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밤, 창밖엔 꽃비가 내렸다

by 선비천사

유리창은 안과 밖의 문장을

단단히 봉인하고 있다

입김을 불어봐도 지워지지 않는

내 안의 흉측한 회색 웅덩이


부둥켜안을수록 비굴해지던 영혼은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

바닥을 향해 끊임없이 하얗게 투신하고

창틀에 쌓인 먼지는

누구의 눈물도 닦아주지 못한 채 서걱거린다


비좁은 방, 거울 속에 갇힌 사내가 묻는다

단 한 번도 제 뿌리를 안아본 적 없는 자가

대체 어느 숲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느냐고


그때, 얼어붙은 유리벽 위로

분홍빛 자객들이 투두둑 몸을 던진다


창문을 연다는 것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바람을 견디는 일

비릿한 흙내음과 꽃잎의 날 선 비명이

방 안의 고인 침묵을 사정없이 난도질한다


보라, 닫아걸어 썩어가던 나의 고요 위로

처참하고도 찬란하게 번져가는

저 사나운 꽃비의 낙인(烙印)을.





*같이 읽으면 좋은 글

주소가 흔들린 밤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작가 방철호의 블로그 방문하기

[전자책]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

이전 02화낙엽, 봄을 찬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