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노트(2)
산책을 좋아하는 것과 산책을 '잘'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믿고 있다. 마치 여름을 좋아하는 것과 여름을 '잘' 견디며 보내는 건 다른 것처럼.
나에게는 편하게 신는 신발 네 켤레가 있다. 하나는 집 근처에 잠시 외출할 때 신는 슬리퍼, 또 하나는 슬리퍼를 신을 수 없는 곳에 신고가는 검정색 여름 샌들. 블로퍼 스타일의 반스 스니커즈와 마트에서 산 가볍고 통풍이 잘 되는 워킹화. 귀여운 메리제인이나 둥글게 생긴 흰색 스니커즈 같은 신발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자주 신는 건 저 네 켤레뿐이다. 그리고 어떤 친구를 만날 때는 거리와 계절과 무관하게 잘 걸을 수 있는 신발을 챙겨 신고 나서게 된다. 그 친구들은 산책을 좋아하며 잘하기까지 한다. 나는 좀체 오래 걷지 못하고, 목적지가 없는 산책에서 쉽게 부산해지는데 그런 친구들과 함께 걷다 보면 길가의 아주 작은 것들을 발견하는 일의 기쁨을 알게 된다.
걸으면서 나눈 이야기를 작게 떼어낸 빵 조각처럼 등 뒤에 흘려 놓고 나아가다 보면 길 앞에는 새로운 길이 있다.
그러나 나는 가끔 그런 당연한 것마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