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이쯤에서 여러분들의 궁금증 하나를 해결해 드릴까 합니다. Magda와 저는 '틴더'라는 어플을 통해 만났습니다. 여러분이 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 틴더는 진지한 관계를 찾는 사람에게 이상적인 어플은 아닙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이 어플은 주로 하룻밤 상대를 찾기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저는 운명적인 사랑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진지한 관계를 추구하는 나 같은 남자가 이 어플을 쓴다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여자도 있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제 가정은 적중했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만났습니다.
Magda는 공공연한 장소에서 우리가 틴더를 통해 맺어진 관계임을 밝히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습니다. Magda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달콤한 상상에 젖어 틴더로 유입되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인연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믿음이라면 모를까, 지나친 기대나 환상을 갖는 건 좋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 어플이 유명세를 얻으며 관계를 악용한 사기꾼들이 아주 많이 유입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연인이 되기를 자처하고, 종국에 가서는 사랑을 볼모로 돈을 요구합니다. 로맨스 스캠이라고 불리는 신종 사기 수법이며 국내 뉴스에도 여러 차례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Magda와 저와 같은 경우는 매우, 매우 드뭅니다.
다시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제가 Magda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Your smile is so beautiful.'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했지요.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다분히 운명적인 말 한마디였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어그러져버리는 관계들에 넌더리가 난 상태였습니다. 특히나 어플에서 만난 상대에게, 그것도 틴더라는 특수한 어플에서 만난 상대에게 걸 기대감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산책하다가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핀 야생화를 보고 '우와,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처럼 Magda의 미소가 그저 아름다웠을 뿐이고, 저는 양손의 엄지를 부지런히 움직여 떠오른 감상을 자판 위에 옮겨놨을 뿐이었습니다. 이제와서는 이 순간이 저와 Magda 사이에 운명의 다리를 놓은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광활한 우주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 것과 별 다를 것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작은 돌멩이가 이토록 큰 파동을 만들 줄은 그땐 정말 몰랐습니다.
Magda와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벌써부터 뭔가 로맨틱하거나 운명적인 무언가를 기대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때 Magda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기억도 잘 안 납니다. 특별할 것이 전혀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애써 관계를 찾고, 관계를 쌓는 데 완전히 질려버린 상태였습니다. Magda와 저는 카카오톡으로 넘어와 대화를 이어갔지만 이마저도 웹상에서 만난 외국인들과의 관계에서 늘 있는 일이었습니다. Magda에게 처음으로 메시지를 보낸 시간이 한국 시간으로 밤이었기 때문에 이 밤이 지나면 또 스러질 인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껏 온라인에서 만난 외국인들과의 대화가 모두 그렇게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 제가 먼저 Magda에게 연락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Magda에게서 먼저 메시지가 왔습니다. Magda가 나중에 말해줘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틴더에서는 성적으로 접근하는 남자가 대부분인데 저의 방식이 달라 호감이 생겼고, 저와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용기 내어 먼저 메시지를 보내준 그녀에게 저 또한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끊어질 뻔했던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다시 이어졌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하니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세종에 해가 뜰 때쯤 Magda가 사는 노바 유로파(Nova Europa)는 어둠에 잠겼습니다. 시차가 딱 12시간이었기에 저의 아침은 Magda의 밤이었고, Magda의 아침은 저의 밤이었습니다. 저는 아침에 잠에서 깨자마자 Magda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대화는 Magda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 쉼 없이 지속되었습니다. Magda가 아침에 일어나면 그때부터 다시 대화가 시작되었고, 그 대화는 제가 잠에 들고서야 끝나곤 했습니다. 우리는 가벼운 주제에서 심오한 주제까지 두루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결코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Magda는 외모도 훌륭했지만 내면은 그것보다 훨씬 더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이 과하다고 여기는 저의 진지함을 깊은 매력으로 여겼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결코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녀에게 보여줬습니다. 날 멋진 사람으로 보이게끔 하는 가면은 언젠가는 벗겨집니다. 그리고 그 가면이 벗겨질 때 관계는 꽤나 추해집니다. 애초에 가면을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정말로 솔직했고, Magda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쾌함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Magda는 저의 이런 솔직함 마저 어여삐 봐주었습니다. 저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이전의 관계에서 저는 분명히 좋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전 여자친구는 저와 헤어지던 날 저에게 '당신이 앞으로 영원토록 불행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저주를 퍼붓고는 차문을 박차고 떠나갔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었으면 이런 말을 들었겠습니까? 저는 제가 남자친구로서나 결혼 상대로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고, 심지어는 장점이 되기까지 합니다! 놀랍게도 Magda에게 저는 완벽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별로라고 여겨왔는데 누군가는 그런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봐 줍니다. 이 아이러니가 저는 아직도 경이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