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별오름
해마다 10월이 되면 슬슬 억새가 익기를 기다렸다 날을 정해 새별오름에 다녀온다. 가깝기도 하고 경사가 좀 있지만 단순한 길을 그저 조금 헉헉대며 오르면 정상이 나오니 만만해서 좋다. 익은 억새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오르는 길에 타지인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즐겁다. 평상시 잘 걸으려고도 안 하고, 조금만 걸어도 “발가락이 아프네, 무릎이 아프네.” 엄살 부리는 남편은 오름은 잘 안 가려고 하는데 막상 가면 꼭 열심히 오르려 한다. “군대에서는 이런 곳을 어쩌고.” 여기가 군대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헉헉대면 꼭 뒤에서 밀고 앞에서 잡아끌면서 더 힘들게 한다. 그때는 뭐가 불편한지 모르고 하자는 대로 그냥 열심히 따라 올랐다. 과정이야 어쨌든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 맞으며 보는 경치는 어느 오름이나 ‘말해 뭐해’ 다. 내려오는 길은 조금 위험할 때도 있지만 훨씬 쉽고, 근처 맛집을 찾아 막걸리에 파전 먹는 재미가 좋았다.
남편이 회사에 다니며 바빠졌고, 억새철이 끝날 즈음 마음이 불안해졌다. 빨리 억새 보러 가야 할 것 같았다. 서귀포에 사는 친구를 불러 수다 떨며 새별오름을 올랐다. 나이가 들어도 어릴 때 친구를 만나면 그냥 그 시절의 마음이 된다. 내려오는 길에 새별오름 근처 새빌 카페에 갔는데 이 친구가 빵을 보더니 신이 나서 쟁반에 마구 올려놓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다 먹으려고, 먹을 만큼만 사.” 그제야 친구가 나를 멀뚱히 보더니 집게를 내려놓았다. 이 친구가 참 잘 먹기는 한다. 같이 있으면 나도 덩달아 많이 먹게 된다. 그 후로 새별오름이나 그 카페를 보면 신나게 빵을 집던 그 친구 생각이 절로 난다.
어느 해에는 둘째랑 같이 다녀왔다. 같이 간다고 따라나서 놓고는 얼마 오르지 않아 갑자기 돌아가잔다. 어이없어서 “그럼 차에 가 있어. 난 끝까지 갔다 올래.” 하며 차 키를 건넸더니 냉큼 받고는 혼자 내려가 버렸다. 설마 내려갈까 싶어 해본 말인데, 정말 내려가서 얼마나 황당했는지. 혼자 오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처음부터 혼자 가려고 했으면 엄두가 안 났을 텐데, 다음엔 혼자 올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해, 둘째에게 새별오름 갈 건데 같이 갈 건지 물으니 또 따라나섰다. 예전 기억이 나 도중에 내려올 거면 아예 가지 말라고 했더니 끝까지 가겠단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고 있었는데 얇은 티 하나만 입고 가려길래 외투를 챙기라고 했더니 짜증을 부렸다.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 감기 걸리면 어쩌냐며 옷을 챙기도록 했다. 물론 나도 잘 챙겨 입었다. 나는 날씨에 민감해서 기온 차이가 조금만 느껴져도 재채기를 하다가 감기에 걸리곤 해서 늘 조심하는 편이다.
쌀쌀한 날씨였는데 조금 오르기 시작하니 더워졌고, 아이가 성질을 부렸다. 고3 때였다. 이 아이는 네 살 때부터 사춘기처럼 굴더니 고3이 돼도 한결같이 그랬다. 엄마 때문에 괜히 외투 입고 왔다고 인상 쓰며 옷을 나에게 맡기고는 찾아가지도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내 옷에 딸 옷까지 들고 땀 흘리며 속으로 욕하며 올랐다. 그래도 정상에 올라가니 같이 사진도 찍고 조금 웃기도 하는 게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 했다. 내려오는 길에 내가 길치인 것도, 한없이 너그러운 내 친구가 아니라 ‘걸리기만 해봐라.’며 화낼 구실을 찾는 둘째랑 같이 왔다는 사실도 깜빡하고 새빌 카페까지 걸어가자고 했다. 시원한 바람 맞으며 내려오는 길에 기분 좋아진 둘째가 쉽게 끄덕였다. 길을 못 찾은 건지 길이 없어진 건지, 카페는 저 앞에 보이는데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아이는 화를 냈고 결국은 그냥 차에 올랐다. 돌아오다 들른 근처 다른 카페에서 못 먹을 거 뻔히 아는데 빵을 많이 사도 아무 소리 못 하고 보기만 했다. 남은 빵이 어찌나 아깝던지.
코로나로 내려와 있던 큰아이도, 대학생이 된 둘째도 모두 올라가고 둘만 남은 우리 부부. 가을이 가기 전에 다녀오자며 새별오름에 갔다. 남편은 예전의 버릇대로 군대 이야기를 하며 나를 끌고 밀려고 했다. 나는 예민하고 약했었는데 아주 조금 단단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난 내 속도대로 갈 거야. 천천히 즐기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빨리 올라가야 해?”
이렇게 말하고는 괜히 뿌듯했다. 남편이 앞서가더니 갑자기 그 경사진 오름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미친! 그래, 너 젊다, 좋겠다.’
속으로 중얼거리며 혼자서 밧줄을 잡아가며 올랐다. 남편은 조금 위에서 나를 기다렸다. 같이 오르며 예전에 친구랑 왔던 이야기, 둘째랑 왔을 때의 황당한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정상에서 사방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좋았다. 예전엔 멋진 경치와 내 옆사람만 보였는데, 이젠 열심히 올라오는 가족, 연인, 친구들의 모습도, 사진 찍는 이들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제 나는 다른 사람이 보이는 나이가 됐나 보다. 어쩌면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에 관심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새별오름’ 글자가 새겨진 바위 앞에서 줄을 서서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경치만 찍던 우리에게 누군가 사진을 부탁하자 남편이 찍어 줬는데, 어쩌다 보니 줄 선 사람들이 모두 남편에게 폰을 맡기는 상황이 되었다. 웃지 못할 상황에 웃음이 났고 남편이 내려오면서 투덜댔다. 그냥 투덜대기 위한 투덜댐이지, 기분이 나빠서 그런 건 아니라는 걸 안다. 뒤에서 관광객인 듯한 이들이 궁시렁거리며 하는 대화가 들렸다.
“싫어하는 사람이 제주도 갈 곳 추천해 달라고 하면 여기 말해줘야겠어. 올라가면 춥다고 옷도 따뜻하게 입고 가라고.”
웃음이 나서 돌아보니 좀 전에 남편이 사진 찍어줬던 20대로 보이는 남자 팀이었다. 재밌는 친구들이다. 난 새별오름이 참 좋은데 말이다. 나 역시 10월 말인데도 반팔에 얇은 재킷 하나 걸쳤다가 겉옷은 팔에 걸친 채 땀을 흘리고 있긴 했다.
나는 늘 경사가 가파른 길로 가고 완만한 길로 내려왔는데, 반대로 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당연히 그게 나와 반대로 오르고 내리는 줄 알았는데, 완만한 곳으로만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규칙도 아닌데 당연한 듯 한쪽으로 올라가면 반대쪽으로 내려온다고만 생각했다. 세상엔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가는 방법도 제각각인데 말이다. 나도 좀 유연하고 싶은데, 그게 맘대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내가 왜 뛰다가 멈춘지 알아?” 남편이 물었다. 당연히 뛰다가 멈추지, 그럼 계속 뛰냐고 생각하며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더니, 갑자기 몸이 굳는 것 같고 어지러워서 멈췄단다. ‘나대더니, 나이도 모르고. 지가 무슨 팔팔한 이십대인 줄 알고. 그래도 뛸 기운이 있는 걸 보면 너도 참 튼튼하긴 하다. 그렇게 좋은 거 매일 한 움큼씩 잔뜩 먹더니.’ 속으로 생각하며 “그러니까, 왜 힘들게 뛰고 그래.” 걱정하는 척 웃으며 대답했다. 젊을 때는 너무 그러는 게 좀 꼴불견이었는데, 오십 살이 되고 보니 골골거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거 많이 먹어라. 죽더라도 골골거리지는 말자.’
언제면 끝날까 싶던 육아도 살다 보니 끝나고, 그렇게 바쁘더니 어느 순간 시간도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책을 들고 가면, 그 순간을 못 참아 아이들이 문을 두드리곤 했는데, 그 시간들이 이제는 아득하다. 늘 한가하게 앉아 시간 보내던 엄마를 보면 제발 그 시간 좀 나눠달라 하고 싶을 정도였는데, 나도 이제 그 모습에 가까워 가고 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을, 지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