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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여고생들, 고립된 섬이 되다

by 송지영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를 아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널 보낼 용기》 출간 후, 완성된 이야기의 흐름을 존중하고자 일부공개로 변경합니다.
이어지는 서사는 책 《널 보낼 용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MUN 하는 우리를 밖에서 물끄러미 보던 장면이 안 잊혀”


친구가 말한 이 장면은 어떤 말보다 딸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모의 UN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딸은 참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약을 먹은 몸과 머리는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학교일과도 잠에 취해 따라가기 힘든데 그 외 활동까지 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결국 딸은 친구들이 하는 걸 창문으로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다. 그때 딸이 느꼈을 절망감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아파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또렷이 보인다. 그렇게 창너머 친구들을 바라보며 너는 무너졌겠구나. 네가 원하는 네가 되지 못해서.


가끔씩 아이들이 고맙게도 나에게 연락을 준다. 우리는 잘 지낸다는 거짓 안부로 서로를 안심시키고 각자 소장한 딸의 사진을 교환하듯 주고받는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을 지켜준 어린 여고생에게 감사인사를 보낸다.


"그 누구도 너처럼 서진이가 바라는 사랑을 주지 못 했어.

넌 할 만큼 했어.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다시 가벼워지길.

아픔이 없었던 예전처럼 일상을 살아가길.

항상 고마워하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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