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Days Of Summer In Canada15

15장. 밴쿠버랑 연애한 지 300일

by 김지유

15장. 밴쿠버랑 연애한 지 300일


밴쿠버에 온 지 어느덧 300일이 지났다.

300일 동안 캐나다와 사랑에 빠지고, 싸우고, 상처받고, 용서하고, 또다시 사랑하고.


‘애증의 캐나다.’


계획했던 TESOL 수업은 모두 수료했다.


그런데, 아직도 시험은 열리지 않았다.


국제시험이기에 한국에서 신청해 치를 수도 있었지만,
영국에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지 못한 시험지가
한국행 비행기를 탈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하고
시험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나.


싫었다.


자격증 없이 수료만 하고 돌아간다는 건,
돈 쓰고 시간 쓰고 목표한 걸 못 이루고 돌아간다는 뜻이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난 또 한국 현실에 휩쓸릴 거야. 일하면서 힘들다고 곡소리 내면서 차일피일 시험 미루다가, 결국 자격증 따기를 포기하겠지”


영어 전공도 아닌 내가,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스펙을 쌓겠다고
캐나다까지 공부하러 왔다.


적어도,
내 몸값을 제대로 만들어서 돌아가야 했다.


영어 강사로서 성공해 보겠다고
기꺼이 이 먼 길을 택했는데—


현실은,


내 능력을 증명해 줄 시험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하루, 이틀 잠도 못 자고 고민했지만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한국행 티켓을 끊어야 하는 상황.


그런데 그날.


습관처럼 확인한 학교 앱에
작은 알림이 떠 있었다.


[공지] 2021 TESOL TEST


2021년 봄,
두 개의 시험 중 하나가 시행된다는 공지였다.


“대박! 미쳤어!!!”


홈페이지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귀국행 티켓 결제를 앞두고 있던 내게
이건 기적 같은 소식이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역시 길은 있었다.


나는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
시험까지 몇 달의 여유가 있었고,
합격에 자신도 있었다.



시험이 열린다고 했을 때
그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5 달.
나는 그 시간을 또다시
같은 교재를 반복하며 보내야 하는 걸까.


하루 종일 도서관에 앉아
형광펜으로 줄을 긋고, 노트를 정리하며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생활.


그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나는 늘 뭔가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움직이고, 계획하고, 도전해야


마음이 조금이라도 덜 불안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


“지유 씨, 진짜예요? 시험 열린대요?”


흥분에 찬 나의 카톡 메시지를 보고
룸메 언니는 퇴근하자마자 신발도 벗지 않고 물었다.


“네! 타이밍 진짜 미쳤죠!.
언니, 저 진짜 내일 한국 갈 뻔했어요.”


내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대박... 어휴, 그렇게 고민하더니!
너무 잘됐다. 지유 씨 진짜 기다린 보람 있다.
나였으면 진작 갔을걸?”


나는 울다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진짜 백 번은 가야 했어요.

근데, 한국 갔으면 분명히 후회했을 거예요.”


***


그날 저녁

내가 만든 음식들로 기분 좋게 대접한 저녁식사 시간,

언니들 중 한 명이

"솔직히... 지유씨 음식이 우리 엄마 요리보다 나아.."

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깔깔대고 웃었던 그날 밤 나는 뜻밖의 조언을 들었다.


"언니 저 이제 시험 볼 때까지 뭘 해야 할까요... 불안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건 하겠어요"


“그러면 시험 기다리는 동안 돈도 벌고,
영주권 준비도 해보는 건 어때요?
지유씨가 이 정도로 캐나다 좋아하는 거 보면
전생에 캐네디언이었을걸요? 영주권 따요.”


그 말에 나는 잠깐 멈칫했다.


“… 영주권이요?”


그런데 그 순간,


내 머릿속 어딘가에선 이미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얼마 걸릴까.
얼마나 들까..’

‘영주권이라…’
‘멋있긴 하다. 유학 와서 영주권까지 따버리는 여성.’

***


1988년생 대한민국 출신.
그 살인적인 경쟁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이 서바이벌이었다.
늘 ‘뭐라도 해야 해. 놀면 패배자야’라는
강박을 달고 살았다.


가만히 있으면 남들보다 뒤처질 것 같았고,
도태될까 봐 늘 불안했다.


10대 후반부터 그렇게 믿었다.
내가 죽도록 열심히 살면,
서른을 넘길 때쯤엔 내 삶의 퍼즐이
어느 정도는 맞춰질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서른셋의 나는
여전히 인생이라는 무서운 바다 위에서


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최고의 선생님’, ‘최고의 딸’,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나’이고 싶었다.


언제나 그걸
부모님께, 세상에게
증명하며 살아야 했다.




서른두 살.
대형 어학원에서 시험기간마다 20시간씩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졌고, 쓰러질 때 잘못 부딪히는 바람에
갈비뼈에는 금이 갔다.

그런데 나는
다음 날 병원이 아니라
회사로 향하는 선택을 했다.


말을 하면 갈비뼈가 울려서 아팠기 때문에

금 간 갈비뼈를 잡고, 마이크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이고 2학기 기말고사 직전보충 수업을 쳤다.



“결근하면 내 자리는 누군가가 대신할 테니까.”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내 자리를 다른 사람이 꿰찬다고 한 것도 아닌데,

불안했다.
나는 늘 그런 식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2021년.
LMIA, 워크퍼밋, 영주권—

그건 단순한 체류 자격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이만큼 멋진 사람이다’**라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문제는,
현실이었다.

초기 LMIA 진행 비용만 3000불.

게다가
영주권을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청소, 건설 현장, 서빙, 커피 머신 앞.

그런 일들이었다.


'엄마아빠가 나 이런 일 하지 말라고 등골 빼가시며 대학까지 졸업시켜 주신 건데... 부모님이 알면 걱정하시겠지...'


며칠을 고민하다
나는 결국 노트북을 덮고 말했다.


“그래, 뭐든. 하자.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난 여기서 계속 학생 신분이야.

이 나이에 언제까지 학생신분 할래?


그 말속엔
결심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두려움까지도 품기로 했다.


이 선택이
어쩌면 나를
조금 더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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