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봉 홍시감

하나 드리까예?

by 순디기

읍내 시장, 여든의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시골읍내의 마을버스 정류소, 햇빛을 가리는 차양도 없이 벤치만 덩그러니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읍내라고, 둘이서 멍하니 앉아 있으면 오며 가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들을 잼나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말주변도 없는 데다가 애교 또한 없는 것이 천성인 나는, 오늘도 여지없이 엄마랑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둘이 나란히 멍하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 가게들, 차들을 구경하고 있다.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는 찰나,

저기 어느 곳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 둘이서 활기차게 걸어온다. 시골에서 귀하디 귀한 청년들이 걸어오니 내 시야엔 그 두 학생들로 가득 차고 배경은 스르르 사라진다.


그중 한 학생이 두 팔 가득 튼실하게 생긴 홍시감(요즘은 대봉이 유행이라며 대봉이라 하더라)을 한 바구니 안고 간다. 그 학생이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참 무겁겠다!!!"며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는데, 그 학생이 피식 웃는다. 나도 멋쩍어 웃는다.


그 와중에 엄마가 멀어져 가는 학생 뒤통수에 대고 들으라는 말인지 혼자 말인지 무심하게 "그 감 어디서 샀어예?"라고 한마디 던진다.

학생이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더니 "집에서 키운거라예" 하면서 성큼성큼 엄마와 내 앞으로 걸어오더니 "하나 드리까예?" 한다.

얼떨결에 엄마가 손을 내밀었더니, 엄마손에 하나, 내밀지도 않은 내 손에 하나 이렇게 주홍빛으로 성숙한 싱싱하고 커어다란 대봉을 한 개씩 쥐어주고 미소를 지으며 돌아간다. 친구랑 재잘재잘 속삭이면서...


나는 의식하지 못한 채(아마 입을 벌리고 침까지 흘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 학생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조금씩 조금씩 작아져 사라질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본다. 그렇게 지켜보는 동안 내 마음도 계속 계속 커진다. 그리고 크지고 크진 그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찬다.


대봉이 뭐라고, 한번 웃어주는 것이 뭐라고.

사람냄새 가득 맡은 그날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그날 나는 사소해 보이지만,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사랑의 표현을 발견했다.


나는 그 이후 대봉만 보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소녀학생이 생각이 나고, 저절로 미소가 내 얼굴 가득 번져옴을 느낀다. 그리고 따뜻함을 느낀다.


나도 누군가를 위해 사람냄새 가득 풍겨내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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