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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Nov 28. 2024

나를 닮은 너에게

마지막 편지


어제는 11월의 폭설이 117년 만에

기록을 세운 날이었어.

온 세상이 눈으로 덮였는데

우리 가족들 반응 알지?

“네가 같이 봤으면 좋았을 텐데.”

겨울도 눈도 유난히 사랑했던 너였으니까.

그렇다고 너를 떠올리며

슬퍼한 건 아니니까 걱정 마.

     

네가 ‘홍대병’이라고 놀리던 오빠는

마치 얼음조각가처럼 폭설 속에서

한참을 뚝딱거리며 눈사람을 만들었어.

'와칸다 포에버'인가 했더니 오버워치 '리퍼'였어.

그렇게 한바탕 웃었지 마음이 서걱거리진 않았어.      


오빠가 갑자기 그러더라.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게 서진이를 위한

선물 같아요. 위로의 선물.”

너를 향한 마음이 슬픔이 아닌

다른 감정으로 바뀌어가는 게 느껴졌어.

눈사람을 만든 것도

아마 너에게 보내는 작은 인사였을 거야.

우리는 그렇게 너와 함께 살아가고 있어.         


“그리워말고 추억해 주세요.”

쪼꼬만 아이가 어떻게 그리움과

추억의 차이를  알았을까?

애늙은이 같이 모르는 게 없어 사는 게 힘들었나. 

그리운 날도 있지만, 너를 추억으로 품으려고 해.


다행히 엄마 취미가 포토북 만들기였잖아.

40도시를 누빈 우리의 세계여행과 일상이

자그마치 50여 권의 포토북에 담겨있어.

아빠는 또 어떠냐.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사진파일을

빠짐없이 저장해 놔서 우리에겐

너를 추억할 거리가 정말 많아.     

그거 알아? 사진 속 너는 언제나 웃고 있어.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반달눈, 샤샤삭 올라간 입꼬리, 예쁜 잇몸을 보이며 웃고 있는 거지?     


우리는 너의 바람대로 살아가. 때때로 생각해.

‘너는 엄마가 이겨낼 거라고 믿었던 거지?’

너무 힘들 때 서로를 의지하며 이겨내 달라는

너의 바람대로 우리는 그렇게 뭉쳐있어.

우리만이 나눌 수 있는 위로가 있어서

눈물 속에서 더 단단해졌고,

서로의 등을 얼마나 두드렸는지 몰라.

그러면서 우리는 그동안 누렸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네가 우리에게 준 웃음이

얼마나 큰 사랑이었는지

너의 부재를 통해 배우고 있어.      


시몬스 아빠는 새 차를 샀어.

아재개그를 받아줄 네가 없어서

한동안 풀이 죽었지만,

이제는 차를 닦으며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어.

얼마나 광을 내는지 차를 반짝반짝 닦는 게 아니라

도를 닦는 것 같아. 골프도 더 자주 나가.

엄마와 달리 집에 가만히 있지를 않아.

가만있으면 네 생각이 나는지 계속 움직여.

      

펭귄 오빠는 카투사에 합격했어.

발표 날, 오빠를 안고 울면서 콩콩 뛰었어.

비극을 맞고 불운이 계속될까 봐 두려웠는데

숨 막히던 분위기를 바꿔준 반가운 소식이었어.

오빠가 멀리 가지 않아서 엄마도 한시름 놨어.

작업실도 집 근처라 네 빈자리가 조금 덜 느껴져.     


해리는 여전히 간식 줄 때만 살갑게 굴어.

너의 해리 사랑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토론 중이야.

마지막 메시지에 외할머니한테 한 줄 남겼는데

해리에게는 세 줄이나 남겼잖아.

외할머니 서열이 강아지 밑이라며 우린 웃었어.

      

너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에게도 친절했어.

네 덕분에 병아리도 못 만지던 엄마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유기견 네 마리를

구조해 입양도 시켰잖아.

제리, 릴리, 벨라, 데이지가 우리 집에서

새로운 가족을 찾았던 경험은

엄마의 세계가 넓어지는 순간이었어.     

네가 있었기에 가능했어.

 

네가 넓혀준 세상 덕분에

엄마는 더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 됐어.

내 울타리 안만 챙기기에 급급했던 이기심

경계가 허물어지고 포근해졌어.

넌 떠났지만, 여전히 나를 성장시키고 있어.

너는 언제나 내 한계를 끊임없이 넘게 하는

나의 조련사야.

      

엄마는 너와 우리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고 있어.

쓰는 동안 힘들기도 했지만

네가 어떤 삶을 바랐는지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

희미하게나마 다가갈 수 있었어.

           

사랑하는 나의 아가.

우주의 시간에서 보면

우리의 시간은 모두 작은 점일 뿐이야.

너는 너로서 너의 빛을 다했고

엄마의 우주 안에서 영원히 반짝일 거야.

너와 함께했던 모든 계절을 기억할게.

엄마 딸 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언젠가 우리 또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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