던 곳을 하이킹하며 마침내 털어놓는 다큐멘터리다. 가족의 자랑이었던 22세 의대생 이블린은 우울증과 조현병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하이킹 도중 자신도 자살유가족이라는 사람들을 만나며, 이 슬픔이 자신들만의 것은 아님을 느낀다. 작정하고 울려고 틀었는데 아름다운 영상미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게 감정의 파고를 담아내는 작품에 자세를 고쳐 앉아 집중해서 보았다.


찾아보니 감독인 이블린의 형 올란도 폰 아인시델은 <The white helmets>으로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를 수상한 실력자였다. 시리아 내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민간인들을 구하는 민간방위대의 활동을 담은 그였지만, 동생을 잃은 슬픔 앞에서는 13년이 지나도 무력해 보이는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나도 그렇다. 타인의 아픔은 공감하고 받아들여지지만 사랑하는 이를 잃은 나의 고통은 봉합되지 않는 벌어진 상처처럼 쓰라리고 아프게 삶 속에 존재한다. 마지막에 나오는 시가 아름다워 받아 적었다.


내가 먼저 세상을 뜬대도 슬픔으로 먹구름을 만들지 마

슬픔 앞에서 대담하면서도 온화하게 버텨

변화는 있겠지만 떠나는 건 아니야

죽음이 삶의 일부이듯 망자도 살아있는 자들 틈에서 영원히 살아

                            

                                        :


우리가 함께 걸었던 숲을 혼자 산책하면서

그대 옆에 있는 둑에서 내 그림자를 찾겠지

산에서는 우리가 항상 쉬어가던 길목에서 멈추고

아래 펼쳐진 땅을 바라보며 뭔가를 발견하고

습관적으로 손을 뻗을 거야


손이 허공을 헤매며 슬픔이 덮치기 시작하면

그대로 눈을 감고 숨을 쉬며 그대 마음속의 내 발소리를 들어봐 


난 떠난 게 아니라 당신 안으로 들어갔을 뿐이야


마치 딸이 나에게 읊조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떠났다고 슬픔 속에 살지 말라고. 난 떠난 게 아니라 엄마 안에 살고 있다고. 나도 나직이 딸에게 대답해 본다.


그래. 너는 내 안에 영원히 살아. 너를 잊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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