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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지나간 자리에

by 송지영

스물아홉의 어느 날, 나무처럼 든든했던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던 삶에 처음으로 떨어진 핵폭탄과 같은 고난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준 이는 김우중 대우 사장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였다. IMF시절에, 그는 교사 월급으로 아들은 캐나다로, 딸은 호주로 떠나보냈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그는 “알아서 살아보라”며 우리 남매에게 더 큰 세상을 열어 주셨다. 그 결과, 우리는 그 덕에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살았다.


아버지를 가장 잘 묘사해 주는 기억은 내가 호주에서 공부할 때, 운동화 상자를 다 채우고도 모자랄 만큼의 편지를 보내주신 정성이다. 편지를 보내고 보내다 나중에는 학교로 팩스를 보내는 통에 직원들의 눈치를 봐야 했을 정도로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다. 당시 학교 직원들은 우리 집에 무슨 급한 일이 생긴 줄로만 알고 불평은 못한 채 퉁퉁 부은 얼굴로 서신을 전달하던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웃긴다.

막상 편지를 열어보면 “돈 걱정하지 마라. 아빠, 엄마는 잘 지낸다. 원하는 건 뭐든 해보렴.”이 무한 반복이었다. 그런 그의 사랑덕에 향수병이 생길 틈도 없이 일탈한 번 못하고 조신하게 생활하다 돌아왔다.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널 보낼 용기》 출간 후, 완성된 이야기의 흐름을 존중하고자 일부공개로 변경합니다.
이어지는 서사는 책 《널 보낼 용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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