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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삼덩굴과 쇠뜨기도 키웁니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어린이날 아침 일찍 텃밭으로 향했다.


어린이날이라 모두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곳으로 나들이를 갔나 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길도 막힘이 없다. 길이 늘 이렇게 매끈하고 시원하게 흘렀으면 좋겠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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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엔 강을 따라 늘어선 벚꽃길에 벚꽃비 내리는 구경조차 못하고 봄을 보냈다. 내가 보았든 못 보았든 시간이 흘러 꽃은 지고 벚나무 잎들이 무성하게 우거질 시기다. 우거지는 모습이 한 해 다르고 두 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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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향하는 다리인지 지난해 겨울 무렵까지도 미완성이던 부분이 드디어 이어졌다. 아직 이어지기 전인 다리 아래를 지날 때면 늘 불안했었는데 이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겠다. 뭔가 점검할 일이 많은지 다리 위에는 여러 대의 차들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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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엄나무 순은 그 가시 많은 나무를 무엇으로 끌어당겼는지 저 맨 꼭대기 순까지 깡그리 따 가 버렸다. 4월 말에 한 번은 다녀갔어야 하는데 모두가 주인인 내 잘못이다. 이곳에 엄나무가 있음을 아는 이들의 소행이리라 생각하면서도 구석구석 뒤지지 않은 데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키가 훌쩍 자라 있어야 할 아스파라거스는 해마다 뿌리째 캐 가는 바람에 씨가 마른다. 대궁이 굵게 자란 뿌리들로만 골라서 모두 캐갔다. 이 무렵 밭일을 하다 목이 마를 땐 물 대신 아스파라거스 한 대 따서 입에 넣으면 목도 축이고 영양분도 취할 수 있는데 아쉽다.


나눔 받은 자색 아스파라거스 씨앗은 풀이 덜 우거지는 가시가 무시무시한 꾸지뽕나무 아래 묻었다. 나도 조심해야겠지만 자색 아스파라거스 뿌리를 뽑아가려는 누군가가 있다면 꾸지뽕나무 가시에 찔리지 않기를 바란다.


몇 해 전부터 해마다 꽃은 봐도 열매는 구경도 못하는 오미자는 올해도 꽃이 만발했다. 새들이 오미자 열매를 따 먹고 감나무 밑에 씨앗을 흘렸나 보다. 오미자나무와 제법 거리가 있는 감나무 아래서도 오미자 두 포기가 뿌리를 내렸다. 이렇게 개체 수가 늘다 보면 오미자 열매를 맛보는 날도 오겠지 생각한다. 오미자 키우면서 지금껏 오미자 열매는 구경도 못했으면서도 문득 새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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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나무 역시 꽃향기 맡을 시기를 놓쳐버렸다. 주인이 보든 말든 때가 되니 꽃이 피었을 테고 지금은 꽃 진 자리마다 팥알 만한 열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런 당당함이 마음에 든다. 주인이 올 때까지 꽃 피기를 미루는 식물이 있다면 그 식물은 이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식물일 것이다. 나도 식물체도 자연 속 한 목숨이다. 자연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는 동등한 한 생명체이니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면 된다. 사실 이들은 내 땅에 들어 사는 보답으로 내게 꽃과 열매로 보답을 한다.


하지만 다 자라준다면 두 가마니도 넘을 것 같은 자두는 열매가 숱하게 매달려도 20여 년 동안 내 입에 성한 자두 하나 건네주지 않았다. 모조리 벌레 밥이 되고 마는 자두, 꽃향기라도 맡아줬어야 하는데 아쉬울 뿐이다. 언제부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자두 열매들이 제법 크게 자라도 입맛을 다시지 않는다. 올봄에도 자두들은 이미 제 안에 서너 마리의 벌레를 품고 키우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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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꽃들도 그렇지만 상사화는 시기를 잘 맞춰야 잎 아닌 꽃을 볼 수 있다. 다른 꽃들과 마찬가지로 올해는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상사화 역시 꽃 피는 시기는 놓치고 잎만 보게 보게 되었다. 연분홍의 상사화가 눈에 삼삼하다. 처음 다섯 알 심어 한 밭뙈기가 되었으니 제법 잘 자랐다고 볼 수 있다. 작년에 비해 개체수가 훨씬 많이 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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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예초기로 풀을 치는 사이 나는 마늘밭 풀을 뽑았다. 드문드문 눈에 띄는 마늘이 아니라면 영락없는 환삼덩굴과 쇠뜨기 밭이다. 남편이 한 마디 던진다.

"환삼덩굴 키우세요, 쇠뜨기 키우세요?"

"환삼덩굴과 쇠뜨기 먹은 마늘 키웁니다. 이거 왜 이러세요?"


환삼덩굴은 어미 뿌리에서 나온 것들도 아직은 가사를 내기 시작할 정도로 어리다. 이 무렵 뿌리를 잘 찾아 뽑아주면 퇴치도 쉽다. 하지만 죽자고 덤벼도 쇠뜨기에게는 이길 수가 없다. 통통하게 자란 쇠뜨기들을 끊기는 대로 한 움큼씩 모아 마늘들 사이에 놓으며 한 마디 부탁했다.

"우리 마늘이 먹을 걸 니가 다 먹은 것 같다. 이제 너 먹은 걸 우리 마늘들에게 돌려줘야겠다."

못 들은 체할 게 틀림없다. 부러진 자리에서 쇠뜨기들은 벌써 새 순을 내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가을 마늘을 심고 왕겨를 덮은 위에 울금과 호박 잔사를 덮어두길 잘했다. 마늘은 얼거나 상한 것 하나 없이 잘 자랐다. 남편은 울금과 호박 잔사를 덮는 내게 지저분해 보이는 건 하지 말자고 했었다. 봄이 되어 보니 잔사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 두고 썩히느니 마늘 심은 자리에 덮어두자고 했던 내가 옳았다. 동해 예방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빗물이 쉽게 증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제 비가 제법 온 것도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한동안은 물을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왕겨에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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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끓인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오늘 들고 간 모종과 씨앗들을 자리를 잡아 모두 흙에 묻었다. 실파를 묻고 나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생강과 토란은 종자가 되는 대로 심고 울금은 보관 상태가 좋은 것들로만 골라 심었다.


방울토마토 모종은 포도 심었던 자리에 심고 타고 오를 줄을 매 주었다. 그 곁으로 오이와 여주를 심었다. 어느 정도 자라 오르면 같은 줄을 타고 오르며 키재기 하기를 바라는 게으른 농부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 바라면서. 식물도 동물도 만물의 왕인 듯 잘난 척하는 인간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상대가 됐든 이해를 하기도 해야 하고 이해를 받기도 해야 한다. 이것은 철칙이다. 나눔 받은 여러 가지 꽃씨들까지 자리 잡아 뿌렸다. 텃밭에서 제대로 꽃 볼 여유를 누리기 쉽지 않겠지만 예초기를 부르는 풀에 비하랴.


씨앗을 뿌린 후 푸성귀 수확에 들어갔다. 역시 누군가의 손을 타기는 했지만 영아자와 참나물이 생각 외로 많이 번졌다. 특히 영아자는 벚나무 그늘 쪽에 옮겨심기를 잘했다. 그늘이라 키도 크고 부드러운 것이 보기에도 맛나 보인다. 삼잎 나물은 울타리 밖으로까지 번졌다. 이웃 밭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뽑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깜빡 잊고 왔다. 다음 달 마늘 뽑으러 가서는 잊지 말고 울타리 밖 삼잎 나물부터 정리해야겠다.





오늘도 후다닥 밭에 다녀왔다.


조금씩 조신하게 일을 하지 못하고 엄벙덤벙 서둘며 일한 척 흉내만 내다 왔다. 내가 심은 먹거리들뿐만이 아닌 환삼덩굴도 쇠뜨기도 들어오면 나갈 생각 없는 밭이다. 얼마 있으면 흰옷을 입은 선녀벌레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말벌들이 집을 짓기도 하고 꿩이나 뱀과 고양이도 들어와 산다. 멧돼지와 고라니가 주인보다 자주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밀려 집에 도착하기까지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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