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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누리 Aug 28. 2023

만타(萬朶)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시 부문 선정작

만타(萬朶)





  일기에만 존재하는 날씨를 안다.

  선택된 기후만이 기록용으로 후술된다.


  선별된 유년의 기억


  상주 옥상 위에서는 은박 돗자리가 말라가고 있다.

  어디를 보든 사위는 검은 산이다.


  떨기나무 우수수 빛도 보지 못하고

  훔쳐 신은 슬리퍼를 벗고 위로 올라서면

  겹과 겹 사이

  체온을 높이기에 충분한 열기.


  햇볕 쩡쩡한 날이면 인간도 은박지 위에서 슬픔 같은 것들을

  모조리 말려버릴 수 있다.


  냉이 꽃줄기 잎줄기를 아래로 끊어지지 않도록 당겨

  두 손바닥 사이에 줄기 끝을 끼우고 비비면

  파드득 파드득 냉이가 짤랑대고


  앵두

  달려온다.


  앞산 뒷산 옆산 다시 반복되는 것이


  이 또랑은 고디 잡기도 좋게 얕네 맞제


  얌전히 앉아 젖은 발을 말릴 만한

  가장 너른 바위를 찾아 물가를 떠도는 것이

  여름방학의 우선 과제였을지도 몰랐다.


  일기장을 덮으면


  눈을 똑바로 뜨고 있어도 차는 발등 위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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