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도시의 야망을 꿈꾼다.
오늘도 도시의 야망을 꿈꾼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궁금해지는 요즘 어디에 살지를 생각하게 된다.
폴 그레이엄의 도시와 야망이란 에세이를 보면 도시가 주는 메시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도시는 야망에 관한 메시지를 보낸다. 실수처럼 창문 너머로 엿듣게 되는 소리들은 듣고 싶지 않다고 해서 음소거할 수가 없다. 지리적 위치를 논할 때 엿듣는 대화의 수준의 질마저 따지는 저자의 친구 얘기를 들으며 어디에 사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서울이 주는 야망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나는 의도치 않게 여러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서울에서도 잠실, 논현동, 성북동, 선릉, 노량진, 당산에서 지내며 거리에서 들리는 다양한 메시지를 들었다. 서울의 거리에 같은 공간을 채운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메시지들이 들렸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 졌다. 지금 하려는 얘기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한다.
가로수길
가로수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트렌디한 느낌이 들었다. 눈에 띄는 멋쟁이들과 예쁘고 키가 큰 멋진 사람들, 젊은 사회인들과 유학 준비생들 그리고 근처 패션 스쿨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가로수길에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앉아있다는 카페부터 애플스토어, 대형 브랜드 매장들이 있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빈티지 소품샵과 디자이너 브랜드 옷가게, SNS에서 유명한 디저트 맛집과 레스토랑이 보였다. 걷다가 지쳐서 삼겹살집에 들어가 앉으면 다양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시끌벅적한 말소리에 귀가 울렸고 화려한 겉모습 속 어딘가 공허함이 느껴졌다. 가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두운 밤에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사람을 보고 성형광고가 붙여진 거리의 뒷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 속삭이는 것처럼 당신은 더 예쁘고 잘생겨야 한다는 말들이 들렸고 지하철 역사에 빼곡히 붙은 성형광고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잘 차려입고 거리에 나가 별처럼 반짝일 수 있다면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줄 거라는 메시지가 느껴졌다.
선릉
선릉에서 지낼 때 퇴근하고 걸어 나오면 노을이 지고 거리를 따라 국기가 쭉 늘어진 테헤란로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그리고 밀리는 차들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모두 바쁘게 자기 할 일을 하며 굴러가는 사회의 부품 같았다. 잘 차려입은 양복쟁이와 반바지를 입은 스타트업 직장인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전동 킥보드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쉴 새 없이 배달을 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녁을 먹으러 갈 때면 회식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고 토요일 낮에도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온 학생들과 학원 앞에 차를 댄 채 마중 나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저녁을 먹으러 갈 때면 회식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고 토요일 낮에도 대치동 학원가에서 나온 학생들과 학원 앞에 차를 댄 채 마중 나온 가족들이 눈에 띄었다. 도로 안쪽으로는 치안 좋은 높은 아파트에서 나와 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다양한 문화권의 음식점이 늘어져 있었고 조금만 걸으면 코엑스도 갈 수 있었다. 그곳에선 모두가 바쁘고 활동적이었다. 여가 시간에도 인맥을 쌓고 운동을 하고 매일을 열심히 움직인다. 지금보다 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라는 거리의 소리가 들렸다. 자고 나면 위대해질 거라는 달콤한 야망과 오늘보다 더 발전한 내일을 살 거라는 현실적인 꿈의 속삭임이 들렸다.
홍대
홍대 거리를 걸을 땐 시끄러운 젊은 이들의 대화 소리와 버스킹 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홍대역 9번 출구를 처음 나왔을 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무슨 일이 있는 줄 알고 지하철을 올라가며 걱정이 됐다. 언제나 축제처럼 금요일 밤이면 북적였고 클럽 앞으로 젊은이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젊음을 느끼며 당신은 더 힙해야 하고 자유로워한다는 외침이 들렸다. 내가 가진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만은 틀에 벗어난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도 좋다는 메시지를 받으니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있던 열정이 꿈틀거렸다.
노량진
지하철을 타고 노량진에 내렸다. 시험을 준비하는 언니를 보러 주말마다 자취방으로 가는 길엔 수산시장의 비릿한 냄새와 거리의 사람들의 열정이 섞인 땀냄새가 났다.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간단한 음식 냄새들이 풍기는 큰길의 학원가 사이로 헐렁한 츄리닝을 입고 안경을 쓰고 손에 책을 든 사람들이 빼곡했다. 자취방으로 가는 골목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있었고 피시방과 노래방 같은 의외의 놀거리들이 즐비했다. 토요일 저녁에 맛있는 걸 함께 먹는 낙으로 우린 서울 생활을 이겨냈다. 새벽에 일어나 수업 자리를 맡으러 나가도 언제나 사람들은 줄 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같은 야망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노량진을 보았다. 주말이면 찾아와 밥을 먹이는 가족들, 앞만 보고 책을 보며 혼자 걷는 사람들, 손을 잡은 연인들,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바쁜 부동산 중개인들과 학생들 그리고 분주한 식당들이 보였다. 노량진 거리를 걸으며 달콤 씁쓸한 다크초콜릿이 당겼다. 합격과 탈락이 공존하는 이 곳에선 더 치열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명확히 전해졌다.
논현동
논현동 사진작가들이 많이 산다는 조용한 동네에서 꽤 지냈다. 큰 길에는 회사 건물뿐이라 주말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창문을 열고 새소리를 들으며 혼자 그림 그릴 때면 스스로에게 더 집중할 수 있게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없는 동네지만 새벽에 나갈 때면 언제든 나보다 일찍 나온 사람들이 신기했다. 새벽 네다섯 시에도 언제나 먼저 걸어가는 직장인들을 볼 수 있었고 높은 건물의 불빛은 꺼질 줄 몰랐다. 해가 지면 유흥업소에 줄 서 있는 고급 차들과 수시로 순찰하는 경찰차를 볼 수 있었다. 동네 길가에는 촬영이 잦았고 이따금 가게에서 연예인을 마주쳤다. 거리엔 사람보다 차가 많았고 골목길을 지나치는 외제차 말고는 누구와도 부딪힐 일이 없었다. 역까지 거리도 멀고 한 개뿐인 동네 마트에 가도 싱싱한 물건들이 별로 없어 차가 없으면 친절하지 못한 주거지였다. 이 곳의 장점은 온전히 주말의 고요함뿐이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섞일 수 없는 기름과 물처럼 서로의 생태계에 관여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주말이면 한산한 집 주변을 걸으며 천천히 거리를 둘러보았다. 울타리 높은 단독주택들과 작은 디자인 회사들이 있었고 여러 개의 작은 미용실 너머로 대로에 있는 높은 회사 빌딩이 있었고 건물 사이의 빈틈으로 유흥업소가 보였다. 사람 냄새나지 않는 이곳에선 낮에 혼자 숨어도 누구도 찾지 않을 거라는 공허함이 몰려왔다.
당산
당산에서 지낼 땐 이따금 양복을 입고 외국어로 전화 중인 직장인의 말소리가 들렸다. 높고 낮은 건물들 사이로 낮이면 회사원과 주부들로 북적이고 아이들도 보였다. 줄지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앞 길바닥에 뿌려진 유흥주점 명함이 무색하게 조용한 밤이 찾아오곤 했다. 가장 좋은 점은 원할 땐 언제든 한강으로 갈 수 있었다. 츄리닝을 입고 선유도공원으로 걸어가는 다리 위로 국회의사당이 보였고 수많은 반짝이는 고층 빌딩의 잊지 못할 야경과 함께 자살을 방지하는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매일 보는 야경은 지친 날이면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피곤한 오늘을 이겨내고 남들처럼 괜찮게 살고 싶어 졌다.
성북동
성북동에서는 골목길 원룸가에 학생들이 많았고 높은 건물보다는 오래된 가게들이 가끔씩 보였다. 동네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버스를 타고 조금만 가면 경복궁 근처로 나갈 수도 있고 지하철을 타면 대학로나 DDP로 전시를 보러 가기도 수월했다. 특색 있는 지역은 회사와 집만 오가며 밤에 잠만 자며 살았지만 이 곳에선 외롭지 않았고 여자 혼자 살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거리는 달라도 서울에는 꿈과 야망이 가득했다. 서울에선 어디를 가도 당신은 더 원해야 한다는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작가 폴은 단점을 감수하더라도 어떤 지역을 선택하고 살게 되는 사람들은 비슷한 야망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기에 내가 가진 야망과 거리의 야망이 일맥상통할 수 없다면 무의식적으로 하던 일의 의욕이 꺾일 수도 있다고 주의를 준다.
모든 도시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마다 다양하고 많은 야망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느끼지만 내가 살던 지방의 도시는 그렇지 못했다. 모든 도시가 야망을 가지진 못한다. 서울에서 꿈을 좇아 쳇바퀴에 굴러가다가도 고향으로 돌아와 푹 자고 일어나면 그 편안함을 못 이겨내고 그동안 일구어낸 목표와 열정을 잊어버리곤 한다. 그저 당신은 안전하고 안정적이게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적한 이 곳에선 야망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서울은 기회의 땅이라는 뻔한 이야기를 듣고 문명의 빛을 따라 무작정 상경했고 한때는 서울 사람들과의 경쟁은 출발선이 다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곳엔 수많은 회사들, 학교, 문화시설, 고층 빌딩, 대형 서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들이 모인 좋은 인프라가 있었다.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언제든 재료를 구해 만들 수 있고, 발 닿는 거리마다 채용 공고를 올리는 회사가 넘쳐 난다. 서울에는 딱 한 가지 가족들 빼고 온갖 좋은 것들이 넘쳐났다. 여전히 자극이 필요할 때면 테헤란로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오늘도 나는 큰 꿈을 열망하고, 이루지 못한 일들에 잠에 못들게 갈망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길게 늘어진 높은 건물들 아래에서 야망이 가득한 눈으로 반짝이는 사람들을 마주치고 싶다.
여행을 다니며 어디에서 살지를 생각하고 내가 원하던 풍경을 그려본다. 어떠한 환경에서 인생을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 함께 살 사람, 환경에 따른 일의 생산성과 실질적 효과를 생각해본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으며 정말로 어떤 삶을 꿈꾸는지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