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사위가 막걸리 한 박스를 보내왔다.
5병 들이 아스파탐 무첨가 막걸리다.
술을 받아들고 기뻐하지 않은 남편의 얼굴은 많이 낯설었다.
남편은 온갖 종류의 알코올을 다 좋아할 것 같은데 막걸리만은 즐기지 않는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나는 알코올분해 효소가 없는 인간인지 소주는 입에 대지도 못하고
맥주 몇 모금만 마셔도 얼굴은 물론 온몸이 붉어지고 가려워 벅벅 긁어대다가 쓰러져 잠이 들고 만다.
이러니 막걸리가 반갑지 않았을 수 있겠다.
그런데 사위가 보내온 이 막걸리는 아스파탐 무첨가 막걸리다.
아스파탐 무첨가 막걸리는 머리가 아프지 않을 거라는 내 말에도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위에게는 전화를 걸어 막걸리 잘 먹겠노라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사돈댁에는 술을 드시는 분들이 안 계시니 사위 역시 술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리라.
다만 아스파탐 무첨가 막걸리라는 말에 코로나 시국이라 장인어른을 찾아뵙고 직접 술 한 잔 대접해 드리지 못하는 마음을 이렇게라도 전하려는 마음이 이쁘고 고맙다.
사위는 술 좋아하는 장인을 위해 여러 가지 술을 자주 보내온다.
다시 막걸리를 받지 않으려면 딸을 통해 넌지시 알려주어야겠다.
남편이 이웃 지인들에게 막걸리 배달에 나섰다.
끽연이 인연이 되어 가끔 뭉치기는 하지만
누구네 집에 함께 모여 술을 나누기에는 코로나19도 걱정스럽거니와
아직은 집을 공개할 정도로 남편들이 친한 사이는 아닌 듯하다.
그보다는 어쩌면 한 번 이 집에서 모이고 나면 다음 차례가 절로 정해질 수도 있어
아내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고 보인다.
막걸리를 받은 이웃 중 한 분이 잘 마른 칡 한 봉지를 보내왔다.
아침 일찍 물 2리터 정도에 칡 예닐곱 조각을 넣고 약불에 오래 끓여
커다란 보온병에 넣어두고 조금씩 마시는 중이다.
오늘은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오는 듯 개는 듯 시름거려 그런지
쌉싸름하고 따끈한 칡 차 향기와 맛이 입에 착 붙는다.
남편과 둘이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칡 차를 마시니
자연스럽게 십여 년 전 텃밭 옆 산에서 칡 한 뿌리를 캤던 이야기가 나왔다
곡괭이까지 동원한 남편이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중간쯤까지 캐다 포기했다.
"그때 그 칡이 암칡이었어. 쌉싸래하면서도 달콤한 가루가 입안에 가득 찼었다니까."
"칡 차는 잘 상해서 냉장고에 넣어도 하루 정도 안에 마셔야 해요."
칡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서로 자신의 경험이 주가 되어 동문서답인 듯 아닌 듯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암칡이 어떻고 숫칡이 어떻고 칡냉면은 암칡의 녹말을 넣은 것이라는 등
칡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딸에게 '아빠가 막걸리는 좋아하시지 않는다'라고 넌지시 알릴 필요가 없겠다.
사위가 보낸 막걸리 덕분에 을씨년스러운 회색의 12월 어느 날
쌉싸래하고 향긋한 어린 날 추억의 칡 향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