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어느 날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30대의 M이라 불리는 남자가 40대의 이웃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M의 변호사는 M 이 이웃을 칼로 찔러 죽였을 때 극심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 (정신적 무능력으로 인한 무죄)을 주장했다. Mr. M 은 그 당시 심각한 강박장애(OCD)를 앓고 있었고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지옥에 갈 거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결국, 배심원단은 M의 심각한 강박장애와 급성 정신병이 사건 당시 그의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을 상당히 저해했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신적 무능력"을 이유로 무죄를 판결한다. 물론 이 범죄 케이스는 하나의 원인이 아닌 조현증(psychosis)과 강박증(OCD)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으나 M의 자제할 수 없는 강박적 사고는 분명히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일 M 변호인의 '정신적 무능력(insanity defense)'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M 은 책임 감소 (diminished responsibility)에 의한 과실치사로 유죄를 받았을 거라고 한다 - 유죄이지만 정신 질환이 합리적으로 행동할 능력을 상당히 저해했음을 인정한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감형이 유력했을 것이다.
*미국의 정신적 무능력 방어 (insanity defense) 개혁 법안은 1984년 10월 12일에 제정되었다. 골자는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형사 사건에 연루될 때 적용되는 정신적 무능력 방어와 그에 대한 처분을 규정한 첫 번째 연방법이다.
위의 케이스처럼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끼칠 정도의 강박증세는 좀처럼 접하기 힘들지만, 우리는 OCD 또는 강박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곤 한다. 무언가 깨끗한 것에 민감하거나, 정리정돈을 남들보다 더 철저히 한다던가 할 때 이 단어를 떠올린다. 실은 이 강박이라는 개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강박은 가지고 있다.
어릴 적 한여름 친구들과 강원도 어느 시골마을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곳엔 집 밖에 아래로 구멍이 뚫려 있는 재래식(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는데, 똥냄새와 파리가 가득한 그 화장실에서 일을 보며 동시에 김밥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친구가 있었다. "참 대단한 놈"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아직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뭔가 오싹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 친구와 나와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왜 나는 수세식보다 상대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그곳의 환경이 김밥의 맛보다 중요하게 인식이 되었고 그 친구는 그 김밥에 집중할 수 있었을까?
상상 속 칠판에 하얀 분필로 얇은 선을 하나 주욱 그어본다. 우리는 그 선을 OCD라 부르기로 한다. 그 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갈수록 상대적인 심각성을 나타낸다. 맨 왼쪽은 강박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그룹, 맨 오른쪽은 강박의 끝판왕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내 친구는 왼쪽의 끄트머리에 나는 중간에서 살짝 오른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물론 나의 청결함의 관념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평균정도일 거라 희망하는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말이다. 만일 대변볼 때 항상 밥을 먹어야 하는 사회적 통념이 있는 (상상 속의) 나라가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난 OCD 선에서 가장 오른쪽, 강박의 끝판왕 그룹에 속할 것이고 정신과 진료를 받도록 권유받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선을 스펙트럼이라고 하고 아마도 모든 인간은 이 스펙트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 사회적 관념의 차이일 뿐. 나처럼 노트를 정리할 때 선 하나를 그을 때도 자로 그어야 맘이 편하고, 슈퍼마켓에 한 줄로 주욱 잘 정돈된 과일, 음료수들을 보면 힐링이 되는 사람이 분명 적지 않을 거라 생각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는 질병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어떤 것에 대한 심한 집착의 경향성은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생존을 지켜줄 목적으로 우리의 DNA에 잘 새겨졌을 것이다. 어떤 것이 되었든 우리의 생존에 너무나도 중요해서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리마인드 해주도록 설계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종종 무언가에 의해 그 리마인드의 프로세스가 고장이 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을 잠식할 정도로 필요 이상으로 발현을 해 버릴 때 우리는 고통을 호소하고, 그때 우리는 장애라는 태그를 붙인다.
그럼 임상에서는 강박장애를 어떻게 정의를 할까?
강박장애는 강박사고(Obsession)와 강박행동(Compulsion) 중 하나 또는 모두를 나타나는 장애를 뜻한다. 여기서 강박사고란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생각이나 충동으로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이 유발되는 것으로서 예를 들어 자기 전에 문을 잘 잠갔는지 계속 머리에 맴돌고 불안해지는 생각을 말한다. 또 다른 예로 내가 만났던 어떤 환자는 여성의 발목에 집착했는데, 보는 것 만으로는 만족이 안되고 만지고 싶은 충동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고 한다. 이런 생각도 강박사고라 할 수 있다. 강박행동이란 문이 잘 잠겼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문을 몇 번이고 체크하는 행위가 되겠고, 발목을 만지고 싶은 참을 수 없는 강박적 사고를 해소하기 위해 범죄인 줄 알면서도 여성의 발목을 잡는 행위를 말한다.
*여담으로 Tic(틱) 장애도 병리학적으로 어느 정도는 OCD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떤 환자분은 한쪽 어깨를 올리는 행위를 하게 되면 꼭 다른 쪽 어깨도(대칭성 유지 욕구) 같이 올려야만 하는 욕구가 생긴다고 했다. 왼쪽 오른쪽을 번갈아 가며 어깨를 들썩이다 결국 기진맥진하여 힘이 빠지거나 근육 경련이 일어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어릴 적 자신의 이런 틱행위를 감추기 위해 종종 춤추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깨를 들썩이며 억지로 웃어대며 애써 감춰야 했던... 여기서 이 환자의 틱장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선 어깨를 대칭적으로 들썩이고 싶은 욕구가 있겠고 그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어깨를 들썩이는 행동이 있을 것이다 마치 강박장애처럼. 하지만 현재 틱장애는 DSM-5에서 OCD와 구분되어 별도의 진단으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박이라는 개념이 장애로 정의되기 위해서는 이런 사고와 행동 때문에 사회적, 직업적, 또 다른 중요한 기능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자기 전 문을 한 두 번 체크하는 것은 정상 범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잠을 못 잘 정도로 20번 30번 체크를 해서 잠을 못 자는 행동은 비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위에서 설명된 것 외에 강박장애를 만족하는 여러 진단 기준은 DSM-V 나 국제질병-사인분류 ICD에 더 자세히 나와 있다.) 물론 자기 전 문을 20번 체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상 속의) 나라에서는 단 한번 문을 체크하는 사람을 어떤 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분류할지도 모르겠다 - '무걱정장애'를 상상 속 나라의 정신과 매뉴얼에 넣어야 할지도.
이런 상상을 해 보았다. 만일 데이비드가 그 상상 속의 나라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그 나라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손을 수십 번씩 씻고 문을 열 때면 언제나 준비해 두었던 위생 장갑을 사용하고, 크리스마스선물로 서로에게 고급 위생장갑을 선물하는 상상을. 애석하게도 데이비드는 그 상상 속의 나라에 살고 있지 않고 현실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너무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데이비드가 전형적인 강박증에서 볼 수 있는 자아이질(ego-dystonic)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자아이질은 자신(ego)의 가치관과 충돌(dystonic)하는 사고, 감정, 행동을 말한다. 손을 수십 번 씻어야 하는 강박적이고 굉장히 침습적인 생각과 그가 생각하고 있는 보편적 청결함의 정의와 충돌하는, 그래서 고통받는. 만일 데이비드가 75번 손 씻는 것을 정상적이라 생각했다면 자아동조(ego-syntonic)적* 사고라 칭했을 것이며 자신은 문제가 없고 전혀 괴로워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아마도 OCD 보다는 정신질환(psychosis)에 가까웠을 것이다.
*자아동조는 종종 인격장애자들에게도 나타나는데 그들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 주위의 있는 사람이나 환경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사람이나 조현증에서도 발견되기도 한다. 특이하고 기이한 신앙적 정체성에 빠져 정상적인 종교생활을 할 수 없게 되고 조현증의 경우 자신이 보고 듣는 환청/환영이 진짜라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병동에서 심각한OCD와 조현증을 구분할 때 종종 환자의 증상이 자아이질적인지 자아동조적인 를 보며 구분하기도 한다. 치료는 자아동조적인 환자군들이 더 어렵다.
OCD와 종종 같이 나타나는 신경성 식욕 부진증 (보통 거식증으로 불린다) 환자들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들의 자아동조적 성향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1970년대 미국의 유명한 가수 카펜터스(Carpenters)는 1983년 2월 1일 거식증의 합병증으로 (심부전, 극도의 저체중, 미약 상태) 사망했다. 그녀는 심각한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살을 빼고자 하는 그녀의 확고한 의지와 가치관 때문에 치료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암튼, 우리는 인터뷰를 통해서 데이비드가 아주 어려서부터 지저분한 것에 혐오를 느꼈고, 심하게 청소에 집착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증세가 청소년기에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지금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물건을 집는 것도 엄두를 못 낸다고 했다.
데이비드의 어릴 적 청결에 대한 집착은 일반인들에 비해 조금 지나치긴 했지만 병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 쥴리도 그 점엔 동의를 했다.
데이비드에게 청소년기에 대해서 묻자 데이비드는 잠깐 멈칫하며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형이 있었고 어린 동생이 있었어요. 어린 동생을 돌보아 주러 오는 베이비시터형과 넷이서 주로 시간을 보냈었죠."
얘기를 하는 도중 데이비드가 베이비시터형을 언급할 때마다 뭔가 그의 부자연스러운 제스처를 느낄 수 있었다. 일단 베이비 시터가 남자라는 점도 의하했고.
데이비드가 불편해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쥴리와 눈으로 사인을 교환하며 데이비드를 조금 더 푸시해 보기로 했다.
"데이비드, 괜찮다면 베이비시터에 대해 좀 더 얘기해 주실 수 있겠어요."
데이비드는 한참을 생각을 하다 조심조심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실은 어릴 적 베이비시터형이 제 형의 샤워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것을 목격했어요. 나중엔 뒤에서 형을 꼭 안거나 이해할 수 없는 스킨십을 하기 시작했어요."
"이해할 수 없는 스킨십이란?"
"형의 겨드랑이 털을 깎아 준다거나, 성기를 툭툭 치는 행동들. 뒤에서 안는 걸 무척 좋아하는 듯했어요. 기회만 있으면 형을 안고 형이 뿌리칠 때까지 안고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스킨십은 더 적나라하고 더 자주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나중에야 이건 단순한 스킨십이 아닌 성추행이란 걸 알게 됐지요. 어머니께 얘기하려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 인지 형이 말렸어요."
"형에게 그런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면 동생이나 데이비드에게는 어땠나요?"
"베이비시터는 제 동생을 굉장히 잘 돌보아 줬어요. 동생에게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는 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단지 제가 사춘기가 오고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할 때쯤 제게도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형과의 그런 관계를 알고 저는 그런 베이비시터의 행동이 정말로 너무 혐오스러웠어요. 손을 내 몸에 대고 나면 굉장히 기분이 나빴던 것 같아요. 그래도 왠지 대 놓고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었는데. 왜 그때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네요."
베이시시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데이비드가 굉장히 불편해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화제를 바꾸어 그의 손 씻는 습관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손은 어릴 적부터 좀 자주 씻었던 것 같네요, 두 번 이상은 꼭 씻었죠."
"요즘은 수십 번 손을 씻으신다고 들었는데, 그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근데 멈춰지지가 않아요."
'정상'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그에게 물었을 때 데이비드의 대답은 나나 쥴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럼 데이비드가 보기에 좀 지나치다 싶게 손을 씻은 것은 언제부터였던 것 같나요?"
조심스레 시간에 대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인터뷰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가능한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기보다는 개방형 질문, 즉 응답자가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방형 질문을 통해서 인터뷰의 깊이를 더하고 다양한 정보를 얻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CEP에서는 여유로운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기에 질문이 다소 구체적 일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드는 내 필기노트 왼쪽 여백에 조그맣게 프린트되어 있는 작은 월별 달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곤...
"아마도 그때 일거예요. 그 TV 광고."
"무슨 광고였지요."
쥴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뭔가 이 친구의 스토리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 과연 무슨 광고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