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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 YOU Oct 27. 2024

He is not coming back!

맨해튼 정신과의사(5)

He is not coming back!




"줄리, 자 이거 교수님께 전달해야 할 텐데. 저번에 내가 했으니까 이번엔 줄리가 해주세요."


"싫어요. 닥터유가 해요."


쥴리는 다 좋은데 꼭 힘든 일을 할 때는 발을 빼는 성향이 있었다. 가뜩이나 시간이 늦어져서 교수님이 날카로울 때라 그 누구도 용기 내서 리포트를 하려 아지 않았다. 뭐 결국엔 실랑이를 하다가 내가 총때를 맺지만. 다 줄리의 빠져 들 것 같은 갈색 눈 때문이었다. 그 눈으로 날 쳐다보면 난 무장 해제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좋아하는 감정이 없지 않았다. 뜬금없는 로맨스 스토리의 복선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순수한 짝사랑의 엔딩이었으니.


역시나 교수님의 찌그러 지시는 표정.


"넌 IN, 넌 OUT. 좀 쉽게 갈 수 없나요?”


의국에 있던 모든 스태프들이 모여들어 의견을 던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환자들이 유난히도 많았기에 새로운 응급 환자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병원이던 퇴원이든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대장격 사회복지사님이 그러신다.


"뭘 생각해요. 자살 타살의 리스크 가 없는데. 내보내시죠."


옆에 있던 레지던트 1년 차가 이의를 제기했다. 난 속으로 이제 막 레지던트를 시작한 이 친구가 제발 원론적인 얘기를 하지 않기를 바랬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10년 20년 이 일을 하시면서 제일 듣기 싫은 얘기들이 순수하고 원론적이며 이타적인 유토피아 적인 전혀 현실에 맞지 않는 얘기들이었기에..


"그냥 퇴원시키면, 데이비드가 치료를 받으러 올 것 같나요? 그냥 서서히 강박증에 잠식되어 더 크게 병을 키울 텐데. 그런 건 상관없는 건가요?"


논리적인 반론이었지만 지금 막 전쟁이 시작된 느낌이었다. 이 작은 응급실에서도 인간은 둘로 나뉘어 토론을 한다. 진보와 보수 두 이념이 대립하듯. 자신의 건강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인간 권리와 또한 적절한 치료받을 권리 그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 있는 증상들. 증상은 심각한데 내일 모래 무슨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적은 그런 애매한 케이스였다.


토론은 진행이 되었고 교수님께서는 퇴원을 시키라고 결정을 하셨다.

솔직히 맘에 드는 결정은 아니었지만. 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데이비드의 외래는 제가 맡게 해 주세요. 그러면 퇴원에 동의하겠습니다."


그러자 교수님은.


"알아서 일을 맡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지요. 그러면 외래는 닥터유 당첨!"


"넵."


이 환자분을 자발적으로 맡은 건 이렇게 심각한 강박증세를 본 적이 없어서였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케이스였고, 어느 정도 그의 현재 증세에 대한 원인이 될 수 도 있는 사건에 한발 가까이 다가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는 심각한 강박과 우울증상이 있음에도 전혀 치료를 받지 않고 살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친 기록도 없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착한 분이었다. 문제는 자신의 강박증 때문에 집을 나오려 하지 않고, 치료를 거부하며. 만일 중요한 일이 있어 집 밖으로 나온다 해도 꼭 이런 해프닝이 일어났다는 점이 많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결정은 내려졌고, 난 간호사님에게 퇴원 수속을 지시했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복도 끝에 앉아 있는 데이비드에게로 걸어갔다.


"데이비드 퇴원 수속이 곧 시작되니, 이제 곧 집에 가실 수 있을 거예요."


데이비드는 기뻐했고 고맙다고 얘기했다.


"데이비드, 다음 주로 외래진료를 잡아 놨습니다. 꼭 오실 거죠? 시도는 해 볼 수 있잖아요?"


데이비드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외래치료 주치의는 저입니다. 저한테 얘기해 주신 내용을 다른 분께 또 반복하시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편하시겠죠? 부담 갖지 마시고 오시면 됩니다.


“아 근데 데이비드 님,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이 치료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게 있으실까요?”


그에게 치료의 주인은 데이비드 당사자임을 확인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작은 목적을 갖게 해 주면 동기부여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말을 꺼냈다.


"이 증상을 극복해서 사람을 만나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터치하고 싶고, 악수하고 싶고, 사랑도 하고 싶어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데이비드의 저 파란 두 눈에 아주 작게 내 실루엣이 보이는 듯했다. 데이비드는 날 어떻게 보고 있을까? 2년 차 레지던트가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거라 믿는 걸까? 도대체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게 괴롭히는 것일까. 이 친구가 아무 걱정 없이 문고리를 잡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팬을 줍고, 사랑하는 사람과 포옹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새로운 삶… 참 설레는 말이네요. 데이비드. 곧 만나요."


경비요원이 잠겨진 문을 열어 주었다.


"잘 가요 데이비드."


병원을 나가기 전 데이비드가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다.


"닥터 유, 왜 75번인지 궁금하지 않으셨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5입니다. 왠지 다섯은 꽉 찬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손을 씻을 때도 5의 배수로 씻으면 마음이 놓였어요 5, 10, 15.. 이렇게..."


"그럼 75라는 숫자는?"


"제가 손을 씻다 처음으로 손바닥에서 피가 났을 때가 75번째였어요. 내가 피를 흘릴 만큼 열심히 노력했다는 증거였어요. 그 후로 주욱 75번이 안전한 숫자로 남아있답니다. 자해라고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손이 아프면 왠지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벌을 주는 기분이었어요. 나름 상쾌한 기분입니다."


데이비드가 병원을 나서는 모습이 어린아이들이 하교하는 발걸음처럼 사뿐해 보였다.


데이비드가 마지막으로 건넨 말들이 뇌리 속에 마구 맴돌았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단어들 - "벌, 자해, 안전, 상쾌한 기분..."


옆에 있던 동료가 내 어깨를 치며 그런다.


"왠지 안 올 것 같은데"


"밥사기 내기할까?"


"콜" 


난 밥을 얻어먹을 자신이 있었다.

...


일주일 후 데이비드와의 외래진료 날이 되었다. 지난 일주일간 최선을 다해 강박증에 관한 공부를 하고 치료방법을 준비해 놓고 데이비드를 기다렸으나. 데이비드는 결국 오지를 않았다. 


그때 병원 내에서 짧게나마 집중치료를 제공하고 보냈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나는 동료에게 밥을 사게 되었다. 그래도 데이비드에게 고마운 것은 이 케이스로 인해 강박증에 대해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정신질환의 원인과 진행과정이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게 얽히고설킨 우리의 인생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환자를 깊게 알아 가고자 하는 진심성이 너무 절실히 의사에게 필요하다는 깨닫음을 얻었다고나 할까.


또 이런 엉뚱한 상상도 해 보았다. 만일 HIV가 자신의 유전 정보를 DNA 형태로 가지고 있었다면 효과적인 치료제가 조금이라도 빨리 나왔을까, 그래서 어린 데이비드가 그런 무서운 광고를 보지 않아도 되었겠고. 만일 베이비시터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데이비드가 이곳 CEP까지 오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보통 환자분들이 진료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 시간만큼 쉴 수 있어서 좋아라 했었는데. 이렇게 환자를 손꼽아 기다려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 점도 정신과의사로서 조금은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여러모로 데이비드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었고, 어디에서든 꼭 좋은 치료를 받기를 내심 기대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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