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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모삼천지교 Jan 05. 2024

지금은 불협화음일지라도.

두 가지 언어가 만드는 화음을 기다리며

한국으로 돌아오며 아이가 새로 전학 간 학교는 현악기를 위주로 한 오케스트라 활동이 많은 곳이다. 다른 친구들이 만들어 내는 소리를 함께 들으며 화음을 맞추어 가는 경험도 좋겠다 싶어 우선 가장 많은 친구들이 하는 바이올린으로 정했다. 짧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활을 키며 레슨을 받으러 다닌 지 얼마나 되었을까.


 "Mommy. I want to learn Chello too! (엄마, 나 첼로도 배울래) "라며 아이가 눈을 반짝였다.


바이올린 학원에서는 첼로 레슨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는데, 오가면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좋다며 조르는 아이를 보며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첼로 선생님의 연습 소리가 좋기는 내 귀에도 마찬가지였지만, 두 가지 악기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할까?


흥미로워하니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데,
되려 두 악기 연주에 모두
혼란을 주는 것은 아니려나?


걱정하는 나에게 바이올린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건네셨다.


"일단 한번 두 가지 다 시켜보세요.

하다 보면, 어떤 악기가 더 연주하며 재미있는지

아이가 찾아낼 거예요."


그렇게 병행하게 된 바이올린과 첼로.


마침 이미 꽤 배운 바이올린에서 익힌 노래들을 첼로로 연주하니, 곡을 아는 만큼 배우는 속도도 훨씬 빨랐다.

하지만 바이올린에서 사용되는 스킬이 첼로에서는 불가능한 경우도 있었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필요한 포즈나 습관이 첼로 연주에는 방해가 되는 순간들도 계속 생겨나 아이의 얼굴에 버거운 기운이 자주 스쳐갔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악기를 배우느라 애쓰는 아이의 모습은, 아이가 치르고 있는 또 다른 [영어와 한국어]라는 두 언어와의 전쟁과 상당히 비슷했다.


어릴 때 익히면
평생 지니고 갈 수 있기도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계속 같은 레벨로 가지고 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점.  
한 가지에서 배운 스킬이,
다른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의 발전을 늦추기도 한다는 점.

첫 회사가 뉴욕에 본사가 있는 에스티로더였고. 그 후에 이직을 하며 만난 회사들 역시 로레알, 디올(루이뷔통 계열) 등 모두 프랑스계 글로벌 회사들이라 업무상 영어가 늘 필요했다.


윤여정 선생님도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통장이 비면 연기가 제일 잘 된다고.

당장 다음달 월급을 책임 질

서바이벌 잉글리쉬보다 강한 것이 있으랴!


연차가 쌓이면서 본사나 아시아 지역 담당자들을 상대로 영어로 설득이나 협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미팅도 점점 늘어가고, 매일 이들로부터 날아오는 메일을 탁구공 받아치듯 쳐내야 하는 일상이지속되다보니 서바이벌 잉글리시에는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더랬다.그래서 갑자기 뉴욕으로 아예 이사를 가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 큰 고민이나 걱정은 없었다.


’ 뭐….크게 새롭겠어?‘하는 마음.


그런데, 막상.. 뉴욕에 갔는데.
어머나 세상에.


내가 그동안 수십 년간 배우고 사용한 것은 '영어'가 아니었나????? 싶은 순간들이 계속 도래했다. 멜팅팟(Melting pot)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독특한 액센트의 억양들이 툭툭 튀어나와 귀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물론, 전혀 알 수 없는 단어들도 도처에서 출몰했다. 그동안의 영어가 모두…제2외국어로 서로 외국인인 처지에 친절하게 나눈 대화였고, 상호 잘 알고 있는 주제 내에서만 나는 이야기였다는 사실에 새로이 놀랐고 현실에 당황했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만나는 엄마들과의 대화 속에서 길을 잃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이전에 '일하면서 사용하던 영어'에는 [업무]라는 것을 기초로 한 배경 속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가득했고, 표현 역시 사뭇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뉴욕에 살면서야 깨달았다.


'일'로 더 많이 만난 영어였기에 관공서의 서류나 은행의 업무와 같은 내용을 처리하는 데는 되려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 유행인 드라마부터 부동산 가격에 영양제와 다이어트로 이야기들이 분 단위로 통통 이리저리 튀어나가는 엄마들 사이의 대화는 귀를 바짝 세우지 않으면 놓치기 쉽상이요, 알고있지 못하면 할 말이 없었다.

새로 나온 부동산 매물 이야기를 하더라도, 몇 평이 아니라 몇 스퀘어피트인지를 묻는 상황에 분명 언어는 영어인데, 내가 아는 영어가 아닌 외계어 같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는 시기였다.


30센티가 아니라 1피트 (계량)
따스한 날씨는 25도가 아니라 (화씨) 75도,
근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건,
현빈이 아니라 디카프리오...

그래서 마치, 다른 언어를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처럼 각 새로운 주제들에 맞는 새로운 단어들을, 대화하는 대상자들이 달라진 만큼 그들에 맞는 소통 방법을 익혀나가야 했었다. 아마, 내가 20대에 대학생으로 미국에 갔다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참여하는 활동에 필요한 용어나 회화를 더 익혔을 것이고, 애초에 일을 하러 미국에 갔다면 업무에 필요한 비즈니스 영어가 더 몸에 빨리 붙지 않았을까?


이렇게 어떤 시기에 어떤 용도로 '제2 외국어'인 영어를 만나느냐에 따라 익혀야 하는 단어들이 달라지는 경험은 지나는 내내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사하며 겪은 나의 경험을
거꾸로 뒤집어보니,
미국에서 한국으로 이사오며
지금 우리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귀국과 동시에 일상 속 공간이 미국에서 한국으로,

주 언어가 '한국어'인 공간으로 변화하면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언어의 서랍에 채워지는 단어들의 종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에서 또래 동네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고, 매일의 일상 속에 접하는 한국어 간판, 주변인들의 대화, 한국어를 담은 TV속의 콘텐츠를 보기 시작하면서 눈에 띄게 한국어 실력이 쑥쑥 자라났다. 각기 다른 시점에 채워지는 아이의 단어 주머니를 보는 재미는 상당했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해 본 적 없는 말하기 방식이 새롭게 등장했다.


어떤 단어를 '언제 어디서' 익혔느냐에 따라 영어가 되기도 하고 한국어가 되기도 하다보니 영어와 한국어가 짬뽕으로 등장하는 문장들이 속출하는 상황이랄까.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심리학자 팀은, 아이들의 단어가 각기 다른 언어 상자로 분리되는 것을 발견했다. 집에서 쓰는 언어로는 호박, 국자, 캠핑 등 가정에서 주로 쓰는 사물과 개념과 관련된 단어를 더 많이 알고 있었다.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  P.186


전체 서술은 한국어로 하다가도

중간중간 한국어로 말할 줄 모르는 단어는

영어로 대체되거나,

영어로 말하다가 한국어로 아는 단어가 나오면

한국어 단어가 끼어드는 모양새.


영어로 된 문장을 오래된 번역기로 그대로 돌려 직역한 것 같은 희안한 한국말도 속출했다.


예를 들면.

영어로는 크게 이상하지 않은 "I never had those experience In my life~"라는 표현을 "전 해 본 적 없어요, 내 인생에서!"라고 직역해서 말 한다던지…

'바람핀다'라는 표현을 어설프게 기억하고

"엄마 저 아저씨가 공기피운 아저씨야? (feat. 닥터 차정숙)."

"오늘 서점이 참 얌전하네."(조용하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라고 한다던지…

두 가지 언어의 빈칸을 서로 메꾸려 애쓰는 중에 탄생하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

귀여움에 웃음이 먼저 났지만,

사실 한국어와 영어, 각각의 언어 주 사용자들이 듣기에는 그 어느 쪽도 온전치 못한 그런 말들이기에 고민스러웠다.


지금이야 어려서 귀엽다 치지만,
좀 더 커서도 이렇게 말하면 어쩌지…?
2023년에 가장 유명해진 바로 그 화법. 좀 비슷하죠;;;

빠른속도로 늘어가는 한국어는, 그만큼 한국 생활에 매우 잘 적응하고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어느 언어도 온전치 않게,

마치 구멍이 숭숭 뚫린 젱가게임처럼

어설프게 자라고 있는 듯 한 아이를 보며

내 걱정도 함께 자랐다.


언어를 통해 만나는 각각의 세상도 이렇게 구멍이 뚫린, 곧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의 모양인 것은 아닐까???
한국어와 영어. 이 두 가지 언어를 어떻게 이끌어 주어야 하나…??
이미지 출처: Pixabay by @StockSnap

그래서... 고민하여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이며, 여러 사이트들을 오가던 중.

이런 상황이 꼭 [해외에서 귀국한 아이들]에 한해서만 보이는 문제가 아니라, 어린 나이에 이중언어를 배우는 아이들에게서 꽤 많이 생기는 문제들 중 하나라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언어의 문제는 단지 언어로 끝나지 않는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상을 인지하는 눈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변화한 눈을 스스로 매일 느끼며 살아가고 있기에 삐뚤빼뚤 올라가고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아이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 걱정스러웠다.


말은 쓰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죽는다'를 '돌아간다'라고 말합니다. 김소월의 시구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처럼, 사랑한다는 표현을 '나하고 살자'라고 말합니다.

또, 선생은 한국어에는 영어의 'kill'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죽인다'는 '죽다'의 사역동사입니다.

- 롱블랙, 이어령 선생님에 대한 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할 때 삶은 농밀해 진다' 중.-


해외살이의 경험이 없더라도 한국에서 유아기에 영어몰입식 교육을 하는 유치원 등을 다닌 경우,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가 모두 더디게 발전하며 언어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니 이 문제는 어쩌면,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해외를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더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라는 점을 알고 나니, 나만 하는 외로운 고민은 아닌 것 같아 안도감이 든 것도 사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

어찌 걱정이 되지 않으랴.


무엇이 정답인지, 어떤 방법이 더 나았을지, 아이마다 모두 각기 다른 상황일 수 있지만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고민해 보려는 부모들의 글을 보며 나 역시 공감하며 함께 길을 헤매었다.


그러다 이 책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을 만났다.


이중언어를 쓰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의 입장이 아니라, 이중언어를 사용해야 했던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실험 결과와 개인적인 토로를 담고 있는 이야기 속에는 그동안 내가 찾아오던 답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지와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주변의 여러 가지 실사례들을 보며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가설들이 책 속의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 명확하게 하나의 선으로 늘어서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에서 태어나 말도 하기 전에 프랑스로 입양된 아이가 후에 대학에서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훨씬 빠르게 습득한 결과를 보며, 미국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부터 현지 미국인이 운영하는어린이집을 다니다가 1살에 한국으로 귀국한 아이가 후에 영어를 제2 외국어로 학습하면서 주변 또래들에 비해서 월등하게 앞서 나가는 이유를 알 수 있었고.

중 2때, 분명 같은 반에 훨씬 더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던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어민 선생님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몇 번의 수업 후, "너는 혹시 영어권에서 살다왔니?"라고 직접 질문을 던진 친구가 사실은 초등학교 1학년때 잠시 해외에 살며 국제학교에 다녔었다는 사실을 밝혀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영어 시험점수는 중상위권이었지만 완벽하지는 않았고, 발음이 그닥 뛰어나다고 알려진 적 없는 친구였는데 그 날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로 "입을 쓰는 방법이 달라서"라고 답하셨다. 다들 신기해서 그 친구의 입만 바라보았던 그 날의 우리가 떠올랐다.

구사하는 언어에 따라, 체류하는 나라에서 사용하는 이름에 따라 성격도 달라지는 것 같다는 에세이를 읽으며 '나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라고 읇조린 경험.

완전 체계가 다른 4개 국어(영어, 불어, 일본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던 프랑스인 상사에게, 그 비결을 묻자 "내 머릿속에는 여러 언어들이 각각의 서랍을 가지고 있어서 그 언어가 필요할 때는 서랍을 열기만 하면 돼요."라는 답을 듣고 신기했던 기억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친구들의 소리가 내 귀에는 모두 똑같이 들리는데, 전부 다 틀리고 한 친구만 자기 이름을 제대로 발음한다며 격분하던 아이를 보며 갸웃했었던 순간.


그리고.

여러 가지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며 성장하는데 따른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이런 구절을 읽으면서는 환호했다. "상황에 따라 이중 언어 사용자들이 단일언어 사용자들보다 새로운 단어를 더 빨리 학습한다. 이들은 말소리의 미세한 특징에 더 민감할 수 있다.(p.184) "

그렇게 열심히 줄치며 따라간 책 속의 내용을 통해 앞으로 아이와 함께 가야할 방향을 희미하게나마 다시 그리기 시작할 수 있었다.


혼돈의 영어와 한국어의 소용돌이 속에

홀로 놓여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학교에서 주로 사용하는 (현재 외국인 학교에 재학중) 영어에 중점을 더 두고, 한국어는 구어나 생활속의 언어로 성장하는 정도로 그저 지켜보고 있던 우리였다. 여러가지를 배우며 자라느라 매일이 바쁜 아이에게 한국어까지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부담과 스트레스를 더 얹는 것은 아닐까 싶어 섣불리 시작도 못하고 말이다. 그래서, 뉴욕에서는 주말 한국어 학교까지 보내며 사수하려 한 모국어였지만, 되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한국어를 그저 '구어의 발달' 정도에 머물도록 내두고 있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게, 저자가 말을 걸었다.

"지배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어 자신의 문화나 언어 유산의 흔적 대부분을 잃어버린 사람들, 아니면 주류 무화를 회피하며 소수 문화에 숨는 사람들은 안정적인 이중성을 성취한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

양쪽 문화 모두에게서 등 돌린 사람들, 자신이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가장 고통을 받는다."


아이가 행복한 한 사람으로 자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아이의 모국어인 '한국어'와,

아이의 세계를 이루고 있는 '영어'를 함께 인정하고

잘 자라날 때라는 결론을

명확하게 확인하고 난 다음날부터.


아이와 함께 가장 쉬운

한국어 수업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두 개의 말을 배우는 것은 하나 이상의 악기 연주를 배우는 사람들이 얻는 것과
비슷한 이점을 제공할지 모른다.
 
하나의 악기에서 잃는 기술적 능숙함 대신
음악이 어떻게 구성되고 각각의 각기가 전체적인 효과에 어떻게 이바지하는지를 이해하는,
더 깊은 음악성을 얻을 수 있다.

P.186 이중언어의 기쁨과 슬픔


자라는 내내 삐걱거릴 것이고,

다 자란 후에도 엉성할 것이다.


흔히 말하는 '바이링구얼'이란, 진짜는 유니콘처럼 희귀한 존재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아이에게 이를 강요할 생각도,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 너무나 다른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가치들의 충돌을 어찌 다루어야 할 지 몰라 당황하던 나의 경험이, 시간이 지나 더 크고 예쁜 세상이 되어주었던 것 처럼….


앞으로 더 많은 당황함을 앞둔 아이 곁에 앉아 쉬운 것 부터 하나하나. 다시 쌓아보기로.







안녕하세요. 

제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이시라면... 

저는 "맨모삼천지교"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입니다. 

'맹모삼천지교'에 오타난 것 아니냐고 물으시는 분들꼐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 맨하탄으로 갔다가 거기서 아이를 키우던 시간을 지나며 "맨(하탄)삼천지교"가 되었다 말씀드리고 싶네요. 

마케터로 브랜딩을 하며  17년의 시간을 지나, 사람들의 행동속에 감추어진 "conventional wisdom(일반적인 통념)"을 호기심을 담아 생각해 보는데서 시작 되었습니다. 

제가 읽고 쓰는 기록들은,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sunny_story_of_my_life/)과 Threads(https://www.threads.net/@sunny_story_of_my_life?hl=en)에도 공유하고 있으니 함께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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