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자, 바람에 깎인 바위 같은 얼굴이 거칠게 마모된 기색으로 들어섰다. 동네를 울리던 씩씩한 기운은 사라지고, 과일가게 박사장은 한결 작아진 채 서 있었다.
“김사장, 퇴근 안 하는가?”
내 표정을 살피던 그는 어느새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
“네, 사장님. 차 한잔 드릴까요?”
“좋지. 김사장 요새 바빠 보이던데?”
“새 소설 시작했어요.”
“그려. 여기 출판사 맞구먼. 허허”
말끝에 걸린 웃음은 금세 힘을 잃었다. 물이 끓는 동안, 방 안은 잔잔한 정적에 잠겼다.
“카모마일이에요. 드셔보세요.”
“아이고, 고맙네.”
그는 뜨거운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몇 모금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늘 유쾌하던 그가 오늘따라 더듬거리자, 나도 괜히 손에 쥔 잔만 만지작거렸다.
“다른 게 아니고… 나도 글 좀 써줄 수 있는가?”
순간, 잔을 놓칠 뻔했다. 그가 이곳에 남다른 관심을 보인 건 알았지만, 그 이유가 글 때문일 줄은 몰랐다.
“혹시.. 특별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자식헌테 편지를 써주고 싶구만… 평생 한 번도 못 써줬거든. 애비가 돼 가지고…”
“편지라면 책이 아니어도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는 입술을 한번 훔치고는, 몸을 바짝 기울이며 말을 쏟았다.
“그냥 편지가 아녀. 내 속을 좀 털어놓고 싶어. 그동안 말 못 한 거, 다 담아서… 내가 원래 말이 짧잖여.”
그가 흥분할 때마다, 서울에서 길러온 말투는 지워지고 고향 억양이 흘러나왔다. 예전보다 생기가 줄어든 얼굴에는, 잘게 부서진 감정들이 표정에 서서히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냥 써달라면,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써주겠어.”
“그런 말씀 마세요. 분명 쓰셔야 할 이야기가 있으신 것 같은데 편지라고 하셔서…”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말을 시원하게 못 하니, 김 사장도 답답할 게야. 그러니까… 그 편지가 유언이 되는 거지.”
“…네?”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우리 아들 준서가 좀 멀리 있어. 미국에 미시… 아, 그 미시 뭐냐… 미시진? 꼬부랑글씨라 들어도 까먹네. 암튼 거기 큰 대학 교수여. 수소 연구로 제일 유명하다 두만.”
“미시간대학교요?”
그는 아이처럼 무릎을 치며 좋아했다.
“맞어! 거기여 거기. 왜 이게 맨날 헷갈리는지 모르겠어.”
“아드님 대단하시네요. 가게에 그 사진이 아드님 맞죠? 근데 왜 갑자기 유언을…”
그의 체구가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못 해준 말을 책으로라도 남기면, 아들이 그래도 아부지를 좀 자랑스럽게 여겨주지 않겠나 싶어서.”
말끝에 쓸쓸함이 가득했다. 마른 입술이 몇 번이고 달싹였지만 이어질 말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 허공을 더듬었다.
“내가 어디까지 말했더라… 요즘 정신이 없어서.”
낮은 중얼거림이 흘렀다. 한참을 무언가를 생각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작년에… 집사람이… 갔어. 얘들 둘 다 출가하고, 이제 좀 살만하다 했는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더듬거리며 말했다.
“평소에 늘 웃으셔서… 생각도 못했어요…”
빈말이 아니었다. 매일 길거리에서 로또방 오 사장이랑 시끌벅적 농담을 주고받던 터라, 세상 근심 없는 어른으로만 보였으니까. 그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고 나니… 나라도 애들한테 뭐라도 남겨야겠다 싶더라고. 마침 그때 김 사장이 이야기를 써준다는 출판사를 열었잖여. 어찌나 반갑던지.”
아침마다 인사를 건네고 가게 앞까지 비질을 해주던 그의 호의가 그제야 이해되었다.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준서가 지 엄마 장례식에 왔었어. 그 뒤로는 연락이 없네. 아마도 나 때문에 마음이 상했을 게야.”
갈라진 목소리에는 그날의 당혹과 허망함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 일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박사장은 깊은 숨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장면들이 내 안에서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말끝마다 스치던 감정의 결이, 나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겼다. 그때 알았다. 이건 박사장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란걸. 한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빈소는 밤새 피워 올린 연기에 잠겨 있었다. 희뿌연 기운이 영정사진을 감싸다 흩어졌다. 검은 상복 차림을 한 윤정과 사위, 준서, 그리고 박사장은 말 한마디 없이 자리를 지켰다. 정적을 깨운 건 밖에서 들려오는 친척들의 낮은 목소리였다.
“미숙이만큼 억척스러운 사람도 드물지. 그 형편에 애들 공부시킨다고, 땡전 한 푼 없이 서울로 올라갔잖여. 고생을 얼마나 했어.”
박사장과 아내 황미숙은 고향 서산에서 함께 자라며 일찍부터 서로를 알았다. 골목을 오가던 시절부터 그는 활달한 미숙을 마음에 두었고, 제대하던 해 스물셋에 마침내 고백했다. 두 살 어린 미숙도 그의 성실한 눈빛을 받아들여, 둘은 스물셋과 스물하나에 부부가 되었다.
배움이 짧았던 박사장은 아내의 돈까지 끌어모아 중고 트럭 한 대를 샀다. 운수업을 시작했지만, 일은 들쑥날쑥했다. 인쇄소에 다니던 미숙은 첫째 준서를 낳으며 일을 그만두었다. 곧이어 윤정까지 태어나자, 한 사람 벌이로는 살림이 좀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일거리 많은 서울로 가자. 이대로면 애들도 우리처럼 살아."
자는 준서를 쓰다듬던 미숙의 동작이 잠시 멈췄다. 결심이 그녀의 눈에 번졌다.
"나는 우리 애들 꼭 서울서 공부시키고 싶어.”
두 사람은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달세방에서 외지 생활을 시작했다. 미숙의 말대로 서울은 할 일이 많았다. 그녀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낮에는 식당일, 밤에는 목욕탕 청소, 틈틈이 부업까지 이어가며 살림을 꾸렸다. 손은 늘 갈라져 있었고 허리는 성할 날이 없었지만, 낙천적인 기질덕에 웃음을 잃지 않았다. 박사장은 장거리 화물로 며칠씩 집을 비웠고, 그동안 그녀는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야 했다.
트럭의 바퀴가 멎은 건, IMF 한파가 몰아치던 때였다. 거리에 오가던 짐차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박사장은 한동안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급한 마음에 이삿짐센터로 나갔다가, 요령 없이 짐을 들다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했다. 그사이 미숙이 홀로 집을 떠받쳤다. 아침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집안의 기둥은 어느새 그녀가 되었다. 자식들만큼은 책상 앞에 앉히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그 지난했던 세월이, 빈소에 앉은 박사장의 가슴에 회한으로 밀려왔다. 네 식구 먹고살고,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발버둥 치며 살아온 나날들이었다. 그 모든 길에 아내가 함께 있었다. 두 아이가 학업이 끝나고 각자의 길을 찾은 뒤에야, 삶은 조금 느슨해졌다. 큰돈을 벌지 못해도, 둘이 입에 풀칠만해도 족하다 싶었다.
부부는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상가에 작은 과일가게를 열었다. 박사장은 트럭을 몰고 새벽마다 도매시장을 돌며 직접 과일을 떼 왔고, 미숙은 가게 앞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반겼다. 늘 시간에 쫓겨 각자 바쁘게 돌아다녔던 생활에서 벗어나, 저녁이면 두 사람은 같은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안 팔리면 애들 보내주고 우리가 먹으면 되지.”
쾌활하게 웃던 그녀의 얼굴엔 근심이 비치지 않았다. 오래 지고 온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유난히 즐거워 보였다. 그 사이 준서는 교수가 되고 윤정은 어린이집 교사가 되었다. 각자 짝을 찾아, 손주도 셋이나 생겨 더 부러울 게 없었다.
평온해 보이던 일상에 균열이 난 건, 미숙의 몸이 조금씩 깎여나가던 무렵이었다. 자꾸 살이 빠지고 등이 아파 들른 병원에서 돌아온 말은 청천벽력 같았다.
“췌장암 4기입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박사장을 미숙이 부축했다. 아무 말 못 하는 남편에게 정신 차리라고 호통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명대로 살다 갈겨. 항암 하다가 사는 것만 못하게 고생하다 가는 사람들 많이 봤어. 나는 그거 못혀. 내 집에서 내 밥 먹으면서 살다 갈겨. 애덜한테는 말도 꺼내지 마라. 괜히 외국 있는 아 맘만 더 불편하게 하지 말고.”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박사장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얼 해야 할지조차 가늠되지 않았고, 그녀가 없는 삶은 도무지 떠올릴 수조차 없었다.
미숙은 병원을 고집스레 거부했다. 항암보다 밥상을 택했고, 소독약 냄새 대신 햇빛 드는 거실을 선택했다. 박사장은 매일 새벽 과일시장을 다녀온 뒤 허리를 굽혀 밥을 짓고, 미숙이 앉은자리에 방석을 포개며 등을 받쳤다. 그녀의 통증이 심해질수록 그는 가게 대신 집을 지켰다. 트럭의 시동 대신 밥솥의 김이 그의 하루를 열었다. 한때 장거리 화물차로 전국을 누비던 남자는 이제 부엌과 거실 사이만을 오가며 아내의 숨결을 살피는 일로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여섯 달을 버티다, 어느 날 아침 미숙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아버지와 함께 엄마의 투병을 지켜본 윤정과 달리, 준서는 그 사실을 끝까지 알지 못했다. 미숙이 마지막까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그는 동생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오빠… 한국에 와야겠어.”
“왜 울어? 무슨 일 있어?”
“엄마가 호스피스 병동에 계셔. 빨리 와야 할 것 같아.”
대학에 부임한 지 2년, 준서의 하루는 늘 쫓기듯 흘러갔다. 강의와 연구, 기금 마련을 위한 회의와 출장으로 달력을 빼곡히 채우며 살았다.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야지,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늘 오늘말고 내일로 미뤄졌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으로 엄마 목소리를 들은 게 언제였는지 아무리 떠올려도 기억나지 않았다. 기내 좌석에 앉아 휴대폰 통화 기록을 한참 내려보았지만, 줄줄이 이어진 건 연구팀과 학회 관계자들의 번호뿐이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1년 전, 학회차 한국에 나왔을 때, 하루 저녁 시간을 내어 집에 가서 밥을 먹은 게 마지막이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환하게 웃던 엄마. 겉으로는 어디 하나 아픈 기색이 없었다. 아니, 살이 조금 빠진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갈 때 가지고 가라며 김치며 밑반찬, 국까지 잔뜩 얼려 꽁꽁 싸두었다. 하지만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런 걸 뭣하러 해요. 냄새나서 못 가져가. 한인마트에서 사 먹으면 되니까 이런 거 하지 마요.”
차갑게 내뱉었던 말, 그리고 순간 굳어지던 엄마의 표정이 눈앞에 겹쳐졌다. 준서는 눈을 감았다. 한때는 세상 누구보다 가까웠던 이름이, 이제는 삶의 가장 먼 자리에서 전해지지 못한 마음이 되어 머물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