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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세요'라는 말은 넣어 두세요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by 장미

지난해 어버이날 무렵 심은 아보카도 씨앗이 30cm 정도까지 자랐다.


잎의 생장점을 잘못 건드렸는지 잎 하나가 하트 모양으로 올라와 미안하면서도 잎새 고운 아보카도가 쑥쑥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20201205_104020%281%291.jpg?type=w773 아보카도/ 20201205


그런데 한겨울인 1월 초순이 지날 무렵 싱싱하던 아보카도 잎이 뒤로 말리면서 몇몇 잎은 짙은 갈색으로 변해 떨어졌다. 열대 식물이니 추운 겨울을 견디기 힘들어 그러는가 보다 생각했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잘 견디는 구아버 잎들도 붉은 물이 들곤 하는 겨울이니 아보카도 역시 겨울을 타는 것이리라. 더구나 처음 키워보는 아보카도를 내가 어떻게 해 줄 도리도 없어 안타까움만 더했다.





그러더니 잘 자라던 잎들은 하나 둘 떨어져 내리고 위에서 나와야 할 새순이 얼음 상태가 되었다. 대신 옆구리에서 작은 새순들이 보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급기야 정수리 부분 새싹과 그 아랫부분까지 말라 검푸른 색으로 변했다. 안타깝지만 말라서 변한 부분을 잘라냈다. 고름이 새살이 될 리는 없기에 말이다.


옆구리 새순들은 여러 개 자랐으나 어느 것 하나를 받아 키워야겠다고 할 정도로 확실하고 튼튼하게는 자라지 않고 다들 고만고만했다. 그로부터 다시 보름이 지났다. 잘라낸 자리가 다시 마르고 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새순들이 자라는 부분까지의 잠식은 시간문제다.


마른 부분 아래로 손가락 한 마디쯤 내려와 튼튼한 부분에서 아낌없이 잘라낸 후 자른 자리에 촛농을 부었다. 한 번 부은 촛농이 아래로 흐르는 바람에 자른 자리를 제대로 덮지 않아 한 번 더 부었다.


"앗, 뜨거."

아보카도가 자지러졌다.

"이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야. 내가 좀 방치 스타일이잖니. 널 땅에 심어주었지, 아픈 자리 잘라내고 상처 봉합도 해 주었지. 이제 나머지는 네가 잘 알아서 살아내야 해."


처음 보여주었던 고운 잎의 자태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득 부었다.





올해 들어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모들이 유난히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있으면서도 잘 키우겠다고 입양한 아이를 못된 방법으로 살해하는 부모도 있고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방치하여 죽음으로 내모는 부모도 있었다. 내가 발전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가 돌아본다. 보도가 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키우는 아이가 죽어가도록 방치한 부모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어 정신이 나간 산모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그뿐이랴. 산업사회로의 발전 이후 죽음의 양상도 크게 달라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뉴스에 등장하는 노동 현장에서의 죽음 역시 채널을 돌리게 하는 가슴 아픈 일 중 하나다. 암으로 인한 사망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도 아니다.


엊그제는 가수 보아의 친오빠인 권순욱 뮤직비디오 감독이 복막암 전이에 의한 4기 암 진단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갓 40의 나이에 몸무게가 36kg까지 줄었다는 내용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용기를 내어 살 날이 몇 개월밖에 남지 않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냈다는 말에는 가슴이 먹먹했다.


50세가 넘으면서 주변 가까운 이들이 이 세상에서 저세상으로 가는 일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더 일찍으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를 아껴주시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우리 첫째가 백일을 넘길 무렵엔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 외삼촌들과 외사촌 형제들을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이후 나는 내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는 고아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남편 형제들이나 암으로 오래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다른 이들의 죽음 소식은 그 이후 계속해서 찾아들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갈 차례가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제저녁 남편이 물었다.

"몇 살까지 살 거야? 100세는 너무 많아. 90세까지만 살자."

그렇잖아도 며칠 전 삶이 무료해서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나눈 뒤라 남편의 이 말은 내게 썩 기분 좋은 말로는 들리지 않았다.


"왜 이러세요, 난 150세까지 살 거야."

"그 새 또 늘어난 거야?"

"'150에 저세상에서 또 부르러 오거든, 나는 이미 극락세계 와 있다고 전해라.'라는 가사는 벌써 옛이야기죠. 그 노래 유행한 지 좀 지나지 않았어요? 하루 다르게 평균 수명이 연장되는 세상이니 난 150세까지는 좀 살아봐야겠어요."

"그럼 애들이 몇 살인데?"

"애들은 애들 나이를 먹겠죠. 복지는 지금보다 훨씬 좋아져 있을 테니 아이들 손 빌릴 일도 없어요."


남편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요? 내가 원한다고 해서 150세까지 살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언제가 됐든 사는 날까지는 아프지 않고 살고 싶을 뿐입니다. 누구보다 당신과 함께 건강하게 살고 싶을 뿐이라고요."

남편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난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아요. '몇 개월 안 남았습니다. 준비하세요.'란 말만은 정말 듣고 싶은 말이 아니에요. 사고가 아닌 한 자신의 갈 날은 자신이 잘 알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어느 자식이 부모가 아프다는데 병원으로 모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보카도를 보면서 생각한다. 내 몸과 마음도 아픈 데를 이렇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은 내가 아보카도 네게는 의사네. 언제까지 살 거라고는 누구도 확정해서 말할 수 없는 거야. 그 병원에서 그 의사가 고칠 수 없다는 말일 뿐이지 낫지 말라는 병은 없지 않겠니? 아보카도 너처럼 말이야.''


재미없고 어려워도 읽어낼 수 있는 인생이라는 책이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몰라. 몇 장 남았는지 헤아리지 않기로 했어. 헤아리다 보면 인생은 점점 더 지겹고 무료해질 뿐이야.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날은 초록초록하던 그때가 떠오르곤 해. 풀기 싫은 확률 문제를 풀면서 한 문제 풀고 날 때마다 남은 문제를 수도 없이 헤아리던 그때 말이야.


gdc2a1c9ab7898664c66c3bc78d86ff3371023e727a4b79d24fc961a94eceef5916155949e6d.jpg?type=w773 © Kranich17,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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