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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Nov 11. 2024

은밀한 여고생들, 고립된 섬이 되다

"급식 먹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흰나비가 우리를 따라와 또 눈물이 났어. 발치정도 되는 높이로 낮게 날면서 우리 주위를 맴돌더라. 그거 너 맞지? 네가 우리 곁에 있다고 느껴졌어. 너도 우리가 그리운 거지?"     


장례식 마지막날, 딸의 친구들이 B4용지에 쓴 편지묶음을 아이의 영전 앞에 두고 갔다. 나의 고통만으로도 지구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듯이 무거워 그 아이들의 감정까지 열어볼 자신이 없었다. 몇 달이 흘러 짐정리를 하다가 편지 꾸러미가 내 발에 툭 떨어졌다. 읽어보라는 신호 같아 더 이상 미루지 못하고 열어보았다. 함께 나눈 행복했던 추억, 친구들에게 큰 의미가 되었던 딸의 존재, 아픔을 모른 척한 것에 대한 죄책감, 더 이상 고통 없기를 바라는 소망 등 유쾌함과 절절함 사이를 오가는 여고생들의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중에 특별히 가슴에 박히는 구절이 있었다. 친구들 중 몇 명은 딸의 위태로움을 이미 알고 있었다. "혹시라도 떠나기로 결정한다면 행복했던 기억만 가지고 가길 바래"라는 대화를 딸이 살아있는 동안 나누었다는 걸 알았을 때 얼굴이 뜨거워지고 숨이 막혔다. 그러나 곧 왜 딸이 나에게는 그토록 함구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봐도 봐도 적응 안 되는 아이의 자해 상처를 발견할 때마다 딸에게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고 침착한 척을 했다. 그러나 이내 목소리는 떨렸고 동공은 흔들렸다. 말없이 약을 발라주다가도 가끔은 울음이 터졌다. 나를 보는 딸의 눈동자에는 ‘엄마반응 불합격’이라는 실망감이 서려 있었다.     

 

엄마의 부담스러운 반응과 달리 상처받지 않고 담담히 들어주는 친구들에게 딸은 마음을 열고 의지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놔도 유별나게 대하지 않는 친구들을 곁에 뒀을 것이다. 친구들은 딸이 살기를 바라는 동시에 떠난다고 해도 편안하길 바라는 다른 옵션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두 번째 옵션은 없었다. 그저 살리려고 돌진했다. 엄마가 미워서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의 슬픔까지 직면하기에 아이는 버거웠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어쩌면 고등학생이 된 자녀에게 부모의 역할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겠다. 딸의 온 마음은 친구들에게 열려 있었고 그들의 위로와 관심이 절실했다.           


"내가 자살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댈 수 있어도 이름 석 자조차 모르는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해선 안 되는 이유는 도저히 댈 수 없다. 생명은 소중하기 때문에? 지금 그런 공익광고협의회에서 할 법한 입바른 구호로 그녀를 달랠 수 있을까? "     


김 완 작가의 <죽은 자의 집청소>에 나오는 문장처럼 딸의 친구들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내가 뭐라고 네 삶의 선택에 끼어들겠어.' 그렇게 그들은 나와 다른 방식으로 딸을 지켰다.


친구들의 편지를 읽고 딸이 추도식을 원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년에 한 학년 선배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운구차가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추도식을 했었던 일을 아이한테 들었다. 딸도 학교에서 그렇게 친구들과 작별하기를 바랐다. 그 마음을 모른 채 나는 학교에 최대한 조용히 마무리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또 다른 비밀을 간직하듯 딸을 외롭게 보내는 것에 미안해했다. 그들은 은밀하게 자기들끼리 추억도 아픔도 나누었다. 딸이 위험하다는 걸 안 친구들 중 누구도 선생님이나 위클래스를 찾지 않았다. 딸이 원하지 않는데 나설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요란스럽게 반응하지 않을 신뢰할 만한 누군가를 학교에서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딸이 떠나고 나서야 그 아이들이 상담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2학년 첫째 날, 담임 선생님은 언제라도 상담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는 메시지를 학부모 단체방에 보냈고 딸의 상태에 관해 알리고 관심을 부탁드리고자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아이의 건강과 관련해서 만나 뵙고 말씀드릴 내용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

얼마 있지 않아 바로 담임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어떤 일로 상담을 원하시는지요."

"네. 선생님. 아이가 우울, 불안이 심해서 선생님 찾아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금요일마다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아 그럼 아이 편으로 서류 보내주시면 됩니다. 따로 안 오셔도 됩니다."

     

선생님은 딸의 상태는 묻지 않고 바로 외출에 필요한 서류를 보내달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병원 진료를 위한 서류안내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상태를 단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진료확인서 및 상담확인서를 제출했기에 아이의 대략적인 상태가 적혀 있어 가벼운 질병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장례식에  선생님은 "모범생이라 전혀 몰랐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딸은 매일 14시간이나 학교에 있었지만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을 찾지 못했다. 그저 친구들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그런데 빡빡한 고2 생활로 접어들면서 더 바빠진 친구들은 딸의 아픔과 고뇌를 받아주기에는 자신들의 삶만으로도 벅찼을 것이다. 아이는 그렇게 친구들에게서도 점점 고립되고 외로워져 갔다.      


“네가 MUN 하는 우리를 밖에서 물끄러미 보던 장면이 안 잊혀”     


친구가 말한 이 장면은 어떤 말보다 딸의 마음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모의 UN 프로그램이 열렸는데 딸은 참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약을 먹은 몸과 머리는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학교일과도 잠에 취해 따라가기 힘든데 그 외 활동까지 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결국 딸은  친구들이 하는 걸 창문으로 물끄러미 바라봐야만 했다. 그때 딸이 느꼈을 절망감이 무엇인지, 가슴 깊이 아파했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 또렷이 보인다. 그렇게 창너머 친구들을 바라보며 너는 무너졌겠구나. 네가 원하는 네가 되지 못해서.


가끔씩 아이들이 고맙게도 나에게 연락을 준다.  우리는 잘 지낸다는 거짓 안부로 서로를 안심시키고 각자 소장한 딸의 사진을 교환하듯 주고받는다. 그리고 나는 내 딸을 지켜준 어린 여고생에게 감사인사를 보낸다.

  

"그 누구도 너처럼 서진이가 바라는 사랑을 주지 못 했어.

넌 할 만큼 했어.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다시 가벼워지길.

아픔이 없었던 예전처럼 일상을 살아가길.

항상 고마워하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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