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며 피는 꽃은 존재한다.

by 김태연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를 알아가고 나를 존중해주고, 나와 친구를 맺는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요즘 자기 존중이 유행이라 스스로의 삶을 가꾸는 책들이 많이 나온다. 나는 그중에서 늘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끝끝내 그 어떤 책도 고르지 못하고 나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야. 이건 현실적이지만 좀 귀찮을 것 같아. 하나같이 나를 알아가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나는, 읽던 책을 내려놓음과 동시에 나를 알아가는 게 생각보다 어렵구나. 그건 마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미로 찾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미로는 매우 복잡하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잘 찾아가지 않으면 딴 길로 새 버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걸 좋아했었나? 나쁘진 않았어. 더 좋은지는 모르겠어. 그럼 이길로 가야 하나? 나는 선택의 어려움을 느끼며 갈팡질팡 한다. 비단 나뿐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자신이 이걸 좋아하고 이걸 잘할 수 있다는 확고한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분명히 근거가 있는 자신감일 텐데 말이다.


최근에 와서야 나는 확실히 속물임을 알긴 했다. 오래된 차를 더 이상 끌기에는 무리였고, 새 차를 샀어야 했는데 남편이 욕심을 줄이라고 했다. 아니 내가 외제차를 사겠다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너무 비싸 좀 더 낮은 등급으로 골라봐. 결국 나는 지지 않았고 내가 원했던 차를 할부로 구매했다(이놈의 할부 인생은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나의 새 차를 탈 때마다 생각한다. 난 참 속물이야. 어쩔 수 없어.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데 난 이미 비우면서 동시에 얼른 채우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좋아할 수 없지. 참 우리나라 차 좋게 나왔다. 역시 우리나라에선 우리나라 차가 최고지 암암 그렇고 말고.

나는 매우 만족스럽게 차를 탄다. 그리고 나오는 할부 값에 전전긍긍한다. 아마도 나는 불필요한 삶을 살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꼭 좋은 차가 아니어도 되었고 또 새로운 것이 아니어도 되었던건 아니었다. 나는 새 차를 타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전에 타던 차를 혼자 끌 때마다 이 차는 참 운전이 편해. 오래 버텨줘.라고 말한다. 구식이라고 싫증 난 것은 아니다. 오래된 차는 그만큼 운전이 익숙하다. 다만 새 차의 특유 쾌적함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사실이 있다. 아무렴 어떤가. 나를 속물이라 해도 어쩔 거야. 난 이미 샀고, 만족하며 타고 있다.


그리고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에는 휴식을 선언한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아이의 공부를 봐주지 못하고(나는 확실히 열정적인 엄마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오늘은 엄마의 상태가 매우 안 좋다고, 그건 미리 해두던가 내일 아침에 하라고 한다. 내 아들은 아마 우리 엄마는 정말 제멋대로에 게을러 빠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알게뭐람. 당장 힘들어 죽겠는데, 나는 쉼이 일 순위다. 그 어떤 걸로도 그 위로 순위가 결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


가끔 이래도 되나? 싶을 땐 다른 엄마들을 만날 때이다. 그 집은 영어도 하고 수학도 다니고 아이가 바쁜 일상을 보내는데, 우리 아들은 독서 학원에 일주일에 한 시간, 축구는 두 번 간다. 모전자전이라고 나만큼이나 자기 생활이 중요한 남자라 더 떠밀면 폭발할까 봐 이 상황에 만족하려 한다. 공부는 못하면 못하는 대로 가는 거지. 잘하면 혜택이 많겠지. 그렇지만 니가 노력을 안 하는데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아들에게 종종 말하곤 한다. 아들은 난 잘하고 싶어. 라며 가끔 눈물 콧물을 쏟는다.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하며 끝맺음을 맺는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아들은 게임을 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보란다. 엄마가 보고 싶은 게임을 해주겠다 한다. 아들의 친절함에 나는 가끔 이해하지도 못하는 게임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간다. 머리가 내 아들보다 나쁜 건 확실한 듯하다.



나를 찾아가는 것은 꽤 진실된 일이다. 삶이란 그렇게 나를 마주하는 연속선상에 있다. 나는 단번에 나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 같다. 아들의 공부도 봐주어야 하고, 남편의 건강도 체크해줘야 한다. 둘째 아이의 늘 놀고 싶은 마음까지 존중해주어야 한다. 할 일이 많은 나는 (이 모든 것이 핑계로 들린다 해도) 한 번에, 그리고 단기간에 나를 찾진 못할 것이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나를 찾아가는 행위란 얼마나 복잡한 일인지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찾아야겠지. 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알아봐 주겠어. 나라는 꽃은 내가 이름을 불러주고 지어줘야지. 흔들려도, 꽃은 피지 않겠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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