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저녁 식사 후 남편이 높은 주방 찬장 문을 열고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왜? 뭐 찾아요?"
"그냥."
"그냥은 무슨? 내 구역에서 허락 없이 뭘 기웃거리시느냐구요?"
"없네."
"뭐가?"
남편의 말인즉 플라스틱 반찬통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얼마 전부터 시간 여유가 날 때마다 급식 자원봉사 중이다. 몇 번 나가다 보니 어르신들 개인마다의 개성이 급식을 받는 데서도 드러남을 알게 되었단다. 사람이 가진 개성이란 어떻게 해도 버릴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어르신들은 자신이 받아 갈 음식 그릇을 각자 들고 오시는데 당신이 직접 음식을 담으려는 어르신부터 어떻게 담아달라고 하는 어르신까지 다양한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중 한 어르신께서는 종이 아이스크림 통을 들고 오시는데 여러 번 사용해서 아이스크림 통이 제대로 된 모양도 아니어서 특히 국을 받으실 때면 흘리는 양이 더 많다는 것이다.
발돋움을 해 가며 찬장 높은 데를 살피던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싶으니 남편의 마음에 급 동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다. 일주일 전쯤 플라스틱 통을 깨끗이 정리했으니 말이다.
"마땅한 그릇이 없으신가 싶어서 우리 집에 안 쓰는 것 있으면 갖다 드리려고. 근데 우리 집에도 없네."
"진작에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마트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플라스틱 통들 싹 버렸는데. 한 번도 쓰지 않은 것들이 태반인데"
"내 마음이 좀 안 됐네. 날씨도 추운데 배식 20분 전이면 다들 오셔서 기다리시더라구. 코로나19 때문에 안으로 들어오시지도 못하는데 말이야."
남편의 마음에 감동하여 의자를 놓고 찬장 높은 데를 살폈다. 찬장 가장 높은 자리 구석에 같은 크기의 플라스틱 그릇 세 개가 포개져 있었다. 상표가 그대로 붙어 있는 걸 보면 아마 지난해 봄 찬장을 한 칸씩 정리할 때 올려놓고 잊어버린 그릇들이리라. 빻은 마늘 보관용으로 두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남편에게 플라스틱 그릇 세 개를 보이며 물었다.
"아쉬운 대로 이거라도 가져가 볼래요?"
"좋아요. 이 정도 크기면 딱 좋겠어. 뚜껑도 있으니 국물을 흘리더라도 반까지 흘리시진 않을 테고."
"앞으로는 플라스틱 통 모아두어야겠네. 그런데 꼭 여쭤 보고 드리세요. 플라스틱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종이 용기를 가지고 오실 수도 있는 거잖아. 또 손자나 손녀가 그 아이스크림을 자주 사 먹을 수도 있을 테고."
"알았어요."
급식 봉사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어르신께 그릇을 잘 전해 드렸는지 물었다.
"직접 드리지 않았지. 담당자에게 전했는데 어르신께서 잘 받아 가셨대."
술 담배 고집을 못 버려서 탈이긴 하지만 가끔 내 마음에 드는 일도 하는 남편이다. 따뜻한 사람과 함께 잘 살고 있는 듯하다. 다른 사람 대하는 태도를 보면 나를 대하는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나를 살 속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 여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따뜻한 마음이 없다면 그 젊은 날 머리에 서릿발 서는 날까지 함께 살자고 손가락을 걸기나 했겠는가. 마음에 안 드는 남편은 어디론가 다 숨어버린 것만 같은 날이다.