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면서 배운 것들
스타트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한 편의 글이 완성되는 과정하고 비슷하다.
일단 나의 문제를 찾는다.(글감을 찾듯이)
자료 조사를 한다.(글쓰기도 마찬가지지)
문제를 보는 관점을 명확하게 하고, 솔루션을 찾는다. (쓰기 전에 내용을 구성하듯이)
MVP를 통해 가설을 확인한다. (실행! 그러니까 쓴다.)
가설이 틀렸을 경우 다시 문제 발견 단계로 돌아가서, 동일한 작업을 반복한다. 그렇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다. 아이템이 수시로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요즘, 일을 할 때 ‘관점’과 ‘실행’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절감하고 있다.
관점은 말 그대로 Point of view다. 이전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정확한 뜻풀이를 하자면, 관점은 ‘대상을 바라볼 때의 내 생각의 방향이나 태도’다.
이 관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이냐 하면, 문제였던 것을 문제가 아니게 만들고, 문제가 아닌 것을 심각한 문제로 만든다. 말장난이 아니다. 어떤 관점을 갖느냐에 따라 대상의 무게감이 너무나 달라진다.
관점이 명확하지 않으면 문제가 뾰족해지지 않는다. 미세먼지도 문제고, 재활용 쓰레기도 너무나 문제다. 나만의 분명한 관점을 갖지 않고 이 문제 앞에 서면, 아무 것도 시작할 수 없다. 어떻게 솔루션을 찾아야 할지 그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내 생각의 방향이나 어떤 입장 없이 글을 쓸 때 한없이 막막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그렇다면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문제를 구체화해야 한다. 문제를 쪼개고 쪼개야 한다. 내 사례를 들어볼까.
나는 회사를 다니기 싫은 문제가 있었고, 그 솔루션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돈도 흘러버려서 다시 일을 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다시 채용 공고를 뒤지고 있는데 문득 슬픈 기분이 들었다. 어라, 다시 예전처럼 살고 싶진 않은데 어떡하지!ㅠㅠ 초반에 문제의 관점을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이런 낭패를 보게 된다.
스타트업을 시작하면서 일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 자리에 나를 어떻게든 잘 맞춰봐야지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일은 만들고 벌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점을 채우는 방식이 아니라, 강점을 한껏 발휘해서 더 강하고 훌륭해지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일에 관한 관점을 세우고 나니,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아직 별로 진행된 일은 없지만, 이렇게 기록이라도 시작하게 됐다. 퇴사 후 5개월 동안 의욕 없이 빈둥댄 날들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자, 이제 솔루션을 찾았으면 실행하면 된다!
...그런데 그 실행이 어렵다. 실행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간다.
이 정도는 나도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 실행에 대해 더 알게 된 것이 있다.
실행은 모든 것을 환히 비추는 등불이다.
중앙 정렬했다. 중요하단 말이다. 이것은 진실이다. 실행해보면 알게 된다.
앗, 생각만큼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네.
앗, 생각만큼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앗, 생각만큼 즐겁진 않네.
그렇다. 실행은 내 진심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내가 머릿속으로 좋아한다고, 잘한다고, 하고 싶다고 착각한 것들을 귀신같이 밝혀낸다. 거의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쯤되면 아, 나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판타지 속에서 살고 있었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한 달 넘게 공들여 디벨롭한 아이템을 직접 실행해보면서, 내 진심과 수없이 대면하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시장도 없고 고객도 없고 반응도 없을 때, 그러니까 어려움에 부딪치는 순간마다 저 위에 ‘앗’ ‘앗’ ‘앗’을 세 번 반복하면서, 다시 1단계 문제 발견으로 되돌아갔다.
이런 과정을 속에서, 문득 내가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었으나 하지 않았던 일들이 떠올랐고, 실행을 통해 진위여부를 가려내보기로 했다.
실행하면 당연히 생각대로 안 되고, 어려운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당신은 두 갈래 길에 놓인다. 못하는 일 관두고 다른 일을 찾거나,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보는 것. 여기서 이 일에 관한 내 진심이 빨간색, 혹은 파란색으로 선명히 드러난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늘 생각해왔는데, 막상 잘 못 그리니까 재미없어. 포기.
운동하기. 정말 하고 싶은데 아직 좀체 도무지 실행부터가 안 되고 있음... 인정하자.
매일 글쓰기. 잘 안되고 어렵지만, 일단 계속해보고 있음. 음, 좀 더 해보면 알겠지.
일상 영상 제작하기. 가끔 재미있는 소재가 떠오르면 만사 제쳐두고 하는 유일한 일. 아, 촬영 편집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그래 이건 사랑해요. 오케이.
이 밖에도 사소한 몇 가지 리스트가 더 있는데 진행이 덜 되어서 가타부타 말하기 어렵다. 다만 늘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생각보다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할 수 없는 일의 영역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
관점과 실행, 이 도구를 잘 쥐고 일을 잘 쳐내고 잘 벌여야지.
... 그나저나 다음주에 아이템 MVP 나가는데, 이번에는 잘돼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