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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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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4. 2023
드디어 집이 비었다.
남편은 여행을 가고 연말연시라고 다니러 왔던 아이들도 오늘 갔다.
역전에 트렁크와 함께 내려주고 천변으로 갔다. 가서 걸었다.
오후에 피아노를 치다가 방문을 열어보니 집이 어둠에 잠겨있다.
내가 내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난다는 것이 좋다.
온 집을 어둠 속에 넣어두고 내방 하나만 불을 밝힌다.
그리고 핸드폰 갤러리에 저장된 사진들을 빼내서 외장하드에 넣는 작업을 한다.
핸드폰이 생긴 이후로 참 사소로이 사진을 많이 찍는다.
핸드폰 갤러리를 비워놔야 곧 떠날 여행에서 사진을 찍어 올 수 있을 것이다.
겨울 들면서 옷정리를 했더니 옷이 너무 많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쌓인 옷만큼이나 죄책감이 든다. 둘러보니 책도 많고 양말도 많고 뭐가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물건에 짓눌려 무겁다.
갤러리 속에 사진도
가득이다.
결국 삭제되는 사진들. 핸드폰 속 내용들 이사할 일이 무서워서
핸드폰이
오래되어도 얼른 새것으로 바꿀 엄두를 못 냈다. 다 옮겨준다 해도 그렇다.
뭐가 이리 많을까? 뭐든 너무 많다. 이 세상엔 뭔가로 꽉 차있다.
무심코 들어가는 인터넷 속에는 온갖 사람들과 이야기가 바글거린다.
이야기를 담는 그릇들도
별별 것들이 다 있다. ***그램, ***북, ***스토리...
그 바글거림 속에 한 눈이라도 더 붙잡아보려 억지로 갖다 붙이는 제목도 많다.
별거 없는 줄 알면서도 괜히 들어갔다 나왔다 할 때가 있다.
좀 조용해지고 싶다.
조용한 세상 속에서, 단순한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
나는 소로우처럼 월든으로 가고 싶은 걸까?
가서 그 어디에도 종속되지 않는 위대한 자유를 느끼며 살고 싶은 걸까?
월든 가까운 콩코드 어느 조용한 숲가에 사는 지인과 최근에 영상통화를 했다.
내가 그 집의 겨울을 참 좋아한다. 어느 겨울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창틀에 놓인 작은 사슴인형이
마치 창 밖 숲 속에 서있는 사슴처럼 보였었다.
지인은 나 보라고 폰을 들고 집밖으로 나가서 숲을 휘 둘러 보여준다.
그 차가운 겨울 숲 공기가 코 끝으로 찡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제 퇴직을 한다.
직장생활은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삶이었다.
집과 학교만 오가는 인생이었으니까. 34년 동안.
만 5세부터 거의 50년간 학교만 다녔다.
이제 퇴직 후 삶은 더 단순한 삶이 될지, 더 복잡한 삶이 될지 모르겠다.
별 요란하게 꾸미고 다니지도 않았는데 벌써 얼굴에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것이 좋다
뭔가 바를 생각이 안 난다. 이래서 퇴직한 지인들 만나면 늙어 보였을까?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참으로 자유로운 일이구나 싶다.
이 텅 빈 집의 저녁처럼
비워내는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책을 덜어내고, 사진을 덜어내고....
마음속 쌓인 소리들도 좀 덜어내고자 한다.
저 위 사진 속 창 밖 평원처럼 보이는 곳에 콩코드 강이 흐른다.
소로우가 콩코드강을 보며 쓴 글이 있다.
- 나는 콩코드 강둑 위에 서서 모든 진보의 상징인 강물의 흐름을 바라보며,
우주와 시간과 모든 피조물이 따르는 같은 법칙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강바닥의 물풀들은 물결의 바람에 흔들리며 부드럽게 하류로 몸을 굽힌 채
아직도 씨앗이 가라앉은 곳에서 자라지만, 머지않아 그들도 죽어 물결처럼 떠내려 갈 것이다.
자신을
더 나아지게 하려는 욕구도 없이 그저 빛나는 조약돌들, 나뭇조각들과 잡풀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성실히 이행하며 떠내려오는 통나무들과 나무줄기들은 나에게
아주 묘한 흥미를 일으켰다.
드디어 나는 이 강이 나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든 그 물결의 가슴팍 위에 띄워 보낼 결심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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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서든 땅에서든 어디론가 갑니다. 때론 노래로 때론 시로 때론 책 혹은 영화로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가는 길 중간 중간 멈춰서서 그대에게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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