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늘 부끄러운 아빠였다. 스물아홉에 결혼했을 때만 해도 자신이 가장 평범한 행복을 가질 줄 알았다. 대학 시절 만난 여인은 씩씩하고 똑똑했으며, 그를 부드럽게 다독여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소한 말이 불꽃으로 튀었고, 그 불꽃은 매일 밤 거실을 가득 채우곤 했다. 아이가 잠든 뒤에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문을 닫아도 목소리는 새어 나왔고, 그 작은 귀에 상처처럼 박혔다.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결국 결혼은 끝이 났다. 그는 집을 나가며 변명처럼 중얼거렸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해.”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절반뿐이었다. 그는 이미 지쳐 있었고, 싸우는 자신을 매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아빠’라는 존재가 더는 지켜줄 울타리가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혼 후에도 그는 매달 양육비를 보냈다. 생일과 명절이면 몇 번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거리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아이는 그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름 앞에 ‘저기요’라는 호칭이 대신했고, 그는 그 말이 들릴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게 부녀 사이는 길고 어색한 강물처럼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며 흘러갔다.
외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건 봄비가 사흘째 내리던 저녁이었다. 엄마가 간호를 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아이는 그의 집으로 들어왔다. 상자 두어 개, 옷 몇 벌, 책과 화장품이 들어 있는 작은 가방. 아이는 현관에서 신발을 정리하고는 방으로 곧장 들어갔다. “저기요, 이 짐은 어디에 둘까요?” 그 말투는 정중했으나 멀었다. 그는 애써 웃으며 방을 가리켰다. “저기… 이 방 쓰면 된다.”
첫날밤, 집은 낯선 기척으로 가볍게 흔들렸다. 그는 거실에서 TV를 켜두고 소리를 줄였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작은 빛이 아이에게 부담이 될까 봐 화면 밝기도 낮췄다. 새벽녘에 깼을 때 아이 방 문 밑으로 놓인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그 그림자를 보며 과거의 자신이 이 집을 떠나던 밤을 떠올렸다. 빈 방, 식지 않은 말들, 닫힌 문. 그리고 그 뒤편에 남았던 어린 숨소리.
다음 날부터 그는 아침을 차렸다. 토스트가 자주 탔고, 된장찌개는 간이 모자랐다. 계란프라이는 노른자를 매번 애매하게 터뜨렸다. 그럼에도 식탁에는 늘 따끈한 무언가가 올랐다. “밥 먹자.” 말하면 아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숟가락을 손에 쥔 채, 그릇 바닥만 오래 들여다보곤 했다. “학교 갈 준비 다 됐어?” 하면 아이는 “네… 저기요, 제 양말은 어디 있어요?”라고 답했다. ‘저기요’라는 단어가 집 안에 작은 못처럼 박혀 속이 아렸다.
그는 아이가 집을 나서기 전에 옷장을 열고 교복 블라우스를 꺼냈다. 얇은 천 위로 다리미를 미끄러뜨리면 주름이 펴진다. 다리미판의 탄력이 손바닥을 밀어 올리고 달궈진 철판에서 올라오는 열이 손등을 데웠다. 때때로 얇은 천에 김이 서리고 그 김 너머로 자기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주름이 펴질 때마다 마음 구석의 오래된 울퉁불퉁함도 조금씩 가라앉는 듯했다. 그는 다려진 블라우스를 문고리에 걸어두고 목 끝 단추 하나를 가만히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뗐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이가 말하면 그는 “응, 조심해.” 하고 답했다. 그 사이엔 늘 한 박자쯤 공기가 비어 있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 주말이 되었다. 흐린 하늘 아래, 아이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려는 듯 분주했다.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매만지다가 옷장을 열어 아끼던 니트를 꺼냈다.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굳었다. 옷이 줄어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며칠 전, 무심코 다른 빨래와 함께 세탁기에 넣었던 기억이 뒤늦게 떠올랐다.
“이거 왜 이래요?” 아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거…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시선을 떨궜다. “아빠가… 잘 몰라서. 미안하다.”
“저기요, 제 옷에 손대지 말라고요. 진짜…” 아이는 등을 돌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쓸쓸하게 울렸다.
그는 바닥의 먼지를 보는 척 서 있었다. 문 앞까지 갔다가 노크를 하려다 말고 그대로 돌아섰다. 그의 등은 자신도 모르게 굽어 있었다. 방 안에서는 옷걸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다가 이내 조용해졌다.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그는 부엌으로 가 싱크대를 정리했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골목 비처럼 잔잔하게 이어졌다.
한참 뒤 문이 열렸다. 아이가 흰 블라우스를 들고 나왔다. 구겨지지 않은 손도 타지 않은 블라우스였다. 아이는 잠시 눈을 피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기요… 아니, 그… 이거 다려주세요.” 꺾인 문장 속에서 한 단어가 간신히 고개를 들었다가 숨듯 사라졌다. 그가 고개를 드니 아이의 눈이 일순간 흔들렸다. 여태껏 등지고 서 있던 시간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듯했다.
그는 말없이 다리미를 켰다. 철판이 달아오르자 작은 딸깍 소리와 함께 불빛이 들어왔다. 블라우스 위로 뜨거운 기운이 퍼지고, 섬유의 결이 반사광을 머금었다. 단추 구멍 가장자리의 미세한 실 풀림까지도 차분히 눌러 담으려는 마음으로 그는 천천히 손목을 움직였다. 아이는 잠자코 서서 그 손놀림을 보았다. 달궈진 철이 지나간 자리마다 하얗게 평탄해졌다. 아이가 아주 작게,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요’가 여전히 멀었지만 멀어지는 중은 아니라고 느꼈다.
저녁이 되어 아이는 외출했고, 그는 주방에 홀로 남았다. 식탁 위엔 다림질을 끝낸 열의 잔향이 가느다랗게 남아 있었다. 조용한 집 다른 누군가 금방 돌아올 것 같은 온도를 품고 있었다. 그는 스웨터를 걸치고 문을 나섰다. 골목 깊숙이 노란 등이 켜진 곳 고수포차로 향했다.
천막 문을 젖히자 따끈한 김이 얼굴을 스쳤다. 국물 끓는 소리, 젓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 소주병이 잔을 부딪는 소리가 뒤섞였다. 고수가 반쯤 젖은 행주로 테이블을 훑으며 말했다. “왔네요. 오늘은 늦지 않게 왔네.”
“예. 소주 하나, 두부김치 좀.”
“예.”
그는 구석 자리에 앉았다. 등 뒤로 천막이 바람에 살짝살짝 흔들렸다. 옆 테이블에선 부장과 대리로 보이는 사람들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야, 이번 분기 실적 망했대.” “그냥 버티는 거지, 뭐.”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그의 귀 안쪽에선 다른 소리가 또렷해졌다. ‘이거 다려주세요.’ 낮은 음성, 떨리는 모음. 아침마다 다려 문고리에 걸어두던 교복 블라우스가 오늘은 아이가 내밀어 준 부탁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수가 소주를 채워 주며 물었다. “표정이 나쁘지 않은데요?”
그는 잔을 들었다. “오늘 처음으로 부탁을 받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블라우스 다려달라고.”
고수는 잠시 그를 보다가 잔을 자기 쪽 것으로 바꿔 들어 올렸다. “그럼 축하 하나 해야지요. 부탁은 믿음의 반대말이 아니라 믿음의 시작이니까.”
그는 미소를 지었다. 소주가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낮에 남은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였다. “사실은 제가 옷을 줄여놓았거든요.”
“하하. 그 실수로 오늘을 얻었네. 남자 손은 처음엔 뭐든 줄이거나 태우죠.” 고수가 말하며 두부김치를 그의 앞에 놓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얼굴을 간질였다.
그는 두부를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고수의 말이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 묵직한 결이 있었다. 줄어든 옷처럼 과거의 시간도 되돌리긴 어렵다. 그러나 다림질처럼 지금의 주름은 펴볼 수 있다. 그는 천막 바깥을 보았다. 비를 머금은 바람이 지나가며 가로등불을 흔들었다. 옆자리 남자들 웃음소리가 잠시 잦아들고, 라디오에서 오래된 발라드가 흘러나왔다. ‘사랑한다는 그 말 못 하고’ 노랫말의 빈칸이 어쩐지 오늘의 집과 닮아 있었다.
고수가 조용히 물었다. “딸이 전학 와서 고생 많죠?”
“네. 말수가 적고 저를 ‘저기요’라고 불러요. 그런데 오늘은”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손가락 끝이 약간 떨렸고 그 떨림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오늘은 딱 한 번, 말하더라고요. 부탁하면서.”
“그 한 번이면 충분해요. 아이들은 말보다 기척으로 먼저 오거든요. 밥 먹는 자세, 방문 닫는 소리 그런 데서 먼저 돌아오지.”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의 말이 술보다 깊게 흘러들었다. 집을 떠나던 날 그는 빈방을 마지막으로 한 번 돌아봤다. 그 침묵이 벌이었는지, 구조요청이었는지 이제야 알 것도 같았다. 부끄러운 아빠였기 때문에, 더 오래 머물렀어야 했던 자리를 너무 빨리 떠났다. 오늘 다림질을 하며 문고리에 블라우스를 걸어두었을 때 그는 비로소 오래 비워둔 자리에 이름표를 다시 붙이는 기분이었다.
“사장님.” 그가 불렀다. “혹시 오늘만 반찬 하나 더 줄 수 있을까요?”
“그럴 줄 알고요.” 고수가 웃으며 멸치볶음을 내왔다. “오늘은 서비스. 대신 다음번엔 그 ‘한 번’이 두 번이 된 얘기로 들려줘요.”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는 웃었다. 말끝의 공기가 가벼웠다.
천막 가장자리가 바람에 한 번 크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았다. 그는 잔을 비우고 나가려다, 다시 돌아앉아 마지막 한 잔을 더 채웠다. 그 잔은 축배였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잔이 아니라, 돌아오는 발걸음에게 건네는 잔.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빠라고 불러주는 소리가 이렇게 고마울 줄 몰랐어요.”
밖으로 나오자 비는 그쳤다. 젖은 골목이 가로등 아래에서 은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그는 발을 조심스레 옮겼다.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아이의 운동화 끈 매듭을 떠올리듯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오래전과 달랐다. 잠깐의 바람, 낮게 깔린 구름, 멀리서 들려오는 버스 브레이크 소리. 그 모든 소음이 오늘만은 한 문장으로 엮였다.
그는 현관 앞에 서서 조용히 열쇠를 돌렸다. 문틈에서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다녀왔습니다.” 아무 대답이 없어도 좋았다. 언젠가 그 말 뒤에 “네, 다녀오셨어요.”가 붙을 것이라는 걸, 오늘은 왠지 믿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대답의 맨 앞에 아주 자연스럽게 아주 아무렇지 않게 그 한 단어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