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번 손 씻는 남자
하늘을 보니 날씨가 심상치 않다. 눈은 계속 펑펑 쏟아지고, 관리소 직원분들이 벌써부터 나와 도로에 염화칼슘을 뿌리고 계셨다. 입구에서 유리창 너머로 병원 경비요원들이 언제나처럼 날 반갑게 반겨 주신다.
CEP은 첫 게이트에서부터 병동까지 세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건물이 오래돼서 각각의 문은 키로 열어야 하는데 가끔 키가 마모가 되어서 잘 열리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만일 위험한 상황에서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첫 게이트를 통과해 두 번째 문을 열면, 세 번째 유리 창문으로 환자분들이 기다리는 대기실이 보였다. 매번 문을 열고 들어갈 때마다 속으로 대기실에 사람이 적기를 기도하며 입장을 했지만, 항상 센터는 환자분들로 꽉 차 있었다.
세 번째 문을 열자마자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세 번째 문의 방음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화가 난 환자들이 스탭과 싸우는 소리부터, 자살시도로 내원하여 가족과 나누는 위로의 대화소리, 천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몸이 굳어 보이는 환자, 자신의 순서를 조용히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는 환자까지 긱양각색의 사람들이 방문을 하였다.
"자 오늘도 신나게 시작해 볼까!"
파란 병원복으로 갈아입으며 초 긍정의 힘을 모으고 있을 때 간호사분께서 나를 보더니,
"Thank God. Sunny you came early.”
내가 조금 일찍 와서 인지 간호사님이 날 보고 보통 때와는 달리 유난히 반가워하셨다. 아마도 이 시간까지 이제 갓 레지던트를 시작한 인턴과 같이 일을 하셨기 때문이었을까?
간단한 인사도 없이 간호사분께서 바로 인수인계 리포트를 해주신다.
"조울증과 우울증 치료 히스토리가 있는 38세의 여성환자 C. 집 욕실에서 손에 칼자욱과 피를 흘리며 발견돼 응급실에서 처지를 받고 입원 필요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우리 센터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히스토리만 봐서는 무조건 IN*이네요"
*IN 이란 입원을 의미한다.
"그리고, 긴장성 조현증으로 온 45세의 싱글 남성 T. 며칠 전부터 대화가 불가능하고 감정표현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가족들이 동반하여 내원했는데. 강직증과 부동증 증세가 보입니다. 빠른 치료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60대로 추정되는 노숙자 P. 근처 메디슨 파크에서 방황을 하며 횡설수설 지나가던 행인들에게 위협이 되어 경찰이 데리고 왔다는데. 닥터 유를 불러 달라고 합니다. 친한가 봐요?"
“아 그리고 지금 엠뷸런스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EDP* 케이스라고 하는데 가서 좀 봐주시겠어요. 닥터 유? 자세한 환자 정보는 아직 확보되지 않았네요.”
*EDP 란 경찰들이나 정신과에서 흔히 쓰이는 말로 Emotionally Disturbed Person의 줄임말이다. 즉 정서가 불안한 사람을 뜻한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나가 보죠.”
그날따라 왜 그렇게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운지. 눈보라가 치는 날씨 속 저 멀리 앰뷸런스 가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옷깃을 올리고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며 새로 올 환자를 기다렸다. 5분 안에 도착한다던 앰뷸런스는 날씨 탓인가 15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응급요원이 엠뷸런스에 내려 수송해 온 환자에 대해 짧게 브리핑을 해 주었다.
"환자는 30대의 흑인으로 맨해튼 그랜드 센트럴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양쪽손에 피를 흘리며 행인들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EDP로 판명되었습니다. 기저 질환은 당뇨병 외엔 없고 알레르기는 없다고 합니다. 근데 화장실에서 1시간 이상을 손을 씻고 있었다네요. 손가락이 다 벗겨졌어요. Full 정신과 체크업이 필요해 보입니다만… 아 이 환자의 이름은 데이비드 쇼어입니다."
“안녕하세요 데이비드”
데이비드는 두 손이 포박된 체 엠뷸런스에서 내렸다. 보통의 키에 조금은 육중한 체구, 뱃살이 많이 나와 있고 걸음걸이 행동등에서는 특이한 사항을 발견할 수 없었다. 보통 EDP 환자들은 난동을 피우거나 피해망상에 빠져 경비요원의 에스코트 없이는 병원으로 들이기 힘들지만. 데이비드는 생각보다 조용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조금은 느리지만 묻는 말에 대답을 잘해줬고. 피해망상이나 조현증 증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간략한 센터 소개를 하고 경비요원과 함께 센터 안으로 데이비드를 인도했다.
“여기 잠깐 앉아 계시면 의료진 분들이 간략한 헬스체크업과 인터뷰를 진행할 겁니다. 데이비드를 위해 저희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을지 알아보는 과정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혹시 필요하신 게 있으면 간호사분께 알려주세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거의 90% 이상은 이곳 CEP을 다녀간 분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과거의 환자 차트를 찾아보았는데 데이비드의 기록이 보이지 않았다.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일이 조금 더 힘들어진다는 소리다. 처음부터 환자의 신체검사부터 정신과적 증상이나 과거의 히스토리를 인터뷰해서 입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재방문의 환자분이었다면 환자 대면 전 차트를 리뷰하고 어떤 히스토리가 있으신지, 기저 질환은 무엇인지, 치료에 협조적이신지, 약을 처방받았는지, 가족이나 서포트가 주변에 있는지, 그리고 자살 히스토리가 있는지 등등 유용한 정보가 많기 때문에 아무 정보 가 없으면 그만큼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데 시간이 더 들게 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는 것처럼 이 환자분께는 어떤 스토리가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다행히 데이비드는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오는 반 이상의 사람들이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이기에 데이비드의 케이스는 양호한 편이었다.
“줄리, 데이비드 기록이 없네요. 이곳에 처음 이신가 봐요.”
줄리는 그날 나와 함께 당직을 하게 된 냉철한 판단력과 친화력을 두루두루 겸비하신 사회복지사분 이셨다.
“아 그래요, 휴… 그럼 빨리 시작하시죠.”
"닥터 유가 환자분 진찰할 동안 인터뷰룸을 세팅해 놓을게요."
손발이 척척 맞는 그녀와 같이 일을 할 수 있어서 난 참 러키했다. 하룻밤에 몇십 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을 레지던트와 사회복지사 단 둘이서 대응을 해야 하기에 팀워크가 잘 맞지 않거나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면 이 시프트가 끝나기 전까지 환자들을 다 못 보게 되고, 결국 다음 시프트 스태프들에게 넘겨야 하는 상황이 오기에 최대한 빨리 환자들을 보고 필요에 따라 안전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하려 노력했다.
CEP에서는 워낙 응급상황만 다루다 보니 직접적인 치료보다는 우선 환자분들의 안전을 체크하고 두 가지 결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일반 응급실에서 환자들에게 응급조치를 해서 안정을 시킨 후 입원이나 다른 전문의에게 넘기는 방식과 비슷했다. 두 가지 결정이란... IN or OUT.
IN: 환자의 상태가 심각하여 입원이 불가피할 경우 아래 문서를 작성 (2명의 의사 동의가 필요) 하여 입원 수속을 시작하거나 (종종 강제입원을 포함하는),
OUT: CEP에서의 조치로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고 환자와 타인에게 위험이 될 가능성이 없고 외래 진료가 가능한 분들에 한해서 집으로 퇴원을 시키는,
IN 또는 OUT으로 결정을 내려야 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료진이 퇴원(OUT)이나 입원(IN) 둘 중의 하나를 결정하기에 환자의 의지나 결정과 다를 경우 마찰이 불가피하게 된다. 하지만 자해의 위험이 있거나 남에게 해가 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환자분들을 어느 정도의 치료 없이 퇴원시킬 수 없기에 그 마찰은 고스란히 의료진의 몫이 된다. 자신을 살려놨다고 주먹질을 하거나 집에 안 보내 준다고 침을 뱉거나. 많은 환자들이 자기의 권리가 빼앗긴다는 느낌 때문에 자신의 정신적 건강 상태를 생각하지 않으시고 의사에게 해코지를 할 때가 간간히 있어 항상 민감하고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리스크를 감수해 환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마지막으로 옮겨지는 병원에서의 치료 효과를 높일 수가 있다. 왜냐면 도착한 병원에서의 의사들이 강제입원의 결정자가 아니기에 환자와 의사와의 마찰이 줄어들고 의사가 치료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은 대한민국에도 도입되면 좋지 않을까 조심히 생각해 본다.
"줄리, 먼저 들어가실래요?"
"닥터 유, 환자가 너무 많으니 같이 들어가서 인터뷰하시죠."
평소 같으면 사회복지사님이 환자와 인터뷰를 하시고 그리고 레지던트가 각각 따로 환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해 환자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교수님이 마지막으로 환자를 본다. 이렇게 여러 의료진이 환자를 보는 이유는 객관성을 지키고 한 사람의 주관적인 결정을 막기 위해서이다. 어떤 분은 IN (입원)을 어떤 분은 OUT(퇴원)의 결정에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회복지사님들은 대체로 OUT을 선호하고 의사들은 대체로 IN을 선호한다. 사회학적인 면과 임상적인 면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사회복지사님은 OUT, 레지던트는 IN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마지막 결정은 주로 다른 스테프들과 함께 논의를 하고 최종 결정은 교수님께서 내리게 된다. 이때 결정에 크게 이바지하는 면이 하나가 있다면 바로 환자가 서포트 시스템이 병원 밖에 있느냐 없느냐 이다. 여기서 서포트 시스템이란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이 환자의 케어에 적극적으로 참여 가능한 환경을 말한다.
기다리는 환자가 너무 많을 때는 시간의 제약상 사회복지사와 레지던트가 같이 들어가 인터뷰를 진행한다. 가능한 객관적으로 인터뷰를 이끌고 서로 필요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어 낸다. 그리고 최대한 환자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안전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외래 진료에 대해 긍정적이면 퇴원을 허가한다.
데이비드와의 인터뷰실에서는 이런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전 밖에서 뭘 만지면 꼭 75번을 씻어야 해요. 그냥 75번을 씻는 게 아니라 5회를 한 세트로 한 번은 비누로 한 번은 물로만 이렇게 해야 내 손에서 세균들이 깨끗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러면 75번을 다 끝냈는지 계산하면서 손을 씻어야 하겠네요?”
“네 맞아요. 그런데 씻다가 중간에 몇 번을 씻었는지 잊어 먹으면 다시 처음부터 씻어야 해요. 그땐 정말 화가 나서 미칠 거 같아요. 그래서 소리를 지르고 오늘처럼 벽을 있는 힘껏 주먹으로 칠 때도 있어요."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데이비드의 오른손에 감겨 있는 붕대는 피로 다시 젖어 있었다. 젖은 붕대를 풀어보니 손에 온통 흉터 자국으로 가득했다. 밖에 계시는 간호사님께 부탁해 하얀 새 붕대를 받아 새로 드레싱을 할 때 줄리가 인터뷰를 계속 이어 나갔다.
"주위에 있던 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죽어 버리고 싶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요?"
나는 붕대를 감으면서 최대한 데이비드의 답에 귀를 기울였다.
"아닙니다, 그냥 너무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랬어요. 내가 죽긴 왜 죽습니까. 나갈 때마다 문 손잡이를 잡을 수도 없고, 공중 화장실 안이 저 때문에 온통 물로 뒤범벅이 돼서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밖을 나가는 게 무서워요.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꼴이 한심해서 화가 났을 뿐이에요. 제가 죽으면 가족한테 큰 상처가 될 거예요."
데이비드의 문제는 청결함에 대한 OCD*라고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손을 75번이나 씻어야 상황을 종료할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트리거가 더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OCD (Obsessive Compulsive Disorder) 란 강박장애를 뜻한다.
"데이비드 님, 드레싱이 다 끝났습니다."
데이비드는 붕대 감 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슬픈 표정은 아니었지만 뭔가 복잡한 심경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나와 쥴리는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CEP에서는 환자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에 치료를 위한 질문보다는 환자의 안전에 관한 질문이 우선시 된다. 하지만 쥴리가 환자의 과거 히스토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캐기 시작했다. "그렇지~" 난 속으로 환호를 외쳤다. 쥴리도 뭔가 데이비드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본을 파헤쳐 보고 싶은 것 같아서였다. 역시 쿵작이 잘 맞는 내 동료. 데이비드의 머리에 문이 있다면 당장 열고 그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