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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서답이지만 부부 전선 이상 무

by 장미


아침 8시 반이다. 단팥호빵 하나와 사과 1/4쪽, 삶은 달걀 1개를 식탁에 올리고 커피 물을 끓였다. 오늘 아침식사는 혼자 하기로 한다. 어제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남편이 말했다.

"내일 아침엔 늦게까지 아주 늘어지게 잤으면 좋겠네. 깨우지 말고 먼저 식사해요."


식구라야 남편과 나 둘뿐인 시절이다. 늦잠 자겠다고 미리 선언하는 남편의 심사를 알 듯 모를 듯하다. 제시간에 식사를 하지 않으면 뱃속이 시끄러운 나와 잠이 우선인 남편과의 간극을 커피 물이 솰솰 소리를 내며 흐른다. 나 대신 주절거리는 것만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어제는 올겨울 들어 처음 눈다운 눈이 제법 왔다. 하지만 고운 함박눈이 아니라 바람에 찢긴 꽃잎들처럼 눈발이 사방팔방으로 날렸다. 더러는 쌓이고 더러는 녹으면서 눈다운 눈은 온데간데없고 금세 지저분한 모습으로 변했다. 하룻밤 새 어제의 그 바람은 어디로 숨었는지 잠잠하고 햇볕이 쨍하다. 간간이 어디 쌓였다 떨어지는지 모를 눈송이들은 흰 꽃잎들처럼 떨어져 내리고 베란다 밖 난간에 쌓인 눈은 녹아 한 방울씩 방울져 떨어진다. 해 좋은 날 늘 그런 것처럼 먼 데 풍경까지 조용하기만 하다. 적어도 내 귀를 소란스럽게 하는 소음은 없는 일요일 아침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베란다로 나갔다. 요즘 들어 씹히기 시작한 화초 정리용 가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바닥만큼 잘라낸 알루미늄 포일을 가위로 몇 차례 잘라 가윗날을 세웠다. 베란다에 들여놓은 화초가 늘면서 베란다는 점점 비좁게 느껴진다. 하늘 아래 들판을 모조리 곁에 두고 살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지나치게 제한된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에서 생긴 화초들의 상처는 내 몸에 부딪힌 것들이 태반이다. 다른 상처들도 대부분은 내 부주의로 인한 것들이기는 하다.


가위를 들고 부러진 관음죽 잎줄기를 먼저 정리했다. 가윗날이 잘 섰는지 질긴 관음죽 잎줄기가 단번에 싹둑싹둑 잘린다. 오래전 내가 병원 치레 중에 얼어 죽다 살아난 관음죽이라 애정이 더 간다. 관음죽의 푸른 잎에 관심을 보이는 내게 누군가가 했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관세음보살의 손바닥을 닮은 관음죽은 특히 남편을 여러 면에서 돕고 보호해 준다고. 사실인지는 관음죽에게 물어본 적도 없을 뿐더러 물어도 대답할 리 없는 관음죽에게 그동안 내내 무언의 압력을 넣고 있었는지도 모를 나를 본다. 오늘 아내 홀로 아침식사를 하게 한 남편이지만 그렇더라도 관음죽이 남편을 지켜준다던 그 말의 효력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다.





내친김에 작은 다육이들의 시든 잎도 정리했다. 쓰지 않는 찻잔 아래 구멍을 뚫고 키우는 이름 모르는 다육이는 집이 너무 작다고 투정을 부릴 만도 한데 묵묵히 뿌리를 허공에 내며 자라고 있다. 주인이 눈 있으면 알아서 해 달라는 뜻인가 보다 한다. 잎 하나에서 몇 해 사이에 풍성하게도 자랐다. 이 겨울이 가고 봄이 되면 큰 화분으로 옮겨 주어야겠다.


역시 이름을 지어주어야 할 다육이는 세 개씩이나 문 꽃대를 키우느라 추운 겨울을 느낄 새도 없어 보인다. 눈곱만 하던 꽃대들이 제법 모양을 갖추었다. 그 옆 가지에서는 생장점을 건드린 적도 없는데 새 순이 두 개가 자라고 있다.


오래 마음을 주며 지켜보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이 사람뿐이겠는가. 두 번째 올리는 이 꽃대들은 얼마나 길게 어떤 방향으로 뻗어가 환한 별 같은 꽃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모든 것들이 고요한 가운데 함께 어우러질 때 평온은 온다. 관음죽은 물론 다른 화초들 역시 우리 가족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는 고마운 생명들이다.





화초를 정리하고 커피 한 잔을 더 타는데 남편이 다가왔다. 자기 몫의 식사를 하고 커피 잔을 들면서 만족스러운 듯 한 마디 한다.

"역시 일요일엔 늘어지게 자야 해. 잠 맛이 다르다니까."


남편은 잠의 여운에서 나는 화초들과 대화의 여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오늘 대화 역시 동문서답으로 시작하지만 부부 전선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해가 너무 좋아. 베란다에서 왔다 갔다 했더니 땀이 다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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