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등장하는 병원명, 등장인물의 이름, 성별, 나이, 인종, 과거/현재 병력, 진단명 등은 모두 각색되었습니다.
*표시는 스토리의 이해를 위한 부가적인 정보를 뜻합니다.
The CEP (더 셉)
정신과의사ㅇㅇㅇㅇ
병원 창문으로 보이는 마천루 위의 파란 하늘. 내 머릿속에 맴도는 구절이 있다.
“I needed to put two critical ideas together: that I could both be mentally ill and lead a rich and satisfying life." By Elyn R. Saks
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해야 했다: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두 가지 아이디어. 정신병. 만족스러운 삶...."
"나는 도움이 되고 있는 걸까?..."
이러 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4년 차 선배가 지나가며 내 등짝을 치며 묻는다.
"오늘 당직 잊지 않았지?"
"아 네, 물론이죠."
"무슨 걱정이 있어?"
"아, 아닙니다..."
실은 난 의대에 다닐 때부터 나이가 많은 쪽에 속했다. 서른 중반에 회사를 때려치우고 늦게 입학하기도 했고, 의대생 중에 나 홀로 미국시민권자가 아니었고 영어가 원어민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언어능력이 다른 과 보다도 매우 중요한 정신과를 지원할 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
정신과 교수님의 조언이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정신과 의사는 말을 잘하는 것보다 잘 듣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학생이 다른 학생보다 나이가 많은 것은 오히려 플러스가 되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다른 학생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학생은 알고 있고, 환자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그렇게 정신과 레지던트를 지원해 지금 이곳에 오게 됐지만, 난 아직도 창가에 앉아 하늘을 보며 소심하게 내 능력을 다소 의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다행히 하루가 시작되면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수습해야 했고, 그러다 보면 퇴근시간이 왔다. 집에 오면 소심한 걱정을 또 시작하기 전에 꿈나라에 가버리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바쁜 게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암튼 이번주엔 주말밤에 당직이 걸렸고, 아니 걸린 게 아니라 동료 한 명의 간곡한 부탁으로 땜빵을 해줘야 한다. 레지던트 과정 중 가장 싫었던 주말 당직. 심지어 야간당직. 그도 그럴 것이 야간 당직인 날이면 아침에 출근을 해서 그다음 날 점심까지 대략 28시간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주말의 금 같은 시간이 깔끔히 망가지는.
*선배들에 의하면 28시간도 많이 줄어든 시간이라고 했다. 예전에 48시간이었으나 1984년 리비 자이온(Libby Zion)이라는 환자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인해 레지던트 주 근무 시간이 80시간으로 제한되어 당직시간도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1984년 뉴욕의 한 병원에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레지던트가 경련으로 내원한 환자 자이온에게 데메롤(Demerol)이라는 약을 처방하자, 환자가 기존에 복용하던 페넬진(Phenelzine, 항우울제의 일종)과의 치명적인 약물상호작용으로 사망한 사건이 그 원인이다.
자이온의 아버지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You don't need kindergarten to know that a resident working a 36-hour shift is in no condition to make any kind of judgment call—forget about life-and-death. (레지던트가 36시간 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은 유치원생도 알 것이다 - 생사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튼, 이제 오후 일과도 끝났으니 슬슬 CEP(Center for Emergency Psychiatry)이라고 불리는 응급정신의학센터로 갈 준비를 해야 했다.
CEP에서는 다른 차수 레지던트들과 돌아가며 1년 365일 24시간 그 응급정신의학센터의 지휘를 한다. 물론 최대한 밤시간에는 레지던트가 주로 일을 하고 교수님은 당직실에서 취침을 하고 응급상황이 있을 때만 레지던트가 떨리는 마음으로 교수님을 깨우는 시스템이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교수님의 단잠을 깨우던 그때의 긴장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로테이션을 시작하기 전에는 내과에서 수련을 했다. 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내과 병동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이곳은 사뭇 뭔가 신비한 아우라가 있었다. 뭔가 신경정신과적 질병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를 볼 수 있는 이곳을 레지던트들은 발음 그대로 CEP(셉)이라고 불렀다.
참고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레지던트들은 응급정신의학과 외에 여러 로테이션을 수료해야 한다. 1년 차 일 때는 누구나 거쳐가는 내과 중심의 수련을 시작으로 인간의 전반적인 생체의학을 배우고 그 후 정신과 외래에서부터 입원병동, 법의학 정신과, 소아청소년 정신과, 노인 정신과, 파킨슨이나 알츠하이머 등의 신경계통의 질병을 배우는 신경내과, 병원 내에서 다른 과 환자분들에게 정신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정신과 컨설팅, 약물중독, 전기충격요법 치료, 응급정신의학 등등 4년 동안 빠듯하게 로테이션을 돌고 전문의 시험과 함께 졸업을 하게 된다.
그중 응급정신의학 로테이션은 주로 CEP에서 수련이 이루어졌고 힘들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잠을 못 자고 계속 깨어 환자를 봐야 하는 물리적인 스트레스 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심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CEP으로 올 정도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아주 익스트림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나 남에게 해를 끼칠 정도의 자살 충돌이나 난폭함을 동반한 문제로 경찰이나 응급구조요원들에게 에스코트되어 오거나, 심각한 정신적인 질환이 육체적인 질환의 원인이 되어 돌처럼 굳어 버리는 긴장증(Catatonia) 같은 질환으로 CEP을 방문하였다. 다시 말해 여기온 환자들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한 니즈로 호송되어 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참 아이러니 한 건, 내과나 외과를 비롯한 다른 과 환자들이 병원에 오는 이유의 99%는 당신들의 건강을 오래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결정임에 반해, 응급정신의학센터에 오는 환자들 중 적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거나 또는 어떻게든 이 세상과의 작별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병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잠식해 버려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떨어 뜨릴 때, 그런 환자분들을 상대하는 것은 의료인으로서 참으로 힘들고 야속한 싸움으로 종종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외과처럼 개복을 해서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을 찾아내 잘라낸다든지, 내과처럼 감염에 적당한 항생제를 찾아 치료를 하는 객관적이고 직관적인 접근들이 정신과 레지던트인 나로서는 참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들 때면 도대체 왜 인간의 정신질환은 이런 방향으로 발현이 되었을까 하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정신적으로 가장 아픈 사람들의 택하는 죽음과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그들이 그토록 원해서 얻는 영원한 무존재성.
물론 정신과라고 그런 객관적인 치료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많은 질병들의 치료방법이 체계화되어 매뉴얼에 잘 저장되어 있지만, 정신과 질병은 단지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유발하는 것뿐 아니라 개개인의 깊은 의식에 파고들어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오랫동안 진화되어 온 육체의 본능적 생존의지마저 부정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의 DNA에는 생존에 필요한 본능들이 코딩되어 있다. 적어도 인간의 종과 비슷한 침팬지에서부터 700만 년 전부터 분화된 DNA에 코딩된 생존 본능은 배고픔, 번식욕구, 맹수에게 쫓기는 상황을 대비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는 맹수가 아닌 인간관계, 돈, 명예 등 더 복잡하고 더 난해한 것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다만 DNA에 코딩되어 있는 원시적 생존본능은 이런 사회적 변화들을 미처 따라잡지 못해 극심한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못했고, 복잡한 인간 사회는 인간의 생존본능 마저 쉽게 무시해 버리는 그런 잔인한 현실을 만들게 됐을지도 모른다.
* 참고로 기능적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유전자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수천만 년이 걸릴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초기인류가 대략 200만 년 이상 전에 존재했으니 사회적 스트레스를 조절하기 위한 유전자를 DNA에 담기엔 시간적 한계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타고난 생존본능 마저 능가하는 자살의 갈망이 이 세상에서 회피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름 그들이 내린 결정을 우리 의료진들이 용납하지 않으니 얼마나 미웠을까? 세상을 일찍 마감하고 싶거나 어떤 이유에서 이든 자신의 몸에 해를 가하는 사람들에겐 나를 포함한 의료진들이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너무 무서운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싶은데. 너무 화가 나서 자신의 몸에 상처라도 내서 이 화를 풀고 싶은데, 우린 그들의 그런 자유를 용납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화가 많이 날 법하다.
그들의 생존 본능마저 이겨버리는 극단적 결정의 원인을 찾고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그들의 안전과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도움을 주려 안간힘을 쓰는 곳. The CEP은 바로 그런 장소였다.
"자 땜빵하러 가자!"
하루 이틀 가는 곳이 아니지만 CEP은 갈 때마다 항상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긴장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센터로 가기 전 집에 들러 뜨거운 라면정식을 준비한다.
라면 봉지에 있는 사진처럼 계란하나 파 송송 넣은 비주얼을 재현하고, 살짝 덜 익힌 라면 발을 한 줄 걷어 올려 이빨 사이로 적당히 잘리는 느낌을 확인한 뒤, 그릇에 담아 손님에게 대접하듯 나를 대접한다. 어떻게 보면 단지 라면 하나 끓여 먹는 일이지만 나에게 이 행위예술은 밤 당직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이벤트가 되었다. 암튼 그렇게 따뜻한 라면으로 데워진 배를 두 번 손으로 어루만져 주고 왼쪽 벨트에는 21세기에 아직도 존재하는 삐삐와 응급센터 아이디 그리고 오른쪽에는 센터에서 수많은 문을 열기 위한 키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현관문을 나섰다. (때는 21세기, 우리 병원은 아직도 삐삐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몇몇 병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만. 다들 왜 스마트 폰을 안 쓰나 궁금했지만... 때론 삐삐가 스마트 폰 보다 좋다고 생각한 건, 폰으로 연락이 오면 바로 대화를 시작해야 하지만 삐삐는 내가 연락을 다시 할 때까지는 몇 분의 여유가 있기에 바쁜 일을 먼저 돌볼 수가 있었다.)
아무튼 초겨울 뉴욕의 거리에서 풍기는 외로운 기운을 느끼며 걷고 있을 때, 눈송이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센터에 도착할 때쯤엔 함박눈이 바람과 함께 휘 날렸다. 항상 걷는 길이지만, 이 길은 예전 학생 시절 걷던 종로의 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었다. 특히 어깨를 움츠리게 하는 이런 쌀쌀한 날씨에는 더더욱. 어쩌다 이런 타국에 까지 와서 이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래저래 생각에 젖어 걷다 보니 응급정신의학센터 CEP에 도착했다.
"12시간만 더 일하면 된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