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정신과의사(4)
레트로 바이러스
80년대 초부터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HIV감염이 유행이었다. 그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치료방법이 전무해서 치사율이 상당히 높아 정부의료기관에서 치료법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때였다. 종종 사람들은 HIV와 AIDS 이 단어들을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AIDS는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 (면역결핍으로 인한 증상들)을 뜻하고 HIV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는 AIDS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바이러스이다. 그러면 왜 HIV는 치료법을 찾기가 어려웠던 걸까?
생물학에는 센트럴 도그마라는 개념이 있다. 센트럴 도그마란 거의 모든 생명체의 유전정보 방향은 DNA에서 RNA로 (이 과정을 전사라고 부른다), 그리고 RNA에서 단백질로(번역) 진행된다는 개념이다. (DNA -전사-> RNA -번역-> 단백질)
여기서 센트럴 도그마를 언급한 이유는 HIV는 일반적인 생물학의 센트럴 도그마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센트럴 도그마가 RNA에서 DNA로의 역주행을 불가능이라고 단정 짓지는 않지만. 그 프로세스가 드물고 일반적이지 않다.) 특이하게도 HIV는 자신의 유전 정보를 RNA 형태로 가지고 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자신의 유전정보(RNA)를 숙주(사람)에게 전달한다 하더라도 DNA와 RNA는 엄연히 다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숙주의 DNA에 통합되기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HIV는 자신의 RNA를 DNA로 변환할 수 있는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가지고 있어 숙주 세포 내에서 RNA를 DNA로 변환할 수 있고, 변환된 DNA는 숙주 세포의 염색체에 통합이 되고, 숙주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함께 복제가 된다. 이처럼 일반적인 생물학의 센트럴 도그마를 따르지 않는 특이한 성질이 (RNA --> DNA), 데이비드의 강박증을 더욱 극대화시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고로 데이비드는 HIV 감염자가 아니다.)
보통 DNA에서 RNA로 전환될 때, 즉 전사(transcription) 과정에서의 에러 발생률은 현저히 낮다. 일반적으로 DNA에서 RNA로 전활 될 때의 에러율은 1000~10,000 염기중 1개의 에러가 발생하는 수준이다*.
*항상 이 부분을 설명할 때마다 정말 경외로운 것은 DNA에서 RNA로 전환할 때 에러를 줄이기 위한 수많은 구성요소와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분자단위로 들어가 보면 수많은 기계들이 DNA에 들러붙어 최선을 다해 복사나 전사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DNA의 염기서열을 읽고, 잘못된 염기를 인식하고 제거하고, 전사 후 잘못된 부분을 다시 교정하거나 제거하는 일련의 과정은 1초당 많게는 100개의 염기를 읽고 교정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하나하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HIV에서처럼 거꾸로 (Retro) RNA에서 DNA로 읽어가는 과정에 있다. RNA로 된 유전물질을 DNA로 전환하는 과정(역전사)은 매우 불안정하여 수많은 에러가 발생하고, 그 와중에 운 좋은 것들의 경우 감염 능력을 유지하면서도 원본과는 다른 특징이 생겨나게 된다. DNA는 그 에러를 교정하는 효소가 지속적으로 케어해 주기 때문에 우리는 전사 시 급격한 변화를 보이지 않지만, 역전사는 그렇지 않다. 따라서 역전사 효소(Reverse transcriptase)의 불안정성 때문에 원본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서, HIV로 발병하는 에이즈 환자 중에는 HIV의 특성이 달라 일반적인 항바이러스 치료법이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같은 숙주를 가지고 있는 HIV 사이에서도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치료법을 찾기 어렵고, HIV에 감염된 수많은 환자를 위한 치료법이 딱히 없으니 그 당시 정부나 의료기관에서 할 수 있는 일 이라곤 AIDS 예방 광고뿐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TV 나 라디오에서 자주 AIDS 예방 광고를 방영했고 대부분 AIDS 가 얼마나 무섭고 치사율이 높은 감염인지 알려주는 방식이었기에 굉장히 선정적이고 충격적인 내용이 다수였고 대중들은 자연스럽게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광고의 의도가 일반 대중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때마침 동성 베이비시터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던 어린 데이비드에게도.
"그런데 동성애자들이 AIDS에 잘 걸린다는 광고를 보았어요, 그때 엄청난 충격에 빠졌었죠. 베이비시터와 접촉이 있던 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을 샤워를 하고 베이비시터가 오는 시간만 되면 저는 너무 떨려 어쩔 줄 몰라했고 방에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그 베이비시터가 2층에 있는 제 방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발자국 소리마저 너무 무서웠었어요."
다행히도 그 베이비시터는 막냇동생이 학교에 다닐 때쯤에 베이비시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와의 접촉에 대한 생각이 데이비드의 의식 속에 남아 맴돌았고, 더욱이 TV 나 라디오에선 반복적으로 AIDS 예방광고가 나왔고 그때마다 데이비드의 사람과의 신체접촉에 대한 공포는 동성 간을 넘어 이성 간에도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접촉 이외에도 문고리를 잡는다거나 땅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주울 수도 없고, 데이비드에게 온 우편물 또한 만질 수도 없고 장갑을 끼고 편지를 열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접촉을 하는 모든 물건에 HIV 균이 묻어 있을 것 같았어요."
데이비드의 강박의 원인은 100% 베이비시터와의 관계에서 나왔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그의 기이한 손 씻는 행동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왜 75번 일까라는 의문은 떨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뭔가 유용한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참 인터뷰가 정점으로 가고 있을 때 산통을 깨는 노크소리
"똑똑"
노크소리가 두 번 들리고 문에 있는 창으로 교수님이 눈짓을 주신다. 빨리 나오라는 소리다.
시계를 보니 벌써 45분이 순식간에 지나버렸다.
시간이 부족해서 너무 아쉬웠지만 교수님의 서늘한 눈빛에 바삐 인터뷰를 끝냈다.
"데이비드 오늘 줄리와 저에게 이렇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눠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어떻게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