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바랐던 건 그저 너의 행복이었어. 너의 미소를 보는 게 내 하루치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 미소도 다 거짓이었나? 너는 분명 웃고 있었는데...” <7월 24일>
“두려웠어 지독히도. 매일 죽고 싶어 하는 너의 생각을 훔쳐보며 엄마는 무섭고 슬펐어. 어떻게 이렇게떠날 수 있니?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엄마를 남겨두고...너는 편안함에 이르렀을까."<8월 5일>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아이랑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어야 했다. 고민, 공부, 친구, 학교생활 이딴 거 말고. 상담사처럼 고민을 들어주고 나아가 해결사까지 되려 했다. 아이는 얼마나부담스러웠을까." <8월 26일>
"끔찍하게 싫어했던 병원 가는 길을 달콤한 기억으로 채워주고 싶었어. 오늘은 어디를 갈까, 뭘 좋아할까, 고민하는 그 순간들이 나를 살게 했어. 잠시나마 편안해 보이는 네 모습에 안심했던 건 결국 나였다는 걸. 널 위한 건 줄 알았는데 날 위한 거였더라.” <9월 2일>
딸이 사라지고 주체할 수 없이 펄펄 끓는 감정을 일기에 쏟아부었다. 아이가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부러움을 받던 행복한 가정에서 순식간에 수직낙하하여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엄마가 된 내 처지를 한탄하느라 정작 그렇게 떠나야 했던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이슬아 <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
이 문장들은,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랐던 나의 마음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딸은 사는 게 무섭고 버거웠다고 했다. 자신의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스스로를미워했고 그래서 괴로웠다.
"내가 죽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죽음이, 내 눈물이 납득될 만한, 인정할 만한 그런 것들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큰 사건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내 우울이 조금이라도 정당화되지 않을까. 부족함 없이 자란 내가 너무 밉다. 힘들 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으니까. 결국 나 자신에게 화살은 돌아오고, 내가 문제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 <4월 9일>
"나는 이상주의자라서, 내 이상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이상을 너무나도 바래서, 아마 살아있는 동안에 행복하긴 힘들 것이다. 살아갈 힘도 없고, 잘 살 힘은 더더욱 없다. 그냥 그렇다." <5월 20일>
딸의 일기에 남은 고백들은 열일곱의 아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고통의 무게였다. 그 중압감을 덜어주고 싶었지만, 결국 아이도 부모도 병의 복잡한 어둠을 뚫지 못했다. 딸은 떠났지만, 나는 보내지 못했다.
나는 살아보려고 떠났던 마음수련에서 처음으로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전했다. 진행자분이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할 때부터 눈물범벅이 되어 덜덜 떨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내야 했다. 딸과 일면식도 없는 이들 앞에서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거라 믿었다.
“그동안 사느라 고생했어. 애썼어, 아가.
뒤돌아 보지 말고 마음 편히 떠나
사랑했고, 또 사랑한다. 잘 가라.”
그 말이터져 나오자, 내 가슴 밑바닥까지 내려치는진동과 끝도 없이 쏟아지는 눈물에 정신이 아득해졌다.여기저기서흐느끼는소리들에 더 몽롱하고 어지러웠다. 그때가 딸을 진정으로 떠나보낸 첫걸음이었다. 아이를 놓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던 내가 딸을 놓자, 마치 출산 때 태반이 빠져나가듯 딸과 분리되는 것 같았다. 숨이 가벼워졌다. 매일이 이별이었지만 그때서야 작별했다.
얼마 후, 딸이 꿈속에 찾아왔다. 너무나 찰나여서 아이를 부르다가 깼다. 딸은 오사카 수학여행 갈 때 샀던 까만 미니스커트에 하얀 맨투맨을 예쁘게 입고, 미국 학교로 보이는 복도에서 그 특유의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나한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에는 남편을 아프게 했던 무거운 백팩을 들고서. 아이의 모습이 마치 미국 청춘드라마에 나오는 하이틴 스타처럼 상큼해서 '아유, 고와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동시에 나는 ‘가지 마’라고 외치고 있었다. 신기한 건, 꿈에서도 나는 딸의 죽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가지 마, 가지 마, 엄마 두고 가지 마."
하지만 딸은 아무 말 없이, 시종일관 웃으며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멀어져 갔다. 나는 수없이 가지 마를 외치다 깼다. 그 강렬한 순간이 뇌리에 남아, 엄마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 아빠도 꿈에서 그랬어. 기차역에서 바바리를 입고 손을 흔들며 떠나더라."
우리는 그때 비로소 그렇게 작별을 했다. 너는 이제야 안심하고 길을 찾아 나선 걸까. 꿈에서 본 딸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더없이 가벼운 표정으로, 아프기 전의 모습으로, 너는 그렇게 꿈꾸던 엔딩을드디어 완성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