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시몬스 침대 광고가 딱 남편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이름을 휴대폰에 ‘시몬스’라 저장했다. 25년을 알고 지냈는데 이렇게 한결같을 수 있나 싶은 사람이다. 뜨거운 나와는 다르게 항상 미지근해서 좋은 그이다.
살면서 남편이 우는 걸 두 번 봤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와 딸이 떠났을 때다. 늘 감정이 고요한 남편이 무너지는 모습은 자주 볼 수 없는 장면이기에 그의 눈물은 내 마음을 짓이겨 놓는다. 세상에 못되고 약아빠진 사람들은 잘만 사는데 왜 남편같이 선한 사람이 그토록 아끼는 딸을 보내야 하는지에 생각이 이르면 분노로 마음을 다 태워버린다. 남편은 대학에서 만난 후 지금까지 나에게는 물론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누군가를 아프게 할 위인이 못 되는 바보같이 착한 사람이 바로 그이다.
"우리 딸이 봄꽃같이 어여뻐 하늘이 시샘을 했나. 아니고선 이렇게 일찍 너를 데려갈 수가 없다."
발인식날, 딸바보 남편은 딸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으며 오열했다.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남편의 아재개그를 웃음으로 받아주고 서로 뻘한 농담을 하며 키득이던 개그콤비가 해체되었다. 둘은 쿵작이 잘 맞았다. 성격도 비슷했다. 속의 말을 잘 안 하고 꾹 눌러 담는 참 잘 참는 부녀였다. 네 명이 함께 식사를 시작해도 늘 아들과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했고 둘은 언제 자리를 떴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과형 인간들에게 모자의 대화는 네버엔딩스토리로 들였을지도 모르겠다.
“네 몸만큼 무거웠던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게 애처로웠다. 이제 그 짐 벗고 네가 늘 올려다보던 구름 위에서 쉬기를."
열일곱이 넘도록 딸을 이름 대신 애칭으로 부르던 그는, 그 귀엽고 동그란 아이를 잊지 못해 모든 슬픔을 가슴에 꾹꾹 묻어두고 있었다. 그런 그가 딸의 장례식을 끝으로 다시 눈물꼭지를 잠갔다. 회사로 복귀해서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지만 생기 없는 그의 모습은 깊은 상실감을 짐작하기에 모자라지 않았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My daddy, 내 사랑 XXX 씨!
생신을 맞아 아빠께 더 잘하고 더 아낌없는 애정을 쏟을 것을 약속합니다. "충성!"
아빠 덕분에 저는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고 사람을 보는 눈도 생겼고, 처신하는 법도 늘었고, 상대에게 친절히 배려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가족을 위해 늘 헌신하고 배려하는 모습과 열정에 무한한 감사를 전합니다. 아빠는 저의 가장 큰 자랑이자 기둥이에요. "
불과 떠나기 3주 전, 생일을 맞은 남편에게 쓴 딸의 편지다. 아빠에 대한 존경과 감사, 사랑으로 가득 찬 이 편지는 거짓이 아닐 텐데 왜 한 달도 안돼 우리는 상상도 못 해본 길을 가게 된 걸까. 남편은 딸과 인생 네 컷을 찍는 게 버킷리스트였다. 아이는 떠나는 날 아침, 아빠와 산책을 나가 인생 네 컷을 찍었다. 마치 아빠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듯이 아빠를 안고 한동안 감추었던 미소를 지었다. 바보 같은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드디어 찍었다며 그 사진을 보고 또 봤지만 이제는 눈물 없이 못 보는 사진이 되었다.
“상담사님, 저는 몇 단계쯤 와 있을까요?”
“음... 제가 보기에는 아직 1단계에 계시는 거 같아요.”
남편은 2주에 한 번씩 자살예방센터에 상담을 가는데, 자신이 애도의 몇 단계쯤에 있는지 궁금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죽음 후 감정변화를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5단계로 정의했다.) 본인은 3단계쯤은 와있는 줄 알았는데 아직도 1단계에 있다고 하니 꽤나 실망하는 듯했다.
“여보, 지연된 슬픔은 언젠가 다시 터진대. 너무 억누르지는 말자. ”
“그런가 봐. 상담사님이 나보고 억제형이래. 아빠들이 보통 그렇다고는 하던데...”
다행히 상담 후 남편은 뭐라도 감정표현 할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캘리그래피에도 도전했다. 친한 회사동료들과도 식사자리를 만들어 그동안의 소회를 밝히는 시간도 가졌다. 그렇게 동동 여미고 있던 자신의 감정을 조금씩 풀어놓고 있다. 우리는 서로가 있기에 이 시련도 극복해 갈 것이라는 것도 믿게 되었다.
“너는 남편이 있잖아. 둘이 의지하면서 이겨낼 수 있어. ”
오십 대에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친정 엄마는 지독하게 외롭고 두려웠다고 했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떠났고, 오롯이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은 처음 몇 년간 그녀에게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토마스 홈즈와 리처드 라헤가 5000여 명에게 43개의 스트레스 항목을 주어 체크하게 한 조사에서 배우자 상실로 인한 스트레스가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만약 모집단이 고른 스트레스 리스트에 자녀의 죽음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그 또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가슴은 아무것도 남지 않고 다 탄 재와 같아서 과부, 홀아비, 고아같이 부를 수 있는 이름조차 없다.
남편과 매일 산책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토닥이다 엄마의 말이 맞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의 위로이다. 상대에게 짐이 아닌 힘이 되기 위해 견디고 있다. 아들이 할배가 될 때까지 둘이 살아내자고 손을 잡는다. 사랑하는 나의 시몬스가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다시 활짝 웃게 해주고 싶다. 비록 큰 비극이 우리 삶에 지나갔지만, 우리의 인생은 여전히 유의미하며 실패한 것이 아니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