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가족이라는 굴레를 넘어

by 송지영
브런치북 <널 보낼 용기>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널 보낼 용기》 출간 후, 완성된 이야기의 흐름에 맞추어 일부공개로 변경합니다.
이어지는 서사는 책 《널 보낼 용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으로 유전과 환경 모두 주요하지만, 유독 정신질환에서는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누군가가 우울증에 빠졌다면 우리는 즉각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와 같은 더 심각한 질환을 앓는 사람도 역시 '무슨 무슨 일을 겪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 '부모가 잘못 키웠을 것이다 ' 같은 반응을 접하기 쉽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나는 딸의 죽음 자체만으로도 삶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견뎌내야 할 고통은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부모였는지를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적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예의 바르고 열심히 산 자식을 둔 평범한 엄마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떠난 이후, 나조차도 내가 어떤 엄마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딸을 야단쳤던 어떤 날이, 공부하라고 스트레스 준 어떤 날이, 실수를 꾸짖은 어떤 날이 모여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엄마로서, 그들은 선생님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서로가 서로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나의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대답에 우리는 열네 시간 만에 사실은 참고 있던 울음을 결국 터트렸다. 새벽 네 시에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고 울었다. 우리만 아는 우리의 서사가 아프고 서러워서, 그렇게 떠나버린 어린 영혼이 가여워서, 오랫동안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눈물 속에 서 있었다. 그러다 우리답게 또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Y야,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어. 딸을 잃은 엄마로 동정하는 게 아니라, 본연의 나로 바라봐 주고 이 시간을 함께 견뎌줬기에 가능한 거였네. 그 길, 같이 걸어줘서 고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