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장이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나는 노트북을 열고 ‘박준서’를 검색했다. 여러 기사와 학회 사이트가 줄줄이 떴고, 그 안에서 드러난 경력은 마치 한 장의 이력서처럼 흠잡을 데 없었다.
미시간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스탠퍼드대학교 기계공학 석·박사
서울대학교 기계설계학과 학사
주요 연구 분야
· 고온형 고체산화물연료전지(SOFC) 성능 최적화 및 내구성 향상
· 저온형 고분자전해질연료전지(PEMFC)용 촉매 설계 및 전기화학반응 메커니즘 규명
· 전기화학 기반 에너지 변환 시스템 해석
수상 내역
· 2020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신진교수상
· 2019 미국 전기화학회 젊은 연구자상
말끔한 슈트 차림, 정교한 미소, 한 치의 흠도 허락하지 않는 이력. 아버지의 삶과는 겹쳐지는 지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박사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조차 멀게만 다가올 무렵, 나는 커서를 깜박이는 빈 문서창을 열었다. 박준서의 이야기가 알고 싶었다. 쓰고 싶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곧장 휴대폰을 켰다. 윤정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은평성모병원 호스피스, 3층 12호실.’
일 년 만에 밟는 한국 땅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고 아득했다. 택시가 병원 입구에 가까워지자, 시야에 작은 체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부지고 단단한 어깨, 그가 서있었다.
“아버지.”
박사장은 아들을 보자 덥석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캐리어 손잡이를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온다고 애썼다… 밥은 먹었냐?”
준서는 대답 대신, 아버지를 바라보기만 했다.
“왜… 이제야 말씀하신 거예요?”
박사장은 그 시선을 잠시 받아낸 뒤, 나지막이 내뱉었다.
“가자, 엄마 보러”
그가 캐리어를 끌고 병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준서는 그 뒷모습을 보며 한 걸음 늦게 따라 걸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간헐적인 기계음만이 공기를 흔들었다. 발자국 하나조차 지나치게 크게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12호실. 황미숙.
이름표에 적힌 글자를 보는 순간, 준서의 목이 메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윤정은 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오빠…”
준서는 대답 대신 동생을 안아주었다. 작은 어깨가 품 안에서 조그맣게 떨렸다. 윤정은 젖은 속눈썹을 깜박이며 말했다.
“엄마가 오빠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잖아. 새언니 둘째 임신 중인데… 괜히 걱정하게 한다고. 미안해.”
준서는 윤정의 등을 토닥인 뒤, 발소리를 죽이며 침상 쪽으로 다가갔다. 얇은 시트 위에 누운 사람은 늘 따스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엄마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뼈마디만 남은 얼굴은 광대가 도드라져 있었고, 희미한 숨결만이 생을 지키고 있었다. 준서는 침상 곁에 멈춰 서서 차마 손을 뻗지 못한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목구멍이 바싹 타들어가며 조여들었다. 그는 엄마의 손을 감쌌다.
“엄마, 아들 왔어… 늦게 와서 미안해.”
미숙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손끝이 가늘게 반응했다. 준서는 그 손에 얼굴을 묻었다. 전하지 못한 말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가슴이 미친 듯 요동쳤다.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과 맥박을 살펴본 뒤 나갔다. 박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요를 아내의 발목까지 곱게 덮었다. 이마에 손을 얹고, 낮게 속삭였다.
“이 사람아… 준서 왔어. 눈 좀 떠봐. 아들은… 봐야지.”
잠시 뒤 준서는 담당 의사를 찾았다.
“상태가 많이 위중하십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이 준서의 가슴에 얼음송곳처럼 박혔다. 그날 그는 ‘준비’라는 단어가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처음 배웠다.
다음 날 아침, 윤정과 박사장이 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 병실에는 준서와 엄마만 남았다. 그때 미숙이 천천히 눈을 떴다. 희미한 시선이 곧장 아들을 향했다.
“엄마…”
잠시 후, 미숙의 가슴이 아주 미약하게 오르내리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 리듬이 끊어지는 순간, 준서는 엄마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앙상한 몸에는 아직 미약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빈소로 옮긴 뒤에도 준서는 넋이 나간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윤정은 장례 물품을 주문했고, 매제는 몇 번이나 그의 상복 깃을 다듬었다. 시계의 초침은 돌고 있었지만, 그의 세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은 옷의 조문객들이 오가며 말을 건넸지만, 그 어떤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반 박사장은 손님들을 맞으며 정신을 부여잡았다. 울음을 삼키다가도 아들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은 번쩍 살아났다.
“우리 준서, 교수 돼서 지 엄마 보러 왔지. 이제 고생 다 끝났는데, 그걸 다 못 보고 가버렸네.”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지만, 준서의 얼굴은 점점 잿빛으로 굳어갔다.
“아이고, 준서야. 몇 년 만이냐. 이제 밖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다.”
박사장의 친구 재수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준서의 팔을 붙들었다.
“니 아버지가 늘 자랑했제. 과외 한 번, 학원 한 번 안 보내고 서울대 갔다고. 이제는 교수까지 됐다니…장허다. 어머니가 얼마나 뿌듯해하셨겠냐.”
그날 장례식장은 “돈 안 들이고 키운 효자”라는 말로 웅성거렸다. 위로인지 축하인지 모호한 말들이 공기처럼 흩날릴수록, 준서의 표정은 더 단단히 얼어붙었다. 그 침묵이야말로, 이 집안의 역사를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 같았다.
자정이 지나고 조문객이 모두 물러난 뒤, 윤정이 다가와 속삭였다.
“오빠, 부의함 정리하자.
”이서방이랑 같이 해줘. 나… 아버지랑 얘기 좀 할 게 있어.”
박사장은 여전히 영정 앞에 앉아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준서는 잠시 옆자리에 앉아 있다가, 낮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뒷바라지 못한 이야기를 왜 사람들 앞에서 말씀하세요. 아버지에겐 자랑일지 몰라도, 제겐 기억하기 싫은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만하세요.”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서늘한 날이 서 있었다. 박사장은 아들의 얼굴을 차마 마주하지 못했다. 가슴께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렸지만, 그는 돌처럼 굳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삼일장 내내 비가 흩뿌렸다. 화장장 마당에 고인 물웅덩이마다 먹먹한 하늘이 내려앉아 있었다. 아내의 이름이 호명되고 철문이 닫히자, 그녀는 불길 속으로 삼켜졌다.
“못난 사람, 뭐가 그리 급해서… 고생만 하다가나.”
윤정이 쥐여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훑었지만,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박사장은 화장실로 달려가 찬물에 얼굴을 처박듯 적셨다. 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흐름이 뒤섞여 뺨을 타고 흘렀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으며 문밖으로 나서려던 순간, 준서와 윤정의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
“오빠는… 말을 왜 그렇게 해.”
윤정의 울먹임은 금세 높아졌다.
“엄마가 안 계시면 내가 한국에 나올 일이 뭐가 있어. 이제 집이 없어, 나는.”
박사장의 발걸음이 얼어붙었다. 혹여 들킬까, 다시 화장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마음 한구석이 뭉텅 뜯겨난채로.
이제 집이 없어, 나는.
그 말은 벽에 박힌 못처럼, 박사장의 심장에 박혀 빠지지 않았다. 지금도 준서를 떠올릴 때마다, 그 메아리가 되살아났다.
나는 타이핑을 멈추고 박사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그날의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장례식 마치고 곧장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지. 그 뒤로 못 본 지가 벌써 1년이네.”
아버지 박영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히려 아들 박준서의 이야기가 더 선명히 떠올랐다.
“사장님, 계약서예요. 직접 읽어보시고 서명해 주시면 됩니다.”
“아유, 김 사장 고맙네. 나 같은 까막눈이 이런 거 본들 알겠어. 그냥 김 사장이 알아서 해. 내 얘기 써준다는데 내가 따지고 말고 할 게 뭐가 있겠어.”
나는 주요 조항만 짤막히 설명했다.
“사장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편의 소설로 다시 엮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이야기와 함께 책으로 묶일 거예요. 출간되면 넉넉히 드릴 테니 가족들에게 전해주셔요.”
박사장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수줍게 웃었다.
“그려. 김 사장이 알아서 잘해주겠지. 나는 내 얘기를 남길 수 있으면 됐어.”
그가 펜을 들었다. 떨림이 남은 손끝으로 서명을 마치고는, 잠시 자신의 이름을 내려다보았다.
박영수, 1964년 10월 26일생.
이름은 종이에 남았지만, 이야기는 아직 다 열리지 않았다. 그는 분명 주저하고 있었다. 끝내 꺼내야 할 고백 앞에서. 흐려져 가는 기억을 붙잡으며, 편지로 남기고 싶은 말들이 그의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처럼 뭉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