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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Nov 22. 2024

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스물아홉의 어느 날, 나는 나무처럼 든든했던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던 삶에 처음으로 떨어진 핵폭탄과 같은 고난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준 이는 김우중 대우 사장이 아니라 나의 아빠였다. IMF시절에, 그는 교사 월급으로 아들은 캐나다로, 딸은 호주로 떠나보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아빠는 “알아서 살아보라”며 우리 남매에게 더 큰 세상을 열어 주셨다. 그 결과, 우리는 아빠 덕에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살았다.     


아빠를 가장 잘 묘사해 주는 기억은 내가 호주에서 공부할 때,  운동화 상자를 다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의 편지를 보내주신 정성이다. 편지를 보내고 보내다 나중에는 학교로 팩스를 보내는 통에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다.  당시 학교 직원들은 우리 집에 무슨 급한 일이 생긴 줄로만 알고 불평은 못한 채 퉁퉁 부은 얼굴로 서신을 전달하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막상 편지를 열어보면 “돈 걱정하지 마라. 아빠, 엄마는 잘 지낸다. 원하는 건 뭐든 해보렴.”과 같이 반복되는 내용이었다. 그런 아빠의 사랑덕에 향수병이 생길 틈도 없이 일탈한 번 못하고 조신하게 생활하다 돌아왔다.


아빠는 엄격하고 다혈질이었지만, 내게는 화를 내신 적이 없다. 돌아보면 아빠도 딸바보셨던 것 같다. 오빠는 내 기억과 다른 그를 품고 있을 것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빠는 엄했지만 매 한번 들지 않으셨고, 집안의 어려움을 자식들에게 나눈 적이 없었다. 자녀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 보였지만, 언제나 한결같은 지지를 보내주셨던 그를 나는 존경했다.      


그런 아빠와의 갑작스러운 이별로, 사람이 불시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예고 없는 사고로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누고 떠나보낸 그 상실은 오랫동안 나를 아프게 했다. 그러나 더 깊은 비탄에 빠져있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나는 애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아픔을 삼켰다. 그 긴 어둠 속에서도 시간은 흘렀고, 엄마는 그 고통을 견디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다. 사별한 뒤에야 진정한 독립을 하셨다는 엄마는 지금은 그 누구보다 강인하고 멋진 노년을 보내고 계신다.   

   

지나갈 것은 반드시 지나간다.     

그 과정을 보며 나는 “나쁜 경험은 없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삶은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으로 나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이 과정일 뿐, 나는 그 터널을 지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삶은 때때로 풀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왜 내 아이가 병들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떠날 수 있었지?”      

그 의문들 앞에 서서, 나는 바보처럼 답을 찾으려 달려들었다. 지금껏 그래왔듯,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풀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인풋 한 대로 대체로 아웃풋 되었던 그동안의 삶은 내 능력치 때문이 아니었다. 인생은 본디 공정하지 않다는 진실을 반백 살이 다 되어서야 알았으니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딸의 죽음이  무슨 특훈인 것처럼 그 불공정한 본질을 순식간에 내 뼛속 깊이 박아 넣었다.  나는 이제 "왜 나에게?"가 아니라, "왜 나라고 예외겠어?"로 그 고통을 수용한다. 내 앞에 놓인 고난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견뎌내야 할 시련이었다. 이제 그 모든 무게를 짊어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내라고 하는 특명을 받은 것 같다. 철학자 니체는 말했다.     


아무리 깊은 어둠 속에 있다 할지라도

작은 틈 사이로 비춰 나오는 태양을 추구하라     

절망은 결코 영원하지 않으니

                         <왜 너는 편하게 살고자 하는가>


아빠의 사고가 없었다면 나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도 그의 딸로서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딸과의 이별은 나에게 종말이나 다름없는 암흑천지를 끌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이 상실의 아픔조차 삶의 끝이 아님을 안다. 이 시련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있고, 그것을 찾아가는 길에 느리지만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그 길 끝에서 우리 딸이 "역시 우리 엄마!"라고 웃으며 외치는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 눈물이 아닌 미소 지으며 그렇게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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