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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지영 Nov 18. 2024

유가족이라는 굴레를 넘어

학군지에서 수학과 국어로 이름난 인기 강사 Y와 J가 수능을 마치고 우리 집을 찾았다. 명절도 연휴도 없이 1년 내내 달려온 그들은 수능이 끝나야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수업을 물리고 3일 내내 제자의 장례식장을 지켰던 그들의 슬픔은 가족의 것과 다르지 않다. 드디어 수능 이후 잠깐의 틈을 내어 딸이 있는 추모공원을 함께 찾기로 했다. 그들은 내 자녀의 선생님이기 전에 나의 후배이자 친구들이다. 딸이 수능을 마치면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함께 베를린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약속은 이제 지킬 수 없는 꿈이 되었다. 수줍음 많던 제자를  잃고 어떤 마음으로 지냈을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Y와 J는 한국 공부를 안 해 본 딸이 한국의 교육에 소프트 랜딩할 수 있도록 아이를 기꺼이 품어 주었다.  그들의 수업을 들으려면 긴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바쁜 강사들이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어  딸을 가르쳤다. 내가 그들을 찾아간 이유는 단지 그들이 유명 강사여서가 아니다. 치열한 사교육의 중심에 있지만, 그들은 딸의 좋은 멘토가 되어줄 따뜻한 어른들이다. 이 친구들이라면 아이가 내게는 털어놓지 못할 속마음도 털어놓을 스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선생님은 제가 처음으로 의지한 어른이자, 선생님이세요.

늘 제게 최선을 다한 위로를 건네주셨어요.

그저 제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던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떠난 후 여러 생각이 드시겠지만, 저를 그리워하기보다는 추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예상대로 딸은 마음을 열었고 의지했다. 학원가는 시간을 좋아했다. '수업대신 쌤이랑 떠들다 왔다'라고 할 만큼 학원을 다녀오면 오히려 긴장이 풀려 보였다. 딸은 떠나는 날 Y에게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외로웠던 아이에게 처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준 그들이 사무치게 고마웠다. 후배들은 딸의 투병 기간 동안, 아이뿐만 아니라 불안에 떨던 나까지도 붙잡아 주었다.     


그들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유족다워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그냥 나로 있을 수 있게 해 주는 내 편이다.  엄마의 따스한 눈길에 신이 난 아기처럼,  나는 몇 달간의 침묵을 깨고 속의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다 딸이 Y에게 보낸 메시지 중 한 구절로 인해 내가 자책에 빠졌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저희 엄마 아빠 이기적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나는 이 문장에 사로잡혀 몇 달을 괴로워했다. '어떻게 했길래 아이에게 이기적인 부모로 비쳤을까?' 이 질문을 수없이 되뇌며 나 자신을 후벼 팠다.    


“그러다가 안 되겠어서 상담 선생님께 여쭤봤어. ‘아이가 왜 우리를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하고 물으니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더라. 그건 아이가 스스로를 이기적이라고 하면서 부모를 부탁한 건데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때 알았지. 내 죄책감에 맘대로 해석했다는 걸.”

"누나, 그걸 몰랐어? 왜 말 안 했어? 나한테 물었으면 바로 아니라고 했을 텐데.”

“만나면 물어보려 했지. 너는 그 마음을 알 거 같았어.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까 이해되더라. 그날 남편 붙들고 한참을 울었어. ”   


오해가 풀리던 순간, 마치 마음속에 한참 박혀 있던 상처로 뭉쳐진 결석이 쇄석기로 분쇄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웃고 떠들고 진지해지기를 반복하며 우리만 아는 딸의 모습들을 끝없이 나눴다. 교실에서는 누구보다 뾰족함 없이 무난하고 순둥 하게 잘 따르던 내 아이는 내면에서는 어떤 전쟁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던 걸까.


“너희는 내색 안 하지만, 여전히 많이 아플까 봐 걱정 돼. 내가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안은 우리 가족이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했어.”

“보여주긴 뭘 보여줘.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있으면 돼.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가 알아서 이겨낼 거야.”     


Y는 "누나 걱정만 하라"라고 농담했지만, 골초인 그는 이제 아지트였던 옥상에서 담배도 못 피우게 되었다. J는 아직 딸이 쓰던 문제집을 버리지 못한 채 학원에 쌓아 두고 있다. 서로 '내 걱정 말고 너나 잘하세요'라며 농담 반 핀잔 반의 말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진지해진 Y가 내게 물었다.

    

"그건 궁금했어. 빠르다면 빠른 시간인데, 어떻게 마음을 정리하고 회복해 가는 건지."

지금까지 유쾌하게 대답해 왔던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 배가 뜨겁게 꿈틀거리며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엄마로서 미안하고 부족했던 순간은 당연히 많지... 그렇지만 내 온 맘을 다해서 사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한 거 같아.”     


자살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등이 퍼텍트 스톰이 되어 한꺼번에 몰아치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를 읽고 알았다. 그런데 딸의 죽음과 함께, 우리 가족은 '저 집엔 무슨 문제가 있겠지'라거나 '원인 없는 결과가 어딨겠어'라는 의심 어린 시선을 마주해야 했다. 사회적 낙인은 고통 위에 또 다른 무게를 얹었다. 김현아 교수는 <딸은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에서 ‘다른 어떤 질환보다 정신질환에 걸리게 되면 그 원인을 개인적인 잘못, 부모의 잘못으로 쉽게 몰아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고 썼다. 이어지는 구절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맞닿아 있다.


"질병의 원인으로 유전과 환경 모두 주요하지만, 유독 정신질환에서는 환경의 영향이 더 크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누군가가 우울증에 빠졌다면 우리는 즉각 그 사람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와 같은 더 심각한 질환을 앓는 사람도 역시 '무슨 무슨 일을 겪은 것이 원인일 것이다 ' '부모가 잘못 키웠을 것이다 ' 같은 반응을 접하기 쉽다."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나는 딸의 죽음 자체만으로도 삶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견뎌내야 할 고통은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부모였는지를 증명해야만 하는 사회적 시선까지 감당해야 한다. 딸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예의 바르고 열심히 산 자식을 둔 평범한 엄마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가 떠난 이후, 나조차도 내가 어떤 엄마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되었다. 딸을 야단쳤던 어떤 날이, 공부하라고 스트레스 준 어떤 날이, 실수를 꾸짖은 어떤 날이 모여 딸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잡는 심정으로 나는 엄마로서, 그들은 선생님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서로가 서로의 노력을 알고 있기에, 나의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대답에 우리는 열네 시간 만에 사실은 참고 있던 울음을 결국 터트렸다. 새벽 네 시에 서로를 뜨겁게 끌어안고 울었다. 우리만 아는 우리의 서사가 아프고 서러워서, 그렇게 떠나버린 어린 영혼이 가여워서, 오랫동안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눈물 속에 서 있었다. 그러다 우리답게 또 웃음이 터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Y야,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였어. 딸을 잃은 엄마로 동정하는 게 아니라, 본연의 나로 바라봐 주고 이 시간을 함께 견뎌줬기에 가능한 거였네. 그 길, 같이 걸어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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